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낀 경매 물건 직접 따라가 봤더니, 숫자보다 무서운 건 한 줄이었다

얼마 전 법원 입찰장에서 전세 낀 아파트 물건을 보고 한 초보 투자자가 제게 물었습니다. 감정가가 4억 2천만 원인데 최저가가 2억 9천만 원까지 내려왔고, 주변 실거래가가 4억 초반이면 괜찮은 거 아니냐고요. 겉으로 보면 싸 보입니다. 그런데 경매장에서 싸 보이는 물건은 대개 이유가 있습니다. 특히 전세가 얽힌 물건은 등기부 한 줄, 전입세대 열람 한 줄, 배당요구 여부 하나 때문에 수천만 원이 왔다 갔다 합니다.
저도 초반에는 전세 낀 물건을 너무 단순하게 봤습니다. 낙찰받으면 세입자는 보증금을 배당받고 나가겠지, 이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실제 현장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습니다. 세입자가 대항력을 갖고 있으면 낙찰자가 보증금을 떠안는 구조가 될 수 있고, 배당을 일부만 받는 세입자와 명도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도 생깁니다. 입찰가 계산을 잘못하면 싸게 산 게 아니라 비싸게 떠안은 겁니다.
전세 낀 물건에서 제일 먼저 보는 것
저는 전세 있는 경매 물건을 보면 제일 먼저 말소기준권리부터 봅니다. 보통 근저당권, 압류, 가압류, 담보가등기 같은 권리 중 가장 앞선 권리가 기준이 됩니다. 이 기준보다 세입자의 전입일자와 확정일자가 빠른지 늦은지가 중요합니다. 말소기준권리보다 전입이 빠르면 대항력이 생길 수 있고, 이때는 낙찰자가 보증금을 인수할 가능성을 따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가 감정가 5억 원, 최저가 3억 5천만 원이라고 해보겠습니다. 등기부상 2021년 3월 근저당이 있고, 임차인의 전입일이 2020년 11월입니다. 보증금은 2억 8천만 원입니다. 초보 눈에는 3억 5천만 원에 낙찰받아 5억짜리 집을 사는 그림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임차인이 대항력을 갖고 있고 배당에서 보증금을 다 못 받는다면, 낙찰자가 남은 보증금을 인수해야 할 수 있습니다. 낙찰가 3억 5천만 원에 인수보증금 2억 원이 붙으면 총투입금은 5억 5천만 원이 됩니다. 이미 시세를 넘어갑니다.
그래서 전세 물건은 낙찰가만 보면 안 됩니다. 낙찰가, 인수 가능 보증금, 명도 비용, 체납관리비, 취득세, 중개수수료, 잔금대출 이자까지 같이 놓고 봐야 합니다. 저는 입찰표 쓰기 전에 엑셀에 보수적으로 넣습니다. 명도비 300만 원이면 되겠지 싶은 물건도 700만 원으로 잡아봅니다. 이자를 3개월만 잡지 않고 6개월도 넣어봅니다. 그래도 남는 물건만 입찰합니다.
전입일자만 보고 들어가면 다칩니다
초보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전입일자 하나만 보고 판단하는 겁니다. 전입이 말소기준권리보다 늦으니 괜찮다, 이런 식입니다. 물론 중요한 기준은 맞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점유자가 실제 임차인인지, 가족인지, 위장임차인 의심은 없는지, 소액임차인 최우선변제 대상인지까지 같이 봐야 합니다.
예전에 수도권 빌라 물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감정가 2억 1천만 원, 최저가 1억 3천만 원이었습니다. 전입세대 열람에는 한 명이 올라와 있었고, 매각물건명세서에는 보증금 6천만 원 임차인이 기재돼 있었습니다. 전입은 후순위였습니다. 겉으로는 인수할 보증금이 없어 보였죠.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문 앞 우편물이 오래 쌓여 있었고, 관리비 체납이 1년 가까이 있었습니다. 주변 중개업소에 물어보니 실제 거주는 거의 안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런 물건은 명도가 쉬울 수도 있지만, 반대로 연락 안 되는 점유자 때문에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 봐야 할 게 소액임차인입니다. 지역과 기준 시점에 따라 최우선변제 금액이 달라집니다. 법원 서류만 대충 보고 넘어가면 배당표에서 예상과 다른 숫자가 나옵니다. 저는 소액임차인 가능성이 보이면 해당 지역의 기준 보증금과 최우선변제 범위를 다시 확인합니다. 이건 감으로 처리할 일이 아닙니다. 대법원 경매정보와 주민센터 서류, 현장 확인이 같이 맞아야 마음이 놓입니다.
전세 보증금이 높을수록 수익률 계산은 더 냉정해야 합니다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경매 물건이 자주 나옵니다. 매매가 3억 원, 전세보증금 2억 7천만 원 같은 구조가 대표적입니다. 집주인은 자기 돈을 적게 넣고 샀고, 시장이 조금만 꺾이면 버티기 어렵습니다. 이런 물건이 경매로 나오면 최저가가 내려가도 낙찰자가 실제로 가져갈 수 있는 이익은 생각보다 얇습니다.
제가 보는 방식은 단순합니다. 현재 매도 가능 가격을 보수적으로 잡고, 거기서 모든 비용을 뺍니다. 예를 들어 예상 매도금액이 3억 2천만 원이라면 낙찰가 2억 6천만 원만 보고 6천만 원 남는다고 계산하지 않습니다. 취득세와 법무비용, 대출이자, 수리비, 미납관리비, 명도비, 보유기간 중 관리비, 매도 중개수수료를 빼야 합니다. 여기에 혹시 인수할 임차보증금이 있다면 숫자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실제로 낙찰가 2억 5천만 원, 시세 3억 원짜리 빌라를 따라가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 계산으로는 3천만 원 이상 남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내부 수리비가 1천만 원 가까이 나왔고, 명도가 두 달 밀리면서 이자와 관리비가 붙었습니다. 막상 매도하려니 같은 단지 급매가 쏟아져 2억 8천만 원에도 손님이 뜸했습니다. 숫자상 수익이 있던 물건이 현장에서는 거의 본전이 됐습니다. 전세 낀 물건은 장부 위 이익보다 빠져나가는 돈이 먼저 보일 때가 많습니다.
명도는 법보다 사람 문제가 먼저 튀어나옵니다
전세 세입자가 있는 물건은 명도에서 감정이 섞입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보증금이 전 재산인 경우가 많습니다. 낙찰자는 법적으로 소유권을 취득했지만, 세입자는 하루아침에 집을 비워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이걸 무시하고 처음부터 강하게 밀어붙이면 일이 길어집니다.
저는 낙찰 후 점유자를 만나면 먼저 배당 상황을 확인합니다. 보증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이사 갈 곳은 있는지, 필요한 기간은 어느 정도인지 듣습니다. 물론 무조건 끌려가면 안 됩니다. 날짜와 금액은 문서로 남겨야 하고, 이사비를 지급한다면 조건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열쇠 인도, 전입 말소, 점유 해제 확인이 같이 이뤄져야 합니다.
명도비도 감정으로 정하면 안 됩니다. 보증금을 거의 다 배당받는 세입자와 한 푼도 못 받는 세입자의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세 사기 피해에 가까운 상황이면 대화가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낙찰자가 모든 책임을 떠안는 건 아니지만, 현장에서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결국 낙찰자입니다. 이 부분까지 감당할 마음이 없으면 전세 낀 물건은 피하는 게 낫습니다.
초보라면 이런 전세 물건은 그냥 넘기는 게 낫습니다
제가 초보에게 자주 말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대항력 있는 임차인의 보증금 인수 여부가 애매한 물건, 선순위 임차인이 있는데 배당요구를 하지 않은 물건, 다가구주택처럼 임차인이 여러 명인 물건, 전입세대와 현장 점유가 맞지 않는 물건은 처음부터 욕심내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특히 다가구주택은 방마다 세입자가 있고, 보증금 합계가 건물 가격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등기부는 하나인데 사람은 여러 명입니다. 배당 순서, 확정일자, 전입일자, 실제 점유 부분을 다 따져야 합니다. 서류 한 장 놓치면 낙찰받고도 머리가 아파집니다. 초보가 첫 물건으로 다가구 전세 물건을 고르는 건 운전면허 따자마자 빗길 고속도로에 올라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또 전세보증금이 시세에 바짝 붙어 있는 물건도 조심해야 합니다. 매매가가 조금만 내려가도 보증금 반환이 막히는 구조입니다. 이런 집은 낙찰받아도 되팔 때 매수자가 보수적으로 봅니다. 요즘 매수자들도 바보가 아닙니다. 등기부, 전세 이력, 주변 급매까지 다 봅니다.
전세 낀 경매 물건은 싸게 보일수록 더 천천히 봐야 합니다. 입찰장에서 남들이 손 들 때 같이 따라 들어가는 순간, 내 돈으로 남의 문제를 사 오는 일이 생깁니다. 저는 지금도 전세 물건을 보면 수익보다 먼저 빠져나갈 돈과 시간을 씁니다. 그래도 남는다면 입찰하고, 조금이라도 찜찜하면 그냥 나옵니다. 경매는 못 산 물건 때문에 망하는 게 아니라, 잘못 산 물건 때문에 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