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매에서 싸다고 달려갔다가 발길 돌린 날

얼마 전 유찰된 아파트를 보러 갔다가 입찰표도 쓰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감정가는 3억 2천만 원, 최저매각가는 2억 2,400만 원. 인근 중개업소에서 확인한 비슷한 층의 매도 호가는 2억 8천만 원 안팎이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욕심이 날 만했죠. 그런데 그날 제 수첩에는 입찰가 대신 ‘임차보증금 확인 전까지 보류’라고 적혔습니다.
아래 금액과 날짜는 제가 현장에서 자주 마주친 상황을 설명하려고 바꾼 예시입니다. 경매는 물건마다 권리관계가 달라서, 다른 사건에 숫자만 대입하면 위험합니다.
최저매각가보다 먼저 본 것은 임차인의 전입일
등기사항증명서에는 2019년 설정된 근저당권이 있었고, 현황조사서에는 거주자의 전입일이 2018년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매각물건명세서에는 보증금 1억 4천만 원을 주장하는 임차인이 표시돼 있었고요. 이럴 때 저는 ‘근저당권이 있으니 임차인은 나가겠지’라고 넘기지 않습니다. 실제 점유와 전입에 따른 대항력 취득 시점, 보증금 액수, 확정일자와 배당요구 여부를 차례로 확인합니다.
대항력 있는 임차인의 보증금이 배당으로 전액 변제되지 않으면 잔액이 매수인에게 남을 수 있습니다.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의 주택임대차 안내도 이 점을 분명히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보증금 1억 4천만 원 가운데 5천만 원만 배당되고 나머지 9천만 원을 인수하는 상황이라면, 2억 4천만 원에 낙찰받아도 집을 얻는 데 드는 돈은 이미 3억 3천만 원 수준입니다. 취득세나 수리비를 넣기 전입니다.
물론 전입일 하나만으로 인수액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 점유가 이어졌는지, 배당에서 얼마를 받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서류에서 확인되지 않는 부분을 제게 유리한 쪽으로 가정해 입찰가를 올리는 순간, 싸 보였던 물건은 비싼 물건이 됩니다.
법원 서류를 들고 현장에 가야 보이는 것들
저는 법원경매정보에서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 감정평가서를 읽고 등기사항증명서와 건축물대장을 따로 확인합니다. 서류에 적힌 점유자와 실제 현관문 안의 사람이 같은지도 확인할 문제입니다. 현황조사서에 ‘폐문부재’가 적혀 있다면 거주자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조사할 때 문이 닫혀 있어 확인하지 못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동과 층, 주차 상태, 누수 흔적, 공실 여부를 봅니다. 관리사무소에는 체납 관리비의 항목과 기간을 확인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낙찰자가 어느 범위까지 부담하는지는 항목과 사안에 따라 따져야 하니, 총액을 들었다고 전부 인수한다고 단정하지도 않습니다. 주변 중개업소 두세 곳에서는 같은 면적의 실제 거래 가능 가격과 매물이 얼마나 오래 남아 있는지 묻습니다. 호가 2억 8천만 원인 집이 몇 달째 팔리지 않는다면 그 숫자를 제 매도가로 쓸 수 없으니까요.
한 번은 사진상으로 멀쩡한 집이었는데 복도까지 올라가니 천장에 물이 샌 자국이 선명했습니다. 안을 볼 수 없어 수리 범위를 확정하지 못했고, 그만큼 입찰가에서 여유를 더 뺐습니다. 감정평가서의 사진과 현재 집 상태 사이에는 시간이 흘러 있다는 사실을 현장에 가면 실감합니다.
낙찰가 아래에 비용을 한 줄씩 적었다
가령 이 물건을 2억 4천만 원에 낙찰받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취득세와 등기 비용, 이자, 수리비, 점유자와의 협의 비용, 보유 기간의 관리비가 뒤따릅니다. 저는 비용을 한데 묶어 ‘대충 천만 원’이라고 쓰지 않습니다. 취득세는 보유 주택 수와 취득 조건에 따라 달라지고, 대출 가능액과 금리도 사람과 물건에 따라 다릅니다. 입찰 전 금융기관에 경락잔금대출 가능 여부와 예상 조건을 확인하고, 대출이 줄거나 늦어질 때 잔금을 낼 현금도 계산합니다.
명도 비용은 더 조심해서 잡습니다. 점유자에게 대항할 권리가 없다면 대금 납부 뒤 인도명령을 검토할 수 있지만, 신청 기한이 있고 모든 점유자에게 통하는 절차도 아닙니다.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라면 보증금 문제가 풀리지 않은 채 집을 비워 달라고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명도에 걸릴 기간을 낙관적으로 한 달로 잡아 수익률을 만드는 방식이 제일 불편합니다. 협의가 늦어질수록 이자와 보유비는 매달 나갑니다.
이 예시에서는 배당액을 확신할 수 없었고 집 내부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시세와 최저매각가의 차이보다 인수 가능 보증금이 훨씬 컸습니다. 그래서 입찰가를 낮춘 게 아니라 입찰 자체를 접었습니다. 좋은 물건을 놓쳤을 가능성보다, 모르는 비용을 떠안는 위험이 더 컸습니다.
입찰장에서는 모르는 숫자를 0원으로 쓰지 않는다
초보 때는 경쟁자가 많은 물건을 보면 제가 놓친 매력이 있나 싶었습니다. 10년 넘게 입찰장을 다니고 나서는 반대로 봅니다. 남의 입찰가는 제 권리분석을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제가 확인한 시세에서 취득·보유·수리·명도 비용과 필요한 안전 여유를 빼고도 남는 가격이 제 상한가입니다. 임차보증금 인수 여부처럼 큰 항목이 비어 있으면 그 상한가부터 신뢰할 수 없습니다.
부동산 경매에서 유찰 횟수는 할인 쿠폰이 아닙니다. 값이 내려간 이유가 권리 문제인지, 상태 문제인지, 단순한 가격 문제인지 알아야 합니다. 저는 입찰표를 쓰지 않고 돌아온 날에도 서류와 현장 메모를 남깁니다. 다음 물건에서 같은 한 줄을 더 빨리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