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상한제청원 보고 입찰표 다시 쓴 날

얼마 전 경매 물건을 보던 지인이 전월세상한제청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제도가 바뀌면 월세를 더 받을 수 있는 거 아니냐”는 거였죠. 그날 제가 먼저 물은 건 청원의 찬반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사는 임차인의 계약이 언제 시작됐고, 보증금을 낙찰자가 떠안을 가능성이 있는지였습니다. 입찰표에 적는 숫자는 오늘 확인한 권리관계로 계산해야 하니까요.
청원이 올라와도 임대료가 바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전월세상한제는 주택 임차인이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해 갱신할 때 임대료 증액을 기존 금액의 5%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입니다. 국토교통부의 주택업무편람도 이 범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임대인이 갱신할 때마다 무조건 5%를 올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임차인과 협의할 일이고, 적용되는 지역 조례에 따라 상한이 더 낮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많이 헷갈리는 게 새 임차인과 처음 맺는 계약입니다. 기존 임차인의 갱신과 신규 임대차를 같은 칸에 넣고 계산하면 예상 월세부터 틀어집니다. 청원 역시 제도를 바꿔 달라는 요구일 뿐, 접수나 동의만으로 현행 계약의 조건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전월세상한제청원’이라는 검색어만 보고 폐지나 개정이 확정됐다고 받아들이면 위험합니다. 특정 청원의 내용과 진행 단계가 궁금하다면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실제 청원문과 처리 상태를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경매에서는 5%보다 보증금 순서가 먼저입니다
예를 들어 감정가 3억 원인 아파트에 전세보증금 2억 원을 낸 임차인이 있다고 해보죠. 투자자가 “나중에 전세를 2억 4천만 원으로 놓으면 되겠다”고 계산해도, 먼저 확인할 건 그 임차인의 전입일, 실제 점유, 확정일자와 선순위 권리입니다. 배당으로 보증금이 얼마나 회수되는지, 낙찰자가 인수할 금액이 있는지에 따라 필요한 현금이 크게 달라집니다. 이 숫자를 빼놓은 수익률은 믿을 수 없습니다.
법원 매각물건명세서의 임차인 기재를 출발점으로 삼되, 등기사항증명서와 현황조사서, 배당요구 여부를 맞춰 봐야 합니다. 서류에 적힌 보증금과 실제 계약서 금액이 다르거나 증액 계약이 있었다면 날짜별로 다시 확인해야 하고요.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는 보증금 증액분의 우선변제권을 위해 그 부분에 대한 확정일자가 필요하다고 안내합니다. 최초 보증금과 나중에 올린 보증금을 하나의 순위로 취급하면 권리분석에서 사고가 납니다.
임차인이 대항력을 갖췄다면 낙찰 뒤에도 임대차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배당을 받고 나가야 하는 사안이라 해도 실제 퇴거 시점과 명도 비용은 별개로 잡아야 합니다. 저는 입찰 전에 ‘세입자가 있으니 월세가 나온다’는 문장 대신, ‘누가 얼마를 돌려받고 언제 집을 비울 수 있나’를 먼저 적습니다. 그 한 줄이 대출 실행일과 잔금 준비액까지 바꿉니다.
월세 인상 기대를 숫자로 적어보면
가령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80만 원인 주택을 낙찰받았다고 합시다. 임차인이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월세만 5% 오른다고 단순 가정하면 월 84만 원, 차이는 월 4만 원입니다. 연간으로는 48만 원이죠. 실제 계약에서는 보증금과 월세를 함께 어떻게 조정할지, 증액청구 요건과 전월세 전환 규칙이 무엇인지도 따져야 하므로 이 계산이 곧바로 받을 수 있는 돈은 아닙니다.
그런데 입찰가를 1천만 원 더 쓰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월 4만 원 증가분으로 그 차액만 메우려면 단순 계산으로 20년이 넘게 걸립니다. 그동안의 이자, 재산세, 수선비, 공실, 중개보수는 빠진 숫자입니다. 경락잔금대출도 원하는 금액이 반드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임차보증금 인수 가능성이 있거나 점유 관계가 복잡한 물건이면 대출 조건과 자기자금 계획을 입찰 전에 확인해야 합니다.
청원 뉴스보다 계약서 날짜가 입찰가를 바꿉니다
전월세상한제를 두고 임차인의 주거 안정이 중요하다는 말도, 임대인의 부담을 봐야 한다는 말도 들을 수 있습니다. 저도 현장에서 두 입장을 모두 만났습니다. 다만 투자자가 제도 변화에 기대어 오늘의 입찰가를 높이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제도가 바뀐다 해도 적용 시점과 기존 계약에 대한 경과 규정이 어떻게 정해질지는 개정 내용이 나와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입찰표를 쓰기 전 보는 건 청원 동의 숫자가 아니라 임대차계약서의 날짜와 보증금, 배당받을 순서, 그리고 비슷한 집의 실제 거래 가격입니다. 그 자료로 계산해도 수익이 남을 때만 입찰합니다. 현장에서는 기대 수익보다 이미 존재하는 권리를 한 줄씩 확인한 사람이 오래 버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