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물건을 경매장에서 직접 따라가 봤더니 보인 것들

법원 게시판 앞에서 등기부를 다시 본 이유
얼마 전 법원 입찰장에 갔는데, 유독 빌라 물건 앞에 사람들이 오래 서 있었습니다. 감정가는 2억 4천만 원, 최저가는 두 번 유찰돼 1억 5천만 원대까지 내려온 물건이었죠. 겉으로 보면 싸 보입니다. 그런데 등기부를 펼쳐보니 선순위 전세권, 근저당, 임차권등기명령까지 줄줄이 붙어 있었습니다. 초보 눈에는 ‘많이 떨어졌네’가 먼저 보이지만, 제 눈에는 ‘누가 돈을 못 받고 버티고 있나’가 먼저 보입니다.
전세사기 물건은 가격이 싸다고 접근하면 안 됩니다. 싸진 이유가 있습니다. 보통은 임차인이 보증금을 못 돌려받았고, 집주인은 연락이 안 되거나 여러 채를 돌려막기 하다가 무너진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물건은 낙찰가만 계산하면 틀립니다. 인수되는 보증금, 명도 난이도, 대출 가능 여부, 세금, 수리비까지 같이 봐야 합니다.
전세사기 물건에서 제일 먼저 보는 세 가지
저는 전세사기 의심 물건을 보면 등기부보다 먼저 매각물건명세서를 봅니다. 물론 등기부가 기본이지만, 초보가 놓치는 정보는 매각물건명세서에 더 노골적으로 적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대항력 있는 임차인 여부’, ‘배당요구 여부’, ‘인수되는 권리’ 이 세 줄은 입찰가보다 중요합니다.
- 전입일자가 말소기준권리보다 빠른지 확인합니다.
- 확정일자와 배당요구 종기일 안에 배당요구를 했는지 봅니다.
- 보증금 전액이 배당으로 해결되는지 계산합니다.
- 임차권등기명령이 있다면 실제 점유 상태와 이사 여부를 따로 확인합니다.
예를 들어 근저당 설정일이 2021년 6월 10일이고, 임차인 전입일이 2021년 5월 20일이면 임차인이 앞섭니다. 이 임차인이 배당으로 보증금 전액을 못 받으면 남은 금액을 낙찰자가 떠안을 수 있습니다. 이걸 모르고 1억 5천만 원에 낙찰받았는데 보증금 8천만 원을 추가로 인수하면, 싸게 산 게 아니라 비싸게 사고 고생까지 얹은 겁니다.
현장에서 가장 많이 보는 착각
전세사기 관련 경매 물건을 보러 다니다 보면 초보 투자자들이 비슷한 말을 합니다. “어차피 경매로 넘어가면 깨끗해지는 거 아닌가요?” 아닙니다. 경매가 모든 권리를 지워주는 청소기가 아닙니다. 말소되는 권리도 있고, 낙찰자가 그대로 안고 가야 하는 권리도 있습니다.
특히 다세대주택이나 오피스텔은 더 조심해야 합니다. 같은 건물 안에 비슷한 호실이 여러 개 있고, 시세도 비슷해 보입니다. 그런데 한 호실은 선순위 임차인이 없고, 다른 호실은 보증금 1억 8천만 원이 인수될 수 있습니다. 겉모습은 같아도 권리관계는 완전히 다른 물건입니다.
제가 예전에 본 서울 외곽 빌라 한 채는 감정가 2억 1천만 원에서 1억 700만 원까지 내려왔습니다. 숫자만 보면 반값입니다. 하지만 선순위 임차인의 보증금이 1억 6천만 원이었고, 예상 배당액은 근저당과 조세채권 때문에 크게 부족했습니다. 낙찰자가 실질적으로 부담할 금액을 더하면 주변 정상 매매가보다 높았습니다. 이런 물건은 ‘반값 경매’가 아니라 ‘보증금 폭탄’입니다.
시세조사는 네이버 매물만 보면 부족합니다
전세사기 물건은 시세조사가 더 까다롭습니다. 왜냐하면 주변 매물가 자체가 왜곡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같은 빌라 단지 안에서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게 형성된 적이 있다면, 그 지역은 이미 위험 신호가 켜졌다고 봐야 합니다.
저는 최소한 세 가지를 같이 봅니다. 최근 실거래가, 현재 매도 호가, 실제 전세 수요입니다. 여기에 현장 부동산 두세 곳에 전화를 걸어 “이 건물 전세 문의가 아직 있느냐”, “매매로 내놓으면 얼마에 거래될 것 같으냐”, “대출은 잘 나오느냐”를 물어봅니다. 대답이 흐리면 그 물건은 더 깊게 파야 합니다.
근데 전화만으로 끝내면 또 위험합니다. 직접 가보면 엘리베이터 관리 상태, 우편함, 공실 냄새, 불법 증축 흔적, 주차 문제 같은 게 보입니다. 전세사기 피해가 몰린 건물은 분위기가 다릅니다. 임차인들이 이미 지쳐 있고, 관리비 체납 안내문이 붙어 있고, 공용부가 방치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요소는 감정평가서 숫자에 잘 안 잡힙니다.
낙찰보다 어려운 건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전세사기 물건은 명도가 단순한 절차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보증금을 잃은 임차인 입장에서는 낙찰자가 새 집주인이라고 해도 반갑지 않습니다. 법적으로는 인도명령을 신청할 수 있는 상황이어도, 현장에서는 감정이 먼저 부딪힙니다.
저는 이런 물건일수록 첫 통화를 조심합니다. “언제 나가실 겁니까”부터 꺼내면 대화가 닫힙니다. 먼저 배당 상황을 확인하고, 임차인이 어느 정도 손해를 보는지 파악합니다. 이사비를 어느 선에서 협의할 수 있는지, 점유자가 실제 거주 중인지, 가족이 있는지, 이미 다른 거처를 알아봤는지도 봅니다. 법대로만 밀어붙이면 시간은 시간대로 쓰고 비용도 더 나갑니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양보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낙찰자도 계산이 맞아야 움직입니다. 다만 전세사기 물건에서는 명도비를 ‘아까운 돈’으로 보면 판단이 흔들립니다. 저는 입찰 전에 예상 명도비를 비용표에 넣습니다. 300만 원인지, 700만 원인지, 혹은 협의가 거의 불가능한 분위기인지에 따라 입찰가가 달라져야 합니다.
초보라면 피해야 할 전세사기 의심 패턴
처음 경매를 시작하는 분이라면 수익률 높은 물건보다 안 망하는 물건을 먼저 보는 게 맞습니다. 전세사기 의심 물건은 공부용으로 분석할 가치는 있지만, 실제 입찰은 훨씬 보수적으로 봐야 합니다.
- 선순위 임차인의 보증금이 크고 배당 부족 가능성이 있는 물건
- 같은 건물 여러 호실이 한꺼번에 경매로 나온 물건
-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거의 없거나 전세가가 더 높았던 지역
- 임차권등기명령, 가압류, 체납 압류가 복잡하게 얽힌 물건
- 현장 중개업소가 거래 가능 가격을 명확히 말하지 못하는 물건
경매는 싸게 사는 게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험을 가격으로 바꾸는 일에 가깝습니다. 위험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으면 입찰해도 됩니다. 그런데 위험의 크기를 모르겠다면, 그건 싼 게 아니라 모르는 겁니다.
전세사기 물건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 하나입니다. 숫자는 차갑지만, 그 뒤에는 보증금을 잃은 사람과 무리하게 레버리지를 쓴 집주인,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새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낙찰자가 있습니다. 저는 초보 투자자가 이런 물건으로 첫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경매장에서 오래 버티는 사람은 크게 먹은 사람이 아니라, 크게 잃을 자리를 조용히 피해 간 사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