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매매 계약 직전까지 가봤더니, 숫자보다 먼저 보이던 것들

얼마 전 지인이 동네 보습학원을 인수하겠다고 해서 같이 현장을 봤습니다. 원장은 원생 80명, 월매출 3천만 원, 권리금 1억 2천만 원을 이야기하더군요. 겉으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간판 위치 좋고, 초등학교 후문에서 걸어서 4분, 교실도 깔끔했습니다. 그런데 장부를 넘기다 보니 제 눈에는 매출보다 먼저 환불 예정금과 강사 이탈 가능성이 들어왔습니다.
학원매매는 그냥 가게 하나 넘겨받는 거래가 아닙니다. 상가 임대차, 교육지원청 변경등록, 원생 승계, 강사 고용, 선수금, 환불채무, 차량 문제까지 한꺼번에 묶입니다. 경매에서 권리 한 줄 놓치면 낙찰가가 독이 되듯, 학원 인수도 빠진 한 줄 때문에 권리금이 통째로 흔들립니다.
권리금 1억보다 원생 30명의 이동이 더 무섭습니다
초보가 학원매매 물건을 보면 보통 월매출부터 봅니다. 저도 처음 사업장 볼 때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몇 번 당해보면 매출은 결과값이고, 더 중요한 건 그 매출이 누구 덕분에 생겼는지입니다.
예를 들어 원생 80명 학원이라고 해도 전부 같은 원생이 아닙니다. 원장 직강반 35명, 인기 강사반 25명, 보조반 20명이라면 원장과 인기 강사가 빠지는 순간 실제 승계 가능한 원생은 절반 아래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중고등부 수학, 영어 학원은 선생님 이름 보고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판보다 사람이 매출을 끌고 가는 업종입니다.
제가 보는 자료는 단순합니다. 카드매출, 현금영수증, 계좌입금 내역, 수강생 대장, 시간표, 반별 출석표를 서로 맞춰봅니다. 월매출 3천만 원이라고 말하는데 실제 정기 결제 원생이 52명뿐이면, 나머지는 단기 특강이거나 끊긴 학생일 수 있습니다. 상담대장에 이름만 있고 결제 내역이 없는 경우도 꽤 봤습니다.
- 최근 6개월 월별 원생 수 변동
- 반별 담당 강사와 강사 퇴사 예정 여부
- 선수금, 미수금, 환불 예정금
- 방학 특강 매출과 정규반 매출 구분
- 원장 직강 비중과 인수자 대체 가능성
교육지원청 변경등록, 계약금 넣기 전에 확인해야 합니다
학원은 관할 교육지원청에 등록된 업종입니다. 학원법상 설립·운영자, 교습과정, 강사명단, 교습비, 위치, 시설·설비 같은 등록사항이 바뀌면 변경등록 절차가 붙습니다. 실무에서는 학원 양도양수라고 부르지만, 서류상으로는 새 운영자가 요건을 갖추고 변경 절차를 통과해야 장사가 이어집니다.
여기서 무서운 게 있습니다. 기존 학원이 영업 중이니 당연히 내가 인수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실제로는 지역 교육지원청 기준, 건축물 용도, 면적, 강의실 구조, 유해업소 여부, 소방 관련 확인에서 걸릴 수 있습니다. 기존 원장이 예전에 등록한 상태로 버티고 있던 시설을 새 인수자가 손대는 순간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라면 계약서 쓰기 전에 교육지원청에 먼저 묻습니다. 이 위치에서 이 교습과정으로 운영자 변경이 가능한지, 시설 변경이 필요한지, 강사 등록이나 교습비 게시 기준에 걸리는 부분은 없는지 확인합니다. 통학차량이 있다면 더 봐야 합니다. 어린이 통학버스는 경찰서 신고, 보험, 안전교육, 차량 정보 관리가 따라붙습니다. 차까지 넘긴다고 끝나는 물건이 아닙니다.
임대차가 흔들리면 학원매매도 같이 무너집니다
상가를 경매로 볼 때도 저는 임차인보다 임대차계약서를 먼저 봅니다. 학원매매도 똑같습니다. 학원 권리금이 아무리 싸 보여도 임대인이 새 임차인을 받지 않거나 월세를 확 올리면 계산이 깨집니다. 특히 학원은 위치 이동이 쉽지 않습니다. 학부모 동선, 학교와 거리, 차량 승하차 자리, 엘리베이터, 화장실 상태까지 영업력에 영향을 줍니다.
권리금 8천만 원을 주고 들어갔는데 새 임대차 조건이 보증금 5천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월세 350만 원에서 520만 원으로 바뀌면 어떨까요. 월 170만 원 차이면 1년 2,040만 원입니다. 권리금 싸게 샀다고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이럴 때는 권리금 협상보다 임대인 동의와 새 계약 조건 확정이 먼저입니다.
계약 특약에는 최소한 이런 문구가 들어가야 마음이 놓입니다. 교육지원청 변경등록 불가 시 계약 해제, 임대인과 신규 임대차계약 불성립 시 계약금 반환, 잔금일 전 원생 수 급감 시 권리금 조정, 선수금과 환불금 정산, 강사 승계 불발 시 책임 범위. 말로만 좋게 끝내자는 거래일수록 나중에 감정싸움이 커집니다.
권리금 계산은 매출이 아니라 남는 돈으로 해야 합니다
학원매매 광고를 보면 월매출의 몇 배, 원생 수 곱하기 얼마 식으로 가격을 부릅니다. 저는 그렇게 안 봅니다. 매출에서 강사료, 임대료, 관리비, 광고비, 교재비, 카드수수료, 차량비, 세무기장료, 보험료를 빼고 남는 돈을 봅니다. 그리고 원장이 직접 강의하는 시간도 비용으로 잡습니다. 내 노동을 0원으로 계산하면 장사는 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월매출 2,800만 원인 학원이 있다고 치겠습니다. 강사료 1,250만 원, 임대료와 관리비 520만 원, 광고비 180만 원, 차량비 130만 원, 기타 운영비 220만 원이면 남는 돈은 500만 원 안팎입니다. 그런데 원장이 주 20시간 직접 수업하고 상담까지 했다면, 그 500만 원은 순수한 투자수익이 아닙니다. 내 몸값이 섞인 돈입니다.
그래서 저는 권리금을 볼 때 회수기간을 따집니다. 안정적으로 월 400만 원이 남는 구조인데 권리금이 1억 2천만 원이면 단순 계산으로 30개월입니다. 여기에 원생 이탈, 강사 교체, 임대료 인상, 시설 보수까지 넣으면 체감 회수기간은 더 길어집니다. 반대로 권리금이 높아도 강사진이 탄탄하고 원생 유지율이 좋고 임대차가 길게 고정되어 있으면 나쁘지 않은 물건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도장 찍기 전 보는 것
학원매매에서 제일 위험한 말은 이겁니다. 원생은 그대로 따라올 겁니다. 현장에서는 그대로 따라오는 원생도 있지만, 원장 바뀐다는 문자 한 통에 움직이는 학부모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잔금 전 학부모 공지 방식, 강사 면담, 기존 원장의 인수인계 기간을 꼭 봅니다. 가능하면 한 달 정도 공동 운영 기간을 두는 게 좋습니다.
세금도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등록된 학원의 교육용역은 부가가치세 면세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교재나 별도 판매물, 온라인 상품, 스터디카페식 공간대여가 섞이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업 양도양수 방식, 재고와 비품가액, 강사 인건비 처리는 세무사에게 한 번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이 비용 몇십만 원 아끼려다 나중에 몇백만 원으로 돌아오는 걸 여러 번 봤습니다.
학원은 숫자로만 사면 안 됩니다. 아이들이 계속 다닐 이유가 있는지, 학부모가 불안해하지 않을 구조인지, 강사가 남을 이유가 있는지, 임대인이 협조할 사람인지까지 봐야 합니다. 저는 좋은 학원매매 물건이란 싸게 나온 학원이 아니라, 인수한 뒤에도 매출이 버틸 근거가 문서와 사람 양쪽에 남아 있는 학원이라고 봅니다. 권리금은 그다음 이야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