전세사기예방, 경매장에서 보증금 잃은 세입자들을 보며 배운 것

얼마 전 법원 경매기록을 보다가 마음이 꽤 무거웠습니다. 빌라 한 채에 세입자 보증금이 2억 원 넘게 들어가 있었는데, 선순위 근저당과 체납이 먼저 버티고 있더군요. 낙찰가를 대충 계산해보니 세입자가 전부 돌려받기는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경매장에서는 이런 기록이 숫자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숫자 뒤에는 누군가의 신혼집, 아이 전학, 부모님이 보태준 돈이 있습니다.
전세사기예방은 거창한 법률 지식보다 계약 전 2~3일을 얼마나 집요하게 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중개사가 괜찮다고 말해도, 집주인이 급하다고 재촉해도, 내 보증금은 내가 한 번 더 확인해야 합니다. 저는 낙찰보다 피하는 판단이 더 어려운 투자라고 봅니다. 전세도 똑같습니다.
싸게 보이는 전세가 제일 먼저 의심해야 할 물건입니다
초보 임차인이 많이 놓치는 게 전세가율입니다. 예를 들어 빌라 시세가 2억 4천만 원인데 전세금이 2억 2천만 원이면 겉으로는 주변보다 조금 싸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집값이 10%만 내려도 바로 깡통전세가 됩니다. 여기에 취득세, 중개보수, 대출이자, 미납세금, 선순위 보증금까지 끼면 경매로 넘어갔을 때 뒤에 선 사람은 버틸 공간이 없습니다.
아파트는 실거래가가 비교적 잘 잡히지만 빌라, 다세대, 오피스텔은 시세가 흔들립니다. 같은 골목이어도 층, 방향, 엘리베이터, 주차, 위반건축 여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집니다. 저는 전세금이 매매가의 80%를 넘는 빌라라면 일단 멈춰서 다시 봅니다. 90% 가까이 가면 집주인의 신용이 아니라 부동산 가격 상승에 내 보증금을 맡기는 꼴이 됩니다.
- 최근 실거래가와 현재 매물 호가를 따로 본다.
- 전세금과 선순위 채권을 합쳐 집값의 몇 퍼센트인지 계산한다.
- 빌라 시세는 최소 3곳 이상 중개업소에 따로 묻는다.
- 주변보다 유난히 조건이 좋은 매물은 이유부터 찾는다.
등기부는 한 번이 아니라 계약 전, 잔금 전 두 번 봐야 합니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갑구에는 소유권, 을구에는 근저당권이나 전세권 같은 담보가 나옵니다. 여기서 많이 하는 실수가 대출 원금만 보는 겁니다. 등기에는 보통 채권최고액이 적히는데, 실제 대출금보다 110~130% 정도 크게 잡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채권최고액 1억 2천만 원이면 단순히 1억 대출이라고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집값을 3억 원으로 보고, 을구에 채권최고액 1억 2천만 원이 있습니다. 여기에 내 전세금이 2억 원이면 종이 위 숫자만 합쳐도 3억 2천만 원입니다. 경매가 100%에 낙찰되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유찰 한 번이면 20~30%씩 빠지는 법원도 많습니다. 이 구조에서는 내가 후순위라면 이미 위험합니다.
계약서 쓰는 날 등기부가 깨끗했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계약금 받고 잔금 전날 근저당을 설정하는 경우도 현장에서 봤습니다. 그래서 잔금 당일, 돈 보내기 직전에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다시 열람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700원, 1000원 아끼려다 2억 원을 걸 수는 없습니다.
다가구와 근린생활시설은 초보가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전세사기 피해 기록을 보면 다가구주택이 자주 나옵니다. 다가구는 방마다 세입자가 살아도 등기부는 건물 하나로 묶입니다. 내 방이 301호라고 해서 내 보증금만 따로 보호되는 느낌이 들지만, 경매에서는 건물 전체의 선순위 관계를 봅니다. 앞선 세입자들의 보증금 합계가 크면 내 순번은 생각보다 뒤로 밀립니다.
건축물대장도 같이 봐야 합니다. 실제로는 원룸처럼 쓰는데 공부상 근린생활시설인 곳, 옥탑이나 지하를 불법 개조한 곳, 위반건축물 표시가 있는 곳은 보증보험 심사나 대출에서 막힐 수 있습니다. 집이 깨끗하고 월세보다 전세가 싸다는 말만 듣고 들어가면 나중에 빠져나올 때 더 힘들어집니다.
- 다가구는 선순위 임차보증금 총액을 확인한다.
- 전입세대 열람과 확정일자 부여 현황을 가능한 범위에서 챙긴다.
- 건축물대장상 용도와 실제 사용 상태가 맞는지 본다.
- 위반건축물, 압류, 가압류, 신탁 등 낯선 단어가 보이면 계약을 늦춘다.
반환보증은 계약 후 숙제가 아니라 계약 전 조건입니다
요즘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을 이야기하지 않고 전세계약을 하는 게 더 이상합니다. HUG, HF, SGI 같은 보증기관 상품은 집주인이 만기에 보증금을 못 돌려줄 때 임차인을 보호하는 장치입니다. 다만 보증금이 한도 안에 들어간다고 무조건 가입되는 구조는 아닙니다. 주택가격, 선순위 채권, 권리침해, 신청 시점까지 같이 봅니다.
제가 권하는 방식은 간단합니다. 계약 전에 보증 가입 가능성을 먼저 확인하고, 계약서 특약에 '반환보증 가입 불가 시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을 반환한다'는 취지를 넣는 겁니다. 문구는 중개사 말만 믿지 말고 본인 상황에 맞게 법무사나 보증기관 상담을 거치는 게 낫습니다. 특히 빌라와 오피스텔은 감정가와 인정 주택가격이 기대보다 낮게 잡히는 일이 있습니다.
보증 신청 시기도 놓치면 안 됩니다. 상품마다 기준은 다르지만 보통 임대차 기간의 절반이 지나기 전에 움직여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잔금 치르고 전입신고, 확정일자까지 끝낸 뒤 미루지 말고 바로 진행하는 쪽이 안전합니다. 저는 보증료를 비용으로 보지 않습니다. 보증금 수억 원을 지키기 위한 방어비라고 봅니다.
계약서 한 줄이 현장에서 돈을 지킵니다
계약 당일에는 소유자 신분증, 등기부상 이름, 입금 계좌 명의가 맞는지 봐야 합니다. 대리인이 나오면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확인해야 하고, 전화 한 통으로 끝내면 안 됩니다. 잔금일에 기존 근저당을 말소하기로 했다면 말소 조건, 말소 시간, 동시 이행 방식을 계약서에 적어야 합니다. '알아서 해준다'는 말은 법원 경매기록에 남지 않습니다.
특약은 길게 쓰는 것보다 분명해야 합니다. 잔금 다음 날까지 새로운 근저당, 압류, 가압류, 신탁등기 등 권리 변동을 하지 않는다는 문구. 위반 시 계약 해제와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는 문구. 기존 대출은 잔금과 동시에 말소한다는 문구. 이런 내용이 있어야 나중에 싸울 때 손에 잡히는 근거가 생깁니다.
전세사기예방에서 가장 위험한 말은 '설마'입니다. 집주인 인상이 좋아서, 중개사가 오래 장사해서, 신축이라 깨끗해서 괜찮다는 식의 판단은 돈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좋은 집을 고르는 일보다 나쁜 계약을 피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마음이 급할수록 등기부 한 장 더 보고, 숫자 한 번 더 두드리고, 불안한 물건은 보내는 쪽이 결국 싸게 먹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