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매라던 집을 경매 투자자 눈으로 직접 매매해봤더니

급매라는 말에 바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얼마 전 지인이 아파트 하나를 보러 가자고 해서 같이 다녀왔습니다. 중개사 말로는 급매였습니다. 주변 실거래가가 6억 2천만 원인데, 매도자가 5억 8천만 원까지 내렸다고 했죠. 겉으로 보면 4천만 원 싸게 사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오래 굴러본 사람은 가격표만 보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경매장에서도 감정가보다 싸다고 덥석 들어갔다가 보증금 날리는 사람을 많이 봤거든요.
매매도 비슷합니다. 경매처럼 법원 기록을 보는 건 아니지만, 돈 잃는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등기부 한 줄, 대출 조건 하나, 세입자 계약 내용 하나가 나중에 발목을 잡습니다. 특히 초보는 ‘시세보다 싸다’는 말에 마음이 먼저 갑니다. 근데 싸게 나온 이유가 반드시 있습니다. 이사 일정이 급한 경우도 있지만, 하자나 권리 문제, 대출 한도 문제, 세입자 문제 때문에 시장에서 오래 안 팔린 물건도 많습니다.
그날 본 집도 처음엔 괜찮아 보였습니다. 역까지 도보 9분, 초등학교도 가까웠고, 단지 관리 상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등기부를 떼어보니 근저당이 4억 6천만 원 잡혀 있었습니다. 매매가 5억 8천만 원짜리 집에 기존 대출이 꽤 컸던 겁니다. 잔금일에 말소만 잘 되면 문제는 없지만, 매도자 자금 사정이 빠듯하면 잔금 처리 과정에서 삐끗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물건은 계약서 특약을 대충 쓰면 안 됩니다.
매매에서도 권리분석은 기본입니다
경매 권리분석을 해본 사람은 등기부등본을 습관처럼 봅니다. 매매에서는 더 쉽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솔직히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경매는 위험이 문서에 꽤 드러납니다. 임차인 현황, 매각물건명세서, 등기부, 감정평가서가 있죠. 반대로 일반 매매는 정보가 흩어져 있습니다. 매도자와 중개사의 설명을 믿어야 하는 부분도 생깁니다.
등기부에서는 소유자, 근저당, 압류, 가압류, 가처분, 신탁 여부를 봅니다. 특히 신탁등기가 있으면 초보는 조심해야 합니다. 매도인이라고 나온 사람이 실제 처분 권한을 바로 행사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경매에서도 신탁 물건은 구조를 모르면 손대지 않습니다. 매매라고 해서 갑자기 쉬워지는 게 아닙니다.
또 하나는 전입세대 확인입니다. 매매는 세입자가 없는 집이라고 들었는데, 막상 주민센터에서 확인해보면 전입자가 남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족, 친척, 전 세입자, 법인 직원 등 사연은 다양합니다. 잔금 치르고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주소를 빼지 않고 있으면 은근히 골치 아픕니다. 대출 실행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나중에 명도 비슷한 상황까지 갈 수 있습니다.
- 등기부등본은 계약 전, 중도금 전, 잔금 당일에 다시 봅니다.
- 근저당 말소 조건은 계약서 특약에 구체적으로 적습니다.
- 전입세대 열람과 확정일자 여부는 세입자 유무와 별개로 확인합니다.
- 관리비 체납, 장기수선충당금, 선수관리비도 금액을 직접 확인합니다.
저는 매매 계약서에 ‘잔금 지급과 동시에 근저당권 및 제한물권 전부 말소’ 같은 문구를 꼭 넣습니다. 말은 길어도 별거 아닙니다. 돈 주는 날 깨끗한 등기로 넘겨받겠다는 뜻입니다. 구두 약속은 현장에서 힘이 약합니다. 나중에 문제 생기면 결국 계약서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시세조사는 실거래가만 보면 반쪽입니다
초보가 매매 물건을 볼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실거래가 앱만 보는 겁니다. 물론 실거래가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숫자는 이미 지나간 거래입니다. 지금 매수자가 붙는 가격, 매도자가 실제로 내릴 수 있는 가격, 전세가와 대출 한도까지 같이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단지 84㎡가 최근 6억 1천만 원에 거래됐다고 해도 층, 향, 동, 수리 상태에 따라 2천만 원에서 5천만 원은 금방 벌어집니다. 저층에 앞동 가림이 심한 집과 고층 남향 집을 같은 가격으로 보면 안 됩니다. 경매 감정가도 비슷합니다. 감정가 5억이라고 해서 그 집 가치가 5억인 건 아닙니다. 감정 시점이 6개월 전이면 시장은 이미 달라져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매매 시세를 볼 때 세 가지를 따로 적습니다. 최근 실거래가, 현재 호가, 급매 체결 가능가입니다. 여기에 전세가를 붙입니다. 만약 매매가 5억 8천만 원, 전세가 3억 6천만 원이라면 갭은 2억 2천만 원입니다. 그런데 취득세, 중개수수료, 등기비, 이사비, 수리비까지 넣으면 실제 필요한 현금은 더 늘어납니다. 계산을 대충 하면 수익률이 좋아 보입니다. 비용을 넣으면 평범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쓰는 간단한 계산법
매매가가 5억 8천만 원인 집을 산다고 해보겠습니다. 취득세와 부대비용을 보수적으로 800만 원, 중개보수와 등기 관련 비용을 300만 원, 도배와 장판 등 최소 수리를 700만 원으로 잡으면 매입가 외에 1,800만 원이 더 들어갑니다. 세입자를 맞추는 데 한 달이 비면 이자와 관리비도 발생합니다. 그러면 ‘4천만 원 싸게 샀다’던 물건의 여유가 생각보다 얇아집니다.
경매에서는 낙찰가보다 부대비용을 더 무서워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매매도 같습니다. 특히 구축 아파트는 수리비가 튑니다. 싱크대, 욕실, 샷시 중 하나만 건드려도 1천만 원 단위로 올라갑니다. 매도자가 ‘깨끗하다’고 말해도 매수자 기준의 깨끗함과 임차인 기준의 깨끗함은 다릅니다.
계약서 특약은 싸움 막는 보험입니다
매매에서 계약서 특약을 대충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중개사가 알아서 해주겠지 생각합니다. 그런데 중개사는 거래를 성사시키는 역할이지, 내 투자 손실을 대신 책임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좋은 중개사도 많지만, 최종 판단은 매수자 몫입니다.
제가 자주 넣는 특약은 단순합니다. 잔금일 기준 등기부상 권리 제한이 없어야 한다는 내용, 기존 대출과 압류가 말소되지 않으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내용, 임차인 또는 전입자가 있을 경우 잔금 전까지 완전히 해결한다는 내용입니다. 물건 상태도 중요합니다. 누수, 보일러, 전기, 수도, 창호 하자는 잔금 전 확인하고, 발견된 하자는 누가 부담할지 적어둬야 합니다.
특약은 길게 쓰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애매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문제 발생 시 원만히 협의한다’는 말은 실제 분쟁에서 약합니다.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가 보여야 합니다. 경매에서 권리 순위 하나 틀리면 돈이 날아가듯이, 매매에서는 특약 한 문장이 나를 지켜줄 때가 있습니다.
좋은 매매는 싸게 사는 것보다 안 다치는 게 먼저입니다
저는 경매를 오래 했지만, 일반 매매를 낮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초보에게는 매매가 더 나을 때가 많습니다. 경매는 낙찰 후 잔금, 인도명령, 명도, 체납 관리비, 점유자 협상까지 이어집니다. 처음부터 그 모든 변수를 감당하기 어렵다면 매매로 시장을 익히는 것도 괜찮습니다.
다만 매매라고 마음을 놓으면 안 됩니다. 싸게 산 줄 알았는데 대출이 덜 나오고, 세입자 일정이 꼬이고, 수리비가 예상보다 커지면 경매 못지않게 힘듭니다. 특히 요즘처럼 금리와 전세 수요가 흔들리는 시장에서는 매수 전 계산을 보수적으로 해야 합니다. 팔 때 받을 가격보다 버틸 수 있는 현금 흐름을 먼저 봐야 합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물건은 놓쳐도 다시 나오지만, 나쁜 계약은 한 번 잡으면 오래 갑니다. 매매는 서류가 깨끗하고, 가격이 납득되고, 내 자금 계획 안에서 버틸 수 있을 때 들어가는 겁니다. 남들이 급매라고 부르는 물건보다, 내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물건이 진짜 좋은 물건에 가깝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