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매매 직접 여러 번 해보니, 싸게 사는 사람은 계약서 전에 이미 다릅니다

얼마 전 집매매 상담을 하다 또 느낀 것
얼마 전 지인이 집을 산다고 해서 같이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부동산에서는 급매라고 했고, 집주인은 이번 달 안에만 맞춰주면 2천만 원 더 빼주겠다고 했습니다. 초보 입장에서는 귀가 솔깃하죠. 그런데 저는 이런 말부터 들으면 오히려 속도를 늦춥니다. 경매 입찰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이 싸다고 몰릴 때, 진짜 봐야 할 건 가격표가 아니라 그 가격이 왜 나왔는지입니다.
집매매는 경매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등기 깨끗하고, 중개사 끼고, 은행 대출 나오면 끝이라고 보는 거죠. 그런데 현장에서 보면 일반 매매도 돈 잃는 방식은 비슷합니다. 시세를 잘못 보고, 수리비를 과소평가하고, 대출 조건을 대충 믿고, 계약금 넣은 뒤에야 문제를 발견합니다. 경매는 위험이 눈에 보이는 편이고, 일반 매매는 위험이 포장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싸게 나온 집은 이유부터 봐야 합니다
제가 제일 먼저 보는 건 가격이 아닙니다. 거래가 안 된 기간, 주변 실거래, 집주인의 매도 사유, 잔금 일정, 임차인 유무를 같이 봅니다. 예를 들어 같은 단지 84제곱미터가 최근 7억 2천만 원에 거래됐는데 어떤 집이 6억 7천만 원에 나왔다고 합시다. 겉으로는 5천만 원 싼 집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보니 누수 흔적이 있고, 샷시가 오래됐고, 세입자 만기가 8개월 남았다면 계산이 달라집니다.
누수 보수와 도배, 장판, 욕실 일부 수리만 해도 1천만 원에서 2천만 원은 금방 나갑니다. 세입자와 협의가 꼬이면 내가 원하는 시점에 입주도 못 합니다. 잔금일을 맞추려고 단기 자금을 쓰면 이자 비용도 붙습니다. 그러면 5천만 원 싸게 산 줄 알았던 집이 실제로는 1천만 원 싸거나, 심하면 비싸게 산 집이 됩니다.
경매 물건을 볼 때도 저는 최저가만 보고 들어가지 않습니다. 감정가 8억짜리가 6억 4천까지 내려왔다고 해도, 관리비 체납, 유치권 주장, 대항력 있는 임차인, 선순위 권리 하나가 있으면 얘기가 끝납니다. 일반 집매매도 똑같습니다. 싼 가격에는 대부분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인지, 아니면 피해야 할 위험인지 나누는 게 먼저입니다.
집매매 전 현장에서 꼭 보는 것들
집을 보러 가면 많은 분들이 채광, 구조, 인테리어부터 봅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신발장 열기 전에 공용부부터 봅니다. 지하주차장 천장에 물 자국이 있는지, 엘리베이터 내부가 관리되는지, 계단실 냄새가 심한지, 복도에 짐이 쌓여 있는지 봅니다. 집 안보다 공용부가 더 솔직할 때가 많습니다.
집 내부에서는 천장 모서리, 창틀 아래, 베란다 벽면, 싱크대 하부장을 봅니다. 누수는 예쁘게 도배하면 감춰집니다. 그런데 냄새와 곰팡이 흔적은 완전히 숨기기 어렵습니다. 보일러 연식도 봐야 합니다. 보일러가 10년 넘었고 샷시까지 낡았다면, 매수 후 2~3년 안에 큰돈이 나갈 수 있습니다.
- 최근 실거래가와 호가 차이가 큰지 확인합니다.
- 같은 동, 같은 라인, 같은 향의 거래를 따로 봅니다.
- 등기부등본의 근저당, 가압류, 압류, 가처분을 확인합니다.
- 임차인이 있다면 전입일, 확정일자, 보증금, 만기일을 확인합니다.
- 관리비 체납과 장기수선충당금 정산 여부를 확인합니다.
이 정도만 해도 분위기에 휩쓸려 계약하는 일은 많이 줄어듭니다. 집매매에서 초보가 제일 많이 하는 실수는 집을 보고 마음이 먼저 가는 겁니다. 마음이 가면 숫자를 자기한테 유리하게 해석합니다. 3천만 원 수리비가 들 것 같은데 1천만 원이면 되겠지, 전세가 안 나갈 수도 있는데 금방 나가겠지, 대출 금리가 오를 수도 있는데 괜찮겠지. 현장에서는 이런 낙관이 제일 비쌉니다.
대출 가능 금액보다 버틸 수 있는 금액이 중요합니다
집매매에서 은행이 5억을 빌려준다고 해서 내가 5억을 빌려도 되는 건 아닙니다. 은행은 담보와 소득을 보고 한도를 말합니다. 내 생활비, 아이 교육비, 부모님 병원비, 직장 불안정성까지 대신 계산해주지 않습니다. 저는 경락잔금대출 받을 때도 항상 최악의 경우를 놓고 봅니다. 낙찰받고 명도가 3개월 늦어지면 이자를 버틸 수 있는지, 매도 계획이 밀리면 추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따집니다.
일반 매매도 똑같습니다. 예를 들어 8억짜리 집을 사면서 대출 4억 5천만 원을 받는다고 해보죠. 금리가 연 4.5퍼센트라면 1년 이자만 약 2천만 원입니다. 원리금 상환이면 월 부담은 더 커집니다. 여기에 취득세, 중개보수, 이사비, 인테리어, 가전 교체까지 붙으면 계약서에 찍힌 매매가보다 실제 투입금은 훨씬 커집니다.
저는 매수자에게 항상 현금 2천만 원에서 3천만 원 정도는 별도로 남겨두라고 말합니다. 집을 사고 나면 꼭 예상 밖의 비용이 나옵니다. 누수 보수, 보일러 교체, 잔금일 조정에 따른 이자, 기존 집 매도 지연 같은 것들입니다. 영끌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버틸 돈 없이 가격 상승만 기대하고 들어가는 집매매는 투자라기보다 기도에 가깝습니다.
계약서 쓰기 전 확인할 것
계약 직전에는 분위기가 묘합니다. 중개사는 다른 매수자도 보고 갔다고 하고, 집주인은 오래 기다리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때 조급해지면 가장 중요한 문구를 놓칩니다. 저는 계약서 특약을 대충 쓰는 매매를 제일 불안하게 봅니다. 말로 약속한 건 분쟁이 생기면 힘이 약합니다. 잔금 전 하자 발견 시 처리, 임차인 명도 조건, 대출 불가 시 계약 해제 조건, 관리비와 공과금 정산 기준은 문장으로 남겨야 합니다.
특히 대출 조건은 조심해야 합니다. 단순히 대출 안 나오면 계약 해제라고 쓰는 것과, 매수인의 귀책 없는 금융기관 대출 불가 시 계약금을 반환하고 해제한다는 취지로 쓰는 건 느낌이 다릅니다. 실제 문구는 상황에 맞게 전문가에게 확인받는 게 낫습니다. 몇 줄 아끼려다 계약금 수천만 원이 묶이는 경우를 봤습니다.
등기부등본도 계약 당일, 잔금 당일 다시 떼어봐야 합니다. 어제 깨끗했던 등기에 오늘 압류가 붙을 수도 있습니다. 드문 일이라고요? 경매 현장에 오래 있으면 드문 일이 누군가에게는 실제 손실이 되는 걸 많이 봅니다. 그래서 저는 귀찮아도 반복 확인합니다.
집매매는 좋은 집 고르기보다 나쁜 선택을 피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10년 넘게 경매와 공매를 하면서 느낀 건, 돈을 버는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겁니다. 오래 살아남는 사람은 화려하게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크게 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집매매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타이밍, 완벽한 가격, 완벽한 집을 찾으려 하면 오히려 판단이 흐려집니다.
저는 집을 살 때 세 가지를 끝까지 봅니다. 내가 이해한 가격인지, 내가 감당할 비용인지, 문제가 생겼을 때 빠져나갈 길이 있는지. 이 세 가지가 흐리면 아무리 집이 마음에 들어도 한 발 물러섭니다. 부동산은 한 번 계약하면 되돌리는 데 비용이 큽니다. 그래서 조금 늦게 사는 건 괜찮지만, 모른 채 급하게 사는 건 오래 후회로 남습니다.
집매매는 서류와 숫자, 그리고 현장 냄새가 같이 맞아야 합니다. 부동산 말만 듣고 움직이지 말고, 내 눈으로 보고 내 계산기로 다시 두드려야 합니다. 경매장에서 배운 가장 현실적인 원칙도 결국 같습니다. 싸게 사는 것보다, 위험을 싸다고 착각하지 않는 게 먼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