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계약 전 등기부등본 직접 떼어봤더니, 집주인 말보다 먼저 보이는 것들

입찰장보다 월세 계약서 앞에서 더 방심합니다
얼마 전 지인이 월세방 계약을 앞두고 등기부등본을 보내왔습니다. 보증금 3천만 원에 월세 80만 원, 신축 오피스텔이라 깨끗했고 중개사도 “융자 조금 있는 정도”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등기부등본을 보니 근저당권 채권최고액이 2억 4천만 원, 집 시세는 주변 실거래 기준으로 3억 초반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보증금이 작아 보여도 마음 놓고 들어갈 물건은 아닙니다.
경매를 오래 하다 보면 등기부등본은 그냥 서류가 아니라 사고 이력서처럼 보입니다. 집주인이 어떤 돈을 빌렸는지, 누가 권리를 잡고 있는지, 혹시 압류나 가압류가 붙었는지 전부 흔적이 남습니다. 월세는 전세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데, 보증금이 들어가는 순간 얘기가 달라집니다. 보증금 500만 원이면 몰라도 2천만 원, 5천만 원 넘어가면 등기부등본을 대충 보면 안 됩니다.
등기부등본은 세 칸만 제대로 봐도 절반은 피합니다
등기부등본은 크게 표제부, 갑구, 을구로 나뉩니다. 처음 보는 분들은 글자가 많아서 겁먹는데, 월세 계약 전에는 순서만 잡으면 됩니다.
표제부: 내가 계약할 집이 맞는지 확인
표제부에서는 주소, 건물 종류, 면적을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계약서에 적힌 주소와 등기부등본 주소가 정확히 맞느냐입니다. 오피스텔이나 다세대주택은 호수 하나 차이로 완전히 다른 집입니다. 302호 보러 갔는데 계약서나 등기부에는 303호가 적히는 실수가 실제로 있습니다. 현장에서 이런 건 웃고 넘길 일이 아닙니다.
- 계약서 주소와 등기부 주소가 같은지
- 동, 호수, 전유부분 면적이 맞는지
- 건축물대장상 용도와 실제 사용이 크게 다르지 않은지
다가구주택은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다세대는 호실별로 등기가 따로 있지만, 다가구는 건물 전체가 하나의 등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201호에 월세로 들어가도 등기부에는 건물 전체 권리관계가 보입니다. 선순위 보증금이 여러 명 쌓여 있으면 내 보증금 순위가 뒤로 밀릴 수 있습니다.
갑구: 집주인이 진짜 주인인지 보는 칸
갑구에서는 소유자를 확인합니다. 계약하는 사람이 등기부상 소유자와 같은 사람인지 주민등록증으로 대조해야 합니다. 배우자, 부모, 자녀가 대신 계약하겠다고 나오면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봐야 합니다. 말로 “가족이에요”는 경매장에서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갑구에 가압류, 압류, 경매개시결정 같은 단어가 보이면 초보자는 멈추는 게 낫습니다. 특히 세금 압류가 붙어 있는 집은 계산이 복잡해집니다. 국세나 지방세는 일반 임차인보다 무섭게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월세방 하나 구하는 데 이런 싸움까지 끌고 갈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을구: 근저당권이 월세 보증금을 위협하는 칸
을구에서는 근저당권, 전세권, 임차권등기 같은 담보 권리를 봅니다. 월세 계약에서 가장 많이 놓치는 게 근저당권입니다. 등기부에 채권최고액 1억 2천만 원이라고 적혀 있으면 실제 대출 원금은 보통 그보다 적을 수 있습니다. 은행이 연체이자까지 감안해서 120퍼센트나 130퍼센트로 잡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임차인 입장에서는 보수적으로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시세 2억 5천만 원짜리 빌라에 근저당 채권최고액 1억 8천만 원이 있고, 내 월세 보증금이 3천만 원이라면 얼핏 괜찮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매로 넘어가면 감정가대로 팔린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2억 5천 감정이 1회 유찰돼 1억 7천대까지 내려가면 은행이 먼저 가져가고, 내 보증금은 뒤로 밀립니다. 경매 현장에서는 이런 물건이 생각보다 자주 나옵니다.
월세 보증금이 작아도 순위는 냉정합니다
임차인이 보증금을 지키려면 기본적으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챙겨야 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말하는 대항력은 실제 입주와 전입신고가 맞물려야 생깁니다. 확정일자는 보증금 배당 순서를 따질 때 중요합니다. 주민센터나 정부24, 인터넷등기소 같은 공적 서비스에서 처리할 수 있지만, 처리했다는 사실보다 시점이 더 중요합니다.
근데 여기서 초보가 많이 착각합니다.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으면 무조건 안전하다고 믿는 겁니다. 아닙니다. 내가 들어가기 전에 이미 은행 근저당이 잡혀 있으면 그 은행이 선순위입니다. 나는 그 뒤에 줄을 서는 사람입니다. 줄을 늦게 섰는데 앞사람보다 먼저 돈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 계약 전 등기부등본 1회 확인
- 잔금 당일 등기부등본 다시 확인
- 입주 즉시 전입신고
- 확정일자 바로 받기
- 보증금 송금은 등기부상 소유자 명의 계좌로 하기
잔금 당일 등기부를 다시 보라는 말을 귀찮아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계약하고 잔금 치르는 사이에 근저당이 새로 잡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드물다고요? 경매 사건 기록을 보면 그 드문 일이 누군가에게는 전 재산 문제로 터집니다. 등기부등본 발급 비용 몇 천 원 아끼려다 보증금 몇 천만 원을 위험하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초보가 피해야 할 월세 등기부 신호
제가 초보라면 아래 표시가 있는 집은 웬만하면 넘깁니다. 수익형 부동산 투자자라면 계산기를 두드려볼 수 있지만, 실거주 월세 세입자는 굳이 어려운 물건에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 갑구에 압류, 가압류, 가처분이 있는 집
- 경매개시결정 등기가 이미 찍힌 집
- 을구 근저당 채권최고액이 시세 대비 과한 집
- 소유자가 자주 바뀐 집
- 신탁등기가 있는데 구조를 설명하지 못하는 집
- 다가구인데 선순위 임차인 보증금 총액을 확인하지 못하는 집
신탁등기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등기부상 소유자가 신탁회사로 되어 있고 실제 임대인은 시행사나 분양 관계자인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집은 임대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신탁원부까지 봐야 하는데, 초보자가 혼자 해석하기 쉽지 않습니다. 중개사가 “다 이렇게 계약한다”고 말해도 그 말이 내 보증금을 책임져주지는 않습니다.
다가구 월세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월세방 하나지만 건물 전체에 선순위 임차인이 여러 명 있을 수 있습니다. 내 앞에 보증금 1억짜리 세입자가 5명 있다면 내 보증금 2천만 원은 생각보다 뒤쪽입니다. 집주인에게 선순위 임차보증금 내역을 요구하고,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관련 내용이 제대로 적히는지 봐야 합니다.
제가 월세 계약 전에 실제로 보는 순서
저는 월세방을 봐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먼저 시세부터 봅니다. 등기부에 근저당이 얼마인지 봐도 집값 감이 없으면 위험도를 계산할 수 없습니다. 같은 채권최고액 1억 5천만 원이라도 시세 5억 아파트와 시세 1억 8천만 원 빌라는 전혀 다릅니다.
그다음 등기부등본을 발급해서 소유자, 압류 여부, 근저당 금액, 접수일자를 봅니다. 접수일자는 권리 순서를 판단하는 날짜라서 중요합니다. 먼저 접수된 권리가 앞줄입니다. 월세 계약서 작성일보다 등기 접수일이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보증금 규모를 현실적으로 봅니다. 보증금 1천만 원짜리 월세와 7천만 원짜리 반전세는 위험 관리 수준이 달라야 합니다. 보증금이 커질수록 전세처럼 봐야 합니다. 보증보험 가입 가능 여부도 확인할 만하지만, 보험이 된다는 말만 듣고 끝내면 안 됩니다. 실제 가입 심사에서 거절되는 경우도 있으니 계약 조건에 특약을 넣어두는 편이 낫습니다.
특약은 거창할 필요 없습니다. 잔금일 기준 등기부등본상 새로운 제한물권이나 압류가 확인되면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을 반환한다는 식으로 적어두면 됩니다. 물론 문구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금액이 크면 공인중개사와 법률 전문가에게 확인받는 게 낫습니다.
월세는 매달 나가는 돈만 보이니까 보증금 위험을 작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경매 법정에서는 사정 봐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등기부등본 한 장을 제대로 읽는 습관만 있어도 피할 수 있는 사고가 꽤 많습니다. 저는 초보에게 좋은 물건을 고르는 법보다, 먼저 이상한 물건을 거르는 눈을 갖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