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매매 전에 경매 물건부터 뒤져봤더니 보인 진짜 가격

입찰장보다 중개사무소에서 더 긴장한 날이 있다
얼마 전 지인이 아파트매매를 앞두고 저한테 시세를 봐달라고 했습니다. 서울 외곽 24평 구축 아파트였고, 매도 호가는 6억 2천만 원. 지인은 네이버 부동산에 비슷한 매물이 6억 초반에 깔려 있으니 괜찮은 가격 아니냐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바로 등기부등본보다 먼저 경매 사건부터 뒤졌습니다. 직업병입니다.
경매를 오래 하다 보면 호가와 실제 돈이 움직이는 가격이 다르다는 걸 자주 봅니다. 매매시장에서는 집주인이 원하는 가격이 먼저 보이고, 경매시장에서는 돈을 넣겠다는 사람들이 감당한 가격이 보입니다. 물론 경매 낙찰가가 곧 정상 매매가라는 뜻은 아닙니다. 명도, 대출, 권리 하자, 점유 리스크가 붙어 있으니까요. 그래도 주변 낙찰 사례를 보면 그 단지의 바닥 심리는 꽤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 단지는 최근 6개월 안에 같은 평형 경매가 2건 있었습니다. 하나는 감정가 6억 4천만 원에서 1회 유찰 후 5억 5,800만 원에 낙찰, 다른 하나는 감정가 6억 1천만 원에서 5억 9천만 원에 낙찰됐습니다. 둘 다 실거주 가능 상태였고, 선순위 임차인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럼 6억 2천만 원 매매가가 싸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적어도 협상 없이 덥석 잡을 가격은 아니었습니다.
아파트매매 가격은 호가보다 거래 흔적을 봐야 한다
초보 매수자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매물 사이트에 올라온 가격을 시세라고 믿는 겁니다. 솔직히 그건 매도자의 희망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봐야 할 건 최근 실거래가, 같은 동과 층의 거래, 급매 소진 속도, 그리고 경매 낙찰가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단지라도 1층, 탑층, 남향 로열동, 지하철 가까운 동은 가격 차이가 납니다. 30평대 기준으로 같은 단지 안에서도 3천만 원에서 8천만 원까지 벌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특히 구축 아파트는 수리 상태 차이가 큽니다. 샷시, 배관, 화장실, 주방까지 손대면 3천만 원은 금방 나갑니다. 매매가만 보고 싸다 싶어 들어갔다가 입주 전 공사비에서 표정이 굳는 분들 많습니다.
제가 보는 순서는 대략 이렇습니다.
- 최근 3개월과 6개월 실거래가를 나눠서 본다
- 거래된 동, 층, 향, 수리 여부를 최대한 맞춰 비교한다
- 같은 생활권의 대체 단지 가격을 같이 본다
- 최근 경매 낙찰가와 유찰 여부를 확인한다
- 전세가율과 전세 매물 개수를 본다
여기서 전세가율은 꽤 중요합니다. 매매가 6억인데 전세가 3억 6천이면 전세가율 60%입니다. 반대로 전세가 4억 8천이면 80%죠. 전세가가 받쳐주는 단지는 하락장에서도 버티는 힘이 조금 낫습니다. 물론 전세가율만 믿으면 안 됩니다. 입주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지역은 전세부터 흔들리고, 전세가 무너지면 매매가도 따라 내려옵니다.
경매 물건으로 본 진짜 위험 신호
아파트매매를 할 때도 경매식으로 보면 피해야 할 신호가 보입니다. 저는 매수하려는 단지에 경매 물건이 갑자기 늘어나는지 꼭 봅니다. 한두 건은 개인 사정일 수 있지만, 같은 단지에서 짧은 기간에 여러 건이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대출을 무리하게 끼고 산 사람들이 버티지 못하고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23년에 수도권 한 단지에서 비슷한 흐름을 봤습니다. 84타입 호가가 8억 초반이었는데, 경매 감정가는 8억 2천만 원, 첫 낙찰은 7억 1천만 원대였습니다. 그 뒤로 같은 단지 급매가 7억 중반까지 내려왔습니다. 매도자들은 처음엔 버텼지만, 낙찰 사례가 공개되자 매수자들이 그 가격을 들고 협상하기 시작한 겁니다. 시장은 생각보다 냉정합니다.
또 하나 봐야 할 건 관리비 체납입니다. 일반 매매에서는 중개사가 말해주기도 하지만, 대충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매에서는 관리사무소에 전화해서 체납액을 확인합니다. 매매도 똑같이 해야 합니다. 몇 달 밀린 관리비는 잔금 때 조정하면 된다지만, 장기 체납이 반복되는 집은 다른 문제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집 상태가 방치됐거나, 소유자의 자금 사정이 꽤 나빴을 수 있습니다.
대출 가능 금액보다 버틸 수 있는 금액을 먼저 계산한다
아파트매매 상담을 하다 보면 다들 제일 먼저 묻습니다. 대출 얼마까지 나와요? 근데 저는 그 질문보다 월 현금흐름부터 보라고 말합니다. 6억짜리 아파트를 산다고 해보겠습니다. 자기자금 2억 5천만 원, 대출 3억 5천만 원. 금리 4.5%, 30년 원리금 균등이면 월 상환액이 대략 177만 원 안팎입니다. 여기에 관리비 25만 원, 재산세와 보험료, 수리비 적립까지 넣으면 매달 220만 원 가까운 주거 비용이 됩니다.
문제는 집값이 오를 때가 아니라 안 오를 때입니다. 2년 동안 가격이 제자리인데 금리는 오르고, 회사 사정까지 나빠지면 그때부터 집이 자산이 아니라 압박이 됩니다. 경매로 넘어오는 아파트 중 상당수는 처음부터 무리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처음엔 계산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금리, 소득, 전세, 사업 실패 중 하나가 흔들리면서 버티는 힘이 사라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아파트매매 전에 최소 세 가지 숫자를 적어보라고 합니다. 첫째, 금리가 1%포인트 올랐을 때 월 상환액. 둘째, 갑자기 6개월 소득이 줄었을 때 버틸 현금. 셋째, 입주 후 2년 안에 들어갈 수리비. 이 셋을 빼고도 잠이 와야 그 매수는 해볼 만합니다.
중개사 말보다 현장을 더 믿어야 할 때
중개사는 거래를 성사시키는 사람입니다.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역할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매수자는 본인이 직접 불편한 확인을 해야 합니다. 평일 저녁 주차장, 주말 낮 놀이터, 출근 시간 버스 정류장, 비 오는 날 지하주차장 냄새까지 봐야 합니다. 이런 건 등기부등본에 안 나옵니다.
제가 예전에 낙찰받을 뻔했던 아파트가 하나 있었습니다. 서류만 보면 괜찮았습니다. 감정가 대비 82%, 역세권, 임차인 문제 없음.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단지 뒤쪽 옹벽에 물 자국이 심했고, 지하주차장 일부 구역은 곰팡이 냄새가 났습니다. 관리사무소에 물어보니 장마철마다 민원이 반복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입찰을 포기했습니다. 나중에 그 물건은 낙찰됐지만, 인테리어 비용과 누수 보수 문제로 꽤 고생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일반 아파트매매도 같습니다. 깨끗하게 도배된 집만 보면 판단이 흐려집니다. 베란다 모서리, 창틀 실리콘, 싱크대 하부, 욕실 천장 점검구를 봐야 합니다. 매도자가 싫어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수억 원짜리 거래입니다. 불편한 질문 몇 개 못 해서 나중에 1천만 원, 2천만 원씩 쓰는 게 더 아깝습니다.
싸게 사는 것보다 잘못 사지 않는 게 먼저다
아파트매매에서 수익을 내는 사람들은 대단한 촉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비싸게 사지 않고, 위험한 물건을 피하고, 자기 현금흐름 안에서 버팁니다. 경매도 똑같습니다. 낙찰가를 500만 원 더 낮추는 기술보다, 들어가면 안 되는 물건을 거르는 눈이 오래 갑니다.
지인에게도 결국 이렇게 말했습니다. 6억 2천만 원에 바로 계약하지 말고, 5억 8천만 원대 실거래와 5억 5천만 원대 낙찰 사례를 근거로 협상하라고요. 수리비 예상 2천만 원, 취득세와 중개보수, 이사비까지 넣으면 실제 들어가는 돈은 매매가보다 훨씬 큽니다. 매도자가 안 받아들이면 보내도 됩니다. 집은 또 나옵니다.
부동산은 남들이 조급할 때 같이 뛰면 비싸게 잡기 쉽습니다. 저는 경매장에서 그 장면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마지막에 손 한 번 더 들었다가 3천만 원을 더 쓰고, 나와서 표정이 굳는 사람들 말입니다. 아파트를 사는 일도 비슷합니다. 좋은 집을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생활이 무너지지 않는 가격에 사는 게 더 오래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