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근저당 설정 한 줄을 놓칠 뻔한 날

입찰장에 들어가기 전날, 등기부를 다시 떼어보고 펜을 멈춘 적이 있습니다. 아파트 근저당 설정 금액만 확인하고 임차인의 전입일을 대충 넘겼더군요. 숫자 하나보다 날짜 하루가 더 위험한 물건이었습니다. 경매를 오래 했어도 이런 순간에는 등기부 첫 장부터 다시 봅니다.
채권최고액을 대출 잔액으로 읽으면 계산이 틀어진다
등기사항증명서 을구에는 근저당권자, 채권최고액, 접수일과 접수번호가 나옵니다. 여기 적힌 채권최고액은 그 근저당이 담보하는 한도입니다. 현재 남은 대출금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민법의 근저당 규정도 담보할 채무의 최고액을 정하고 채무 확정을 뒤로 미룰 수 있게 합니다.
가령 채권최고액이 2억 4천만 원이라고 해도 실제 채무가 얼마 남았는지는 그 숫자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이 금액을 보고 소유자의 대출 잔액을 단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느 권리가 먼저 생겼는지 확인하는 기준점으로 씁니다. 배당액을 가늠할 때도 실제 채권 신고액과 다른 권리자의 순위를 따로 봐야 합니다.
갑구도 함께 봅니다. 소유권 변동, 압류와 가압류, 경매개시결정등기가 얽혀 있으면 을구의 근저당 한 줄만으로 권리관계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같은 날 접수된 권리까지 있다면 등기 순서를 더 꼼꼼히 확인합니다.
제일 먼저 적는 날짜는 임차인의 전입일이다
제가 물건마다 종이에 적는 것은 선순위 권리의 등기일과 임차인의 점유·전입일입니다. 주택 임차인은 집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을 마친 다음 날부터 대항력이 생깁니다. 확정일자는 우선변제 순위를 따질 때 따로 확인할 사항입니다. 전입신고 날짜만 보고 대항력까지 그날 생겼다고 계산하면 하루가 어긋납니다.
예를 들어 임차인이 1월 10일에 입주와 전입신고를 마쳤고 근저당이 1월 15일에 설정됐다면, 그 임차인의 대항력이 근저당보다 앞설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근저당이 1월 9일에 설정됐다면 같은 임차인이 그 근저당에 대항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것만으로 보증금 인수액을 확정하지는 않습니다. 실제 점유 여부, 전입의 연속성, 확정일자, 배당요구와 예상 배당액까지 맞춰 봐야 합니다.
후순위 임차인이라도 무조건 보증금 문제에서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소액임차인의 최우선변제 요건에 해당하면 선순위 담보권자보다 먼저 일정액을 배당받을 수 있습니다. 적용 기준은 지역과 선순위 담보권 설정 시점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예전 글에 적힌 금액을 그대로 가져오면 위험합니다.
근저당이 지워져도 인수할 돈은 남을 수 있다
처음 경매를 배우는 분들이 가장 많이 헷갈리는 부분입니다. 민사집행법상 저당권은 매각으로 소멸합니다. 그래서 낙찰자가 등기부에 적힌 근저당 채권최고액을 낙찰대금 외에 그대로 갚는 식으로 계산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대항력 있는 선순위 임차인의 보증금이 배당으로 전부 해결되지 않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남은 보증금 반환 부담을 매수인이 안을 수 있습니다.
숫자로 놓으면 더 선명합니다. 시세를 4억 원으로 조사한 아파트에 1억 5천만 원의 선순위 임차인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3억 1천만 원에 낙찰받았는데 그 보증금이 배당에서 한 푼도 지급되지 않아 전액을 인수해야 한다면, 투입액은 벌써 4억 6천만 원입니다. 취득세, 등기 비용, 수리비, 대출 이자도 아직 더하지 않았습니다. 3억 1천만 원이라는 낙찰가만 보면 싸 보이던 물건이 바로 손실 구간으로 들어갑니다.
물론 실제 인수액은 배당 결과에 따라 달라집니다. 선순위 임차인이 얼마를 배당받는지, 배당요구를 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법원이 제공하는 매각물건명세서에는 매수인이 인수할 수 있는 권리와 임대차 관련 사항이 적히므로 반드시 읽습니다. 현황조사서에 적힌 점유자의 말과 등기부, 주민등록 관련 자료가 서로 맞지 않으면 입찰가를 정하기 전에 그 차이부터 풀어야 합니다.
입찰 전날에는 가격표보다 서류를 다시 펼친다
제 순서는 단순합니다. 최신 등기사항증명서에서 갑구와 을구를 확인하고, 매각물건명세서에서 매수인 인수 사항을 읽습니다. 이어 현황조사서와 임대차 자료로 실제 점유자, 전입일, 보증금, 배당요구 여부를 대조합니다. 같은 단지의 최근 거래와 현재 매물을 비교해 시세를 잡습니다. 호가만으로 매도 가능 가격을 정하지는 않습니다.
- 채권최고액과 실제 대출 잔액을 같은 숫자로 취급하지 않았는가
- 임차인의 대항력 발생일을 근저당 설정일과 비교했는가
- 보증금 인수 가능액을 낙찰가에 더했는가
- 취득세, 대출 이자, 수리비, 점유자와의 협의 비용을 계산했는가
- 입찰 직전에 서류와 매각 조건의 변경 여부를 다시 확인했는가
아파트 근저당 설정은 겁낼 표시도, 안심할 표시도 아닙니다. 그 날짜를 기준으로 다른 권리가 어디에 놓이는지 읽어야 합니다. 저는 수익이 커 보이는 물건보다, 누가 얼마를 받고 어떤 권리가 남는지 설명할 수 있는 물건에 입찰표를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