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계약 전 등기부등본 직접 떼어봤더니, 숫자보다 순서가 더 무서웠습니다

입찰장보다 전세 계약서 앞에서 더 긴장한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 지인이 전세 계약을 앞두고 등기부등본을 보내왔습니다. 보증금은 2억 4천만 원, 주변 시세보다 1천만 원 정도 싸고 집도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등기부등본을 보자마자 저는 계약금 넣지 말라고 했습니다. 집주인이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이미 선순위 근저당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경매를 오래 하다 보면 등기부등본은 그냥 서류가 아닙니다. 돈 받을 순서표입니다. 전세 세입자 입장에서는 집이 마음에 드는지보다 내 보증금이 몇 번째 줄에 서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권리 순서 하나 잘못 보면 살던 집에서 나가야 하는데 보증금은 일부만 받는 상황도 생깁니다.
전세 계약 전에 등기부등본 보는법을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모든 항목을 법무사처럼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초보는 딱 세 군데를 집중해서 보면 됩니다. 표제부, 갑구, 을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내 보증금과 선순위 채권을 합쳐서 집값과 비교해야 합니다.
표제부에서는 내가 계약할 집이 맞는지부터 봅니다
등기부등본 첫 장에 나오는 표제부는 건물의 신분증 같은 부분입니다. 주소, 건물 종류, 면적, 대지권 같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여기서 대충 넘기면 안 됩니다. 공인중개사가 보여준 집과 등기상 집이 같은지 확인하는 단계입니다.
아파트라면 동, 호수, 전유면적을 봅니다. 계약서에는 101동 804호라고 되어 있는데 등기부에는 다른 호수로 되어 있으면 바로 멈춰야 합니다. 다세대주택이나 빌라에서는 더 꼼꼼해야 합니다. 같은 건물 안에 201호, 202호가 붙어 있어도 등기상 구조가 다르거나 면적이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빌라 전세에서는 대지권 표시도 봐야 합니다. 대지권이 없거나 지분 관계가 이상한 물건은 나중에 매각될 때 평가가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경매 현장에서는 이런 집이 감정가보다 훨씬 낮게 낙찰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세입자는 감정가가 아니라 실제 낙찰 가능 금액을 기준으로 위험을 봐야 합니다.
- 계약서 주소와 등기부 주소가 같은지 확인
- 아파트, 오피스텔, 다세대의 동·호수 일치 여부 확인
- 전유면적이 안내받은 면적과 크게 다르지 않은지 확인
- 빌라라면 대지권 표시가 있는지 확인
갑구는 집주인과 소유권 사고를 보는 자리입니다
갑구에는 소유권 관련 내용이 적힙니다. 쉽게 말해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이 집에 소유권 다툼이나 압류 같은 문제가 있는지 보는 칸입니다. 전세 계약에서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현재 소유자와 계약 상대방이 같은 사람인지입니다.
예를 들어 등기부 소유자는 김민수인데 계약하러 나온 사람은 김민수의 배우자라고 해봅시다. 이럴 때 위임장과 인감증명서 없이 그냥 계약하면 위험합니다. 현장에서 보면 가족이니까 괜찮다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돈 문제는 가족관계보다 서류가 먼저입니다.
갑구에서 가압류, 압류, 가처분, 경매개시결정 같은 단어가 보이면 초보자는 그 물건을 피하는 게 낫습니다. 물론 전문가라면 사건 내용을 따져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세 세입자는 수익을 내러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보증금을 지키러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굳이 복잡한 물건에서 실력을 시험할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예전에 본 빌라 물건 중에는 전세 시세가 1억 8천만 원인데 갑구에 가압류가 3건 붙어 있던 집이 있었습니다. 중개사는 곧 풀릴 거라고 했지만, 세입자 입장에서는 풀린 다음 계약해도 늦지 않습니다. 등기부에 찍힌 위험은 말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을구에서는 근저당 금액보다 접수일자를 먼저 봅니다
을구는 전세 계약에서 가장 많이 다치는 구간입니다. 여기에는 근저당권, 전세권, 임차권 같은 담보 권리가 나옵니다. 은행 대출이 있으면 보통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금액과 순서입니다.
근저당권 채권최고액이 1억 8천만 원이라고 적혀 있으면 실제 대출금은 그보다 낮을 수 있습니다. 보통 은행은 대출금의 110~130% 정도를 채권최고액으로 잡습니다. 그렇다고 안심하면 안 됩니다. 경매에서는 등기된 채권최고액과 배당 순위가 보증금 회수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전세에서 중요한 것은 내 확정일자보다 먼저 설정된 권리가 얼마인지입니다. 선순위 근저당이 있고 그 뒤에 내가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으면, 경매가 넘어갔을 때 은행이 먼저 배당받습니다. 나는 남는 돈에서 받습니다. 여기서 보증금 사고가 납니다.
예를 들어 집 시세가 3억 원이고 선순위 근저당 채권최고액이 1억 6천만 원, 내 전세보증금이 1억 8천만 원이라고 해보겠습니다. 숫자만 더하면 3억 4천만 원입니다. 이미 집값을 넘습니다. 게다가 경매 낙찰가는 시세보다 낮을 수 있습니다. 2억 5천만 원에 낙찰되면 선순위 은행이 가져간 뒤 내 보증금은 크게 비게 됩니다.
전세 안전선은 보수적으로 잡아야 합니다
아파트처럼 거래가 활발한 물건도 저는 선순위 채권과 보증금 합계가 실거래가의 70~80%를 넘으면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빌라나 오피스텔은 더 낮게 봅니다. 특히 신축 빌라는 분양가, 호가, 감정가가 실제 매각가와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개사가 이 집은 보증보험 가능하다고 말해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보증보험 심사에서 거절되는 경우도 있고, 가입 가능하다는 말과 실제 가입 완료는 완전히 다릅니다. 계약 특약에는 잔금 전까지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면 계약을 해제하고 지급한 돈을 반환한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적는 게 좋습니다.
- 을구의 근저당권 채권최고액 확인
- 근저당권 접수일자가 내 전입·확정일자보다 앞서는지 확인
- 선순위 채권과 전세보증금 합계를 시세와 비교
- 보증보험은 말이 아니라 실제 가입 가능 여부로 판단
등기부등본은 계약 당일, 잔금 당일에도 다시 봐야 합니다
초보가 많이 놓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계약 전에 한 번 본 등기부등본을 잔금 날까지 믿는 겁니다. 등기부는 살아 있는 서류입니다. 오늘 깨끗해도 내일 근저당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약 직전, 잔금 직전, 전입신고 전후로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실제로 제가 상담받은 사례 중에 계약 때는 깨끗했는데 잔금 전에 집주인이 추가 대출을 받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세입자는 잔금만 치르면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사이 등기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이런 사고는 부지런하면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습니다.
잔금은 가능하면 평일 오전에 치르는 편이 낫습니다. 잔금 지급 후 바로 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도 있지만, 초보라면 시간 여유를 두고 당일 완료 여부를 직접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전입신고와 실제 거주, 확정일자가 맞물려야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문제가 정리됩니다.
계약서 특약도 허술하게 쓰면 안 됩니다. 잔금일까지 새로운 근저당, 압류, 가압류 등 권리 변동이 생기면 임차인은 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임대인은 지급받은 금액을 즉시 반환한다는 문구가 필요합니다. 말로 약속한 내용은 분쟁이 생기면 힘이 약합니다.
초보라면 이런 전세 물건은 그냥 보내도 됩니다
전세 물건을 보다 보면 싸고 넓고 위치도 좋은데 등기부가 찜찜한 집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집을 놓쳐도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매 투자자는 위험을 가격으로 계산하지만, 실거주 전세 세입자는 위험을 생활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 차이가 큽니다.
특히 선순위 근저당이 과한 집, 갑구에 압류나 가압류가 있는 집, 소유자가 자주 바뀐 집, 신탁등기가 걸린 집은 초보가 혼자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신탁등기는 임대 권한 자체를 따져야 해서 더 복잡합니다. 집주인이 등기상 소유자처럼 보여도 실제 임대차 권한이 제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세는 싸게 들어가는 것보다 안전하게 나오는 게 먼저입니다. 월세 몇십만 원 아끼려다 보증금 수천만 원이 묶이면 생활 전체가 흔들립니다. 제가 현장에서 오래 보니 돈을 번 사람보다 돈을 지킨 사람이 오래 갑니다. 등기부등본 보는법도 결국 그 목적 하나입니다.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 10분, 잔금 보내기 전 10분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자기 보증금을 지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