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일입찰표에 0 하나 더 쓸 뻔했던 날

입찰장에 앉아 기일입찰표를 쓰다 보면 평소엔 쉬운 숫자도 낯설어집니다. 저도 한 번은 2억 3천만 원을 적으려다 끝자리에 0을 하나 더 붙일 뻔했습니다. 옆 칸의 보증금액을 다시 계산하다 발견했죠. 종이를 제출하기 전이어서 새 입찰표에 다시 썼지만, 그날 이후 가격을 적은 뒤에는 반드시 숫자를 소리 없이 한 자리씩 읽습니다.
기일입찰표는 법원 경매에서 내가 어떤 물건을 얼마에 사겠다고 신고하는 종이입니다. 봉투에 넣어 제출하고 나면 입찰을 취소하거나 가격을 바꾸거나 입찰표를 교환할 수 없습니다. 몇 분 아끼려다 수천만 원이 걸린 숫자를 잘못 쓰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입찰표를 쓰기 전 가격부터 다시 계산한다
저는 입찰장에 가기 전에 종이 한 장에 세 숫자를 적습니다. 예상 매도가 또는 보수적으로 본 시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총투입비, 최종 입찰가입니다. 시세가 3억 원이고 입찰가가 2억 5천만 원이면 차액 5천만 원이 곧 수익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취득세와 등기 비용, 대출 이자, 수리비, 점유자와의 협의 비용, 보유 기간의 관리비까지 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2억 5천만 원에 낙찰받아 부대비용과 수리비로 2천만 원, 예상보다 늦어진 매도로 금융비용 1천만 원이 들었다고 해보죠. 매도가가 3억 원이어도 세전 차액은 2천만 원입니다. 여기서 양도 관련 세금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숫자는 예시일 뿐이고, 실제 비용과 세금은 물건·보유 형태·매도 시점에 따라 달라집니다. 입찰표 앞에서 가격을 올리기 전에 이 계산을 먼저 끝내야 합니다.
특히 매각물건명세서에 적힌 임차인 관계, 등기부의 권리 순서, 현황조사보고서의 점유 내용은 가격 계산과 한 묶음입니다. 인수할 수 있는 보증금이나 해결이 까다로운 점유 문제가 보이면, 입찰표를 잘 쓰는 기술로는 손실을 막지 못합니다. 서류끼리 내용이 다르면 이유를 확인할 때까지 입찰가를 확정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사건번호보다 헷갈리는 건 물건번호와 금액이다
기일입찰표에는 사건번호, 물건번호, 입찰자 정보, 입찰가격, 보증금액 등을 적습니다. 같은 사건에 물건이 여럿이면 물건번호를 빼먹거나 다른 번호를 쓰기 쉽습니다. 법원경매정보의 공고와 당일 입찰장에 게시된 내용을 나란히 놓고 사건번호와 물건번호를 대조하세요. 매각이 변경되거나 취하된 물건은 없는지도 현장에서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가격은 ‘2억대 중반’처럼 뜻을 추측하게 쓰는 칸이 아닙니다. 원 단위까지 확정한 금액을 적고, 쉼표를 기준으로 세 자리씩 끊어 읽어 봅니다. 250,000,000원은 2억 5천만 원이고, 2,500,000,000원은 25억 원입니다. 0 하나가 만든 차이는 입찰장에서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실수가 아닙니다.
법원행정처도 이런 오기를 줄이려고 2026년 11월 2일부터 기일입찰표 양식을 바꿨습니다. 입찰가격과 보증금액의 기재 공간을 넓히고 주의 문구와 가격 기재 사례를 넣었습니다. 새 양식이 나왔어도 마지막 확인은 입찰자 몫입니다. 저는 가격을 한 번 적고 손가락으로 자리수를 짚은 뒤, 미리 적어 온 상한가와 다시 맞춰 봅니다.
보증금은 내가 써낸 가격의 10%가 아니다
초보 때 많이 헷갈리는 부분입니다. 기일입찰의 매수신청보증금은 원칙적으로 최저매각가격의 10분의 1입니다. 내가 써낸 입찰가격의 10%로 계산하는 게 아닙니다. 최저매각가격이 2억 원이고 입찰가격을 2억 5천만 원으로 쓴다면, 별도 조건이 없는 일반적인 경우 보증금은 2천만 원입니다.
다만 법원이 보증금액을 다르게 정할 수 있습니다. 재매각 물건처럼 특별한 조건이 붙은 경우도 있으니 전날 계산한 금액만 믿고 가면 곤란합니다. 매각공고와 당일 고지된 매각조건에서 해당 물건의 보증금액을 확인하세요. 준비한 금액이 부족하면 가격을 잘 써도 입찰 자체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현금이나 허용되는 자기앞수표 등을 입찰표와 함께 제출하는 방식도 확인해야 합니다. 보증금은 작은 보증금 봉투에, 기일입찰표는 큰 입찰 봉투에 넣는 절차가 일반적입니다. 현장 안내에 따라 봉함하고 수취증을 챙깁니다. 대리입찰이나 공동입찰이라면 위임장과 자격을 증명할 서류도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당일 창구 앞에서 서류가 빠진 걸 알면 손쓸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봉투를 넣기 전 마지막 1분이 가장 비싸다
저는 봉투를 닫기 직전에 다섯 가지만 확인합니다. 사건번호와 물건번호가 맞는지, 입찰자 이름이 신분증과 같은지, 입찰가격이 정해 둔 상한가를 넘지 않는지, 보증금액과 실제 넣은 금액이 같은지, 필요한 대리·공동입찰 서류가 들어 있는지입니다. 이미 가격을 적은 칸에서 실수를 발견했다면 제출 전에 새 입찰표로 다시 쓰는 편이 안전합니다. 제출한 뒤에는 입찰을 취소하거나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격을 잘못 높여 낙찰받았다고 해서 단순한 기재 실수만으로 없던 입찰이 되는 건 아닙니다. 대금을 내지 못해 재매각으로 이어지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법원행정처가 새 양식을 만든 이유도 실제로 0을 하나 더 적어 의도보다 훨씬 높은 금액에 낙찰받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입찰장에서는 남들이 얼마를 쓸지가 제일 궁금합니다. 하지만 남의 봉투는 볼 수 없고, 내 봉투는 제출 전까지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1분을 시세를 다시 상상하는 데 쓰지 않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계산한 가격과 종이에 적힌 가격이 같은지 확인하는 데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