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매매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 경매장 다니며 배운 방식으로 따져봤더니

얼마 전 지인이 집매매 계약을 앞두고 등기부등본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매매가는 6억 8천만 원, 대출은 4억 정도 생각하고 있었고, 중개사는 “집 깨끗하고 문제 없다”고 말했다더군요. 그런데 제가 처음 본 건 인테리어 사진이 아니라 등기부였습니다. 경매를 10년 넘게 하다 보면 예쁜 싱크대보다 무서운 게 근저당 한 줄이고, 남향 거실보다 중요한 게 잔금일에 권리가 깨끗하게 지워지는지입니다.
집매매는 경매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안전하다는 건 절차를 제대로 밟았을 때 이야기입니다. 일반 매매에서도 권리관계, 대출, 시세, 하자, 세금, 잔금 흐름 중 하나만 삐끗하면 몇 년 고생합니다. 저는 경매 물건 보듯이 집매매 물건도 봅니다. 싸게 사는 것보다 먼저 피해야 할 물건을 걸러내는 게 우선입니다.
집매매에서 제일 먼저 보는 건 집 상태가 아니라 등기부입니다
초보 매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집을 먼저 보고 마음을 정하는 겁니다. 거실 넓고, 도배 새로 했고, 역까지 걸어서 7분이면 이미 머릿속에서는 이사 날짜까지 잡습니다. 근데 현장에서는 마음이 앞서면 숫자와 문장이 안 보입니다.
등기부등본은 최소 세 번 봅니다. 처음 물건 볼 때 한 번, 계약 직전 한 번, 잔금 직전 한 번입니다. 특히 잔금 직전 등기부 확인은 절대 건너뛰면 안 됩니다. 계약 때 깨끗했던 집도 중간에 가압류나 압류가 들어올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경매 현장에서는 이런 한 줄 때문에 낙찰자가 인수 위험을 떠안는 경우를 여러 번 봤습니다. 일반 매매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 갑구: 소유자가 누구인지, 가압류·압류·가처분이 있는지 확인
- 을구: 근저당권, 전세권, 임차권등기명령 여부 확인
- 소유자 이름과 계약서상 매도인 이름이 같은지 확인
- 잔금과 동시에 말소될 권리가 무엇인지 특약에 적기
근저당이 있다고 무조건 나쁜 집은 아닙니다. 대부분 주택에는 대출이 끼어 있습니다. 문제는 매매대금으로 근저당을 말소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절차가 안전하게 설계되어 있는지입니다. 예를 들어 매매가 7억인데 근저당 채권최고액이 6억 5천만 원이고, 매도인이 다른 빚도 많아 보인다면 저는 한 발 물러섭니다. 집 자체보다 돈 흐름이 불안한 거래입니다.
시세조사는 호가 말고 거래된 가격을 봐야 합니다
부동산 앱에 올라온 가격만 보고 “이 정도면 싸다”고 판단하면 위험합니다. 호가는 매도인의 희망이고, 실거래가는 시장이 실제로 받아준 가격입니다. 경매 입찰가를 쓸 때도 저는 항상 최근 실거래, 현재 매물, 전세가, 급매 여부를 따로 봅니다. 집매매도 같습니다.
예전에 한 아파트를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중개사는 같은 단지 매물이 8억 2천만 원까지 나와 있으니 7억 8천만 원이면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국토교통부 실거래를 보니 같은 평형, 비슷한 층이 두 달 전 7억 3천만 원에 거래됐습니다. 게다가 그 사이 단지 안에 급매가 3개나 더 나와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7억 8천만 원은 싸게 사는 게 아니라 매도인의 기대가격을 받아주는 거래가 됩니다.
제가 현장에서 쓰는 간단한 비교 방식
- 같은 단지, 같은 면적, 같은 타입의 최근 3~6개월 실거래 확인
- 저층·탑층·동향·대로변 동은 따로 할인해서 보기
- 현재 매물 중 가장 낮은 가격과 실제 협상 가능성 확인
- 전세가율을 보고 하방 지지선이 어느 정도인지 계산
- 수리비 1천만~3천만 원이 필요한 집인지 현장에서 체크
실거래가 7억 3천만 원, 현재 최저 매물 7억 5천만 원, 내가 보려는 집이 7억 8천만 원이라면 그 집만의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올수리, 좋은 동호수, 확실한 조망, 학교 접근성 같은 이유가요. 이유 없이 비싸면 그냥 비싼 겁니다. 집매매에서 “나중에 오르겠지”라는 말은 계산이 아니라 기대입니다.
계약금 10%보다 무서운 건 애매한 특약입니다
계약서는 두꺼운 문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몇 줄 안 되는 특약이 나중에 큰돈을 좌우합니다. 경매에서는 매각물건명세서 한 줄, 임대차 현황 한 줄을 놓치면 손실이 납니다. 일반 집매매에서는 특약 한 줄이 그 역할을 합니다.
저라면 최소한 이런 내용은 계약서에 넣습니다. “잔금일 현재 등기부상 소유권 이전에 지장을 주는 권리 및 채무는 매도인이 잔금과 동시에 말소한다.” “현 시설물 상태의 매매이나, 누수·중대 하자 발견 시 매도인은 고지 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을 진다.” “매수인의 주택담보대출 불가 시 계약 해제 및 계약금 반환 여부는 별도 합의한다.” 문구는 상황에 맞게 조정해야 하지만, 말로만 합의하는 건 위험합니다.
특히 대출 특약은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매수인이 대출 4억을 예상했는데 실제 승인액이 3억 3천만 원만 나오면 잔금이 막힙니다. 이때 계약서에 아무 내용이 없으면 계약금이 걸립니다. 매도인 입장에서는 계약 불이행이라고 볼 수 있고, 매수인은 “대출이 안 나올 줄 몰랐다”고 말해도 늦습니다. 은행 상담은 계약 전에 최소 2곳 이상 받아두는 게 낫습니다.
집 상태는 낮에 한 번, 비 오는 날 한 번 보면 다르게 보입니다
경매 물건을 보러 다닐 때도 저는 가능하면 주변을 여러 시간대에 봅니다. 낮에는 조용한데 밤에는 주차 전쟁인 곳이 있고, 평일에는 괜찮은데 주말마다 상가 손님 차량이 밀려드는 곳도 있습니다. 집매매도 현장 확인을 한 번으로 끝내면 놓치는 게 많습니다.
누수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도배 새로 한 집은 오히려 더 꼼꼼히 봅니다. 천장 모서리, 베란다 확장부, 창틀 아래, 욕실 문턱, 싱크대 하부를 봐야 합니다. 곰팡이 냄새가 나는지, 장판이 들떠 있는지, 벽지가 특정 부분만 새것인지도 봅니다. 매도인이 일부러 숨겼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매수자가 모르고 넘어가면 수리비는 대부분 내 돈에서 나갑니다.
- 관리비 고지서로 장기수선충당금과 체납 여부 확인
- 주차 대수와 실제 야간 주차 상황 확인
- 엘리베이터, 배관, 외벽 공사 예정 여부 확인
- 아랫집·윗집 소음 민원 이력은 관리사무소에 조심스럽게 문의
- 확장 부위 누수와 결로 흔적 확인
수리비도 매매가에 포함해서 봐야 합니다. 7억 5천만 원짜리 집을 샀는데 샷시, 욕실, 마루, 주방까지 손보면 4천만 원이 금방 나갑니다. 그러면 실제 매입가는 7억 9천만 원입니다. 여기에 취득세, 중개보수, 등기비, 이사비까지 붙습니다. 집값만 보고 예산을 잡으면 잔금 치른 뒤 통장이 버티지 못합니다.
싸게 사는 집보다 빠져나올 수 있는 집이 먼저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집매매를 볼 때 저는 항상 되팔 때를 생각합니다. 실거주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계약하지만, 직장 이동, 가족 구성 변화, 금리 부담 때문에 3년 만에 팔아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때 팔리는 집과 안 팔리는 집의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초보가 피해야 할 집은 대체로 특징이 비슷합니다. 단지 규모가 너무 작고 거래가 드문 집, 권리관계가 복잡한 집, 불법 증축 가능성이 있는 빌라, 대출이 까다로운 주택, 주변 시세를 확인하기 어려운 특수 물건입니다. 이런 집은 살 때 싸 보입니다. 그런데 팔 때도 싸게 내놔야 겨우 움직입니다. 경매에서 싸게 낙찰받고도 명도, 수리, 매도에서 고생하는 물건들이 딱 이 부류입니다.
집매매를 앞두고 있다면 마음에 드는 집을 찾는 것만큼 마음에 걸리는 지점을 적어보는 게 좋습니다. 등기부에 걸리는 점, 시세가 애매한 점, 대출이 불확실한 점, 수리비가 커 보이는 점을 종이에 써보면 흥분이 조금 가라앉습니다. 부동산은 감정으로 고르고 숫자로 확인해야 합니다. 저는 아직도 계약 전날에는 등기부와 실거래가를 다시 봅니다. 오래 했다고 안 봐도 되는 게 아니라, 오래 해보니 안 보면 안 된다는 쪽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