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예방, 제가 계약서 앞에서 멈춰 세운 집들의 공통점

얼마 전 지인 동생이 신축 빌라 전세 계약서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집은 깨끗했고, 중개사는 “보증보험도 될 거다”라고 했고, 보증금은 주변보다 2천만 원 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등기부를 보니 소유권 이전이 두 달 전에 끝났고, 매매가와 전세금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경매장 오래 다니다 보면 이런 물건은 냄새가 납니다. 싸서 좋은 게 아니라, 싸게 보여야 계약이 되는 물건일 때가 있습니다.
전세사기예방은 어려운 법률 지식 싸움처럼 보이지만, 현장에서 보면 순서 싸움입니다. 계약 전에 볼 것, 계약서에 박아 넣을 것, 잔금 당일 다시 확인할 것. 이 순서만 지켜도 큰 사고는 많이 피합니다.
싸게 나온 집보다 먼저 봐야 할 숫자
초보들이 제일 많이 흔들리는 말이 “이 가격이면 바로 나가요”입니다. 사실 좋은 집이 빨리 나가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위험한 집도 빨리 계약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집을 봤다면 첫 번째는 인테리어가 아니라 시세입니다.
제가 보는 기준은 단순합니다. 매매 시세 3억 원짜리 빌라에 전세금 2억 7천만 원이면 이미 불편합니다. 여기에 근저당 채권최고액이 3천만 원만 있어도 내 보증금은 뒤로 밀립니다. 경매로 넘어가서 낙찰가가 2억 4천만 원에 그치면 계산은 차갑습니다. 선순위가 먼저 가져가고, 임차인은 남은 돈을 기다리는 구조가 됩니다.
특히 빌라, 다세대, 오피스텔은 아파트보다 시세가 흐릿합니다. 같은 동네라도 층, 향, 준공연도, 엘리베이터, 주차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큽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한국부동산원, HUG 안심전세 앱 같은 곳에서 최근 거래를 같이 봐야 합니다. 한 군데 숫자만 믿으면 안 됩니다. 중개사가 보여주는 매물 호가만 보고 “시세가 이 정도구나” 하면 이미 끌려가는 겁니다.
등기부는 계약 당일 한 번 더 봐야 합니다
등기부등본은 계약 며칠 전에 한 번, 계약 당일 한 번, 잔금 직전에 한 번 봅니다. 과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저는 이걸 아깝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등기부 한 통 값 아끼려다 보증금 몇 억을 잃는 사례를 경매 법정에서 너무 많이 봤습니다.
갑구에서는 소유자를 봅니다. 계약하러 나온 사람이 등기부상 소유자인지, 대리인이라면 위임장과 인감증명서가 제대로 있는지 봐야 합니다. 소유권 이전이 최근에 여러 번 반복됐다면 더 조심합니다. 바지 임대인을 세워 놓고 전세금을 받아 넘기는 구조에서 이런 흔적이 자주 보입니다.
을구에서는 근저당, 전세권, 가압류, 압류를 봅니다. 근저당은 실제 빌린 돈이 아니라 채권최고액 기준으로 계산해야 합니다. 보통 대출 원금보다 110~130% 정도 크게 잡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대인이 “실제 대출은 얼마 안 돼요”라고 말해도 등기부에 남아 있는 권리가 우선입니다.
신탁 등기도 초보가 많이 놓칩니다. 집 명의가 신탁회사로 되어 있거나 신탁 관련 문구가 있으면, 임대인이 마음대로 전세 계약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신탁원부와 신탁회사의 동의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다들 이렇게 계약해요”라는 말로 넘길 물건이 아닙니다.
보증보험 가능하다는 말은 증거가 아닙니다
전세사기예방에서 보증보험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입 가능할 거예요”와 “가입 완료”는 완전히 다릅니다. 저는 계약서 쓰기 전에 HUG, HF, SGI 기준으로 보증 가입 가능성을 직접 확인하라고 말합니다. 안심전세 앱에서도 시세, 전세가율, 임대인 관련 정보 일부를 볼 수 있으니 귀찮아도 눌러봐야 합니다.
보증보험이 안 되는 물건은 이유가 있습니다. 보증금이 시세 대비 높거나, 선순위 채권이 많거나, 임대인 이력이 좋지 않거나, 건축물 상태가 애매한 경우가 있습니다. 신축 빌라에서 “준공 직후라 아직 안 되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말이 맞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실제 가입 가능 여부입니다.
계약서 특약도 꼭 챙겨야 합니다. 예를 들면 잔금 지급과 동시에 기존 근저당을 말소한다는 내용, 임대인의 국세·지방세 체납 사실이 확인되면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을 반환한다는 내용,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할 경우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는 식입니다. 특약은 예쁜 문장이 아니라 나중에 싸울 때 잡을 손잡이입니다.
- 근저당 말소 조건은 구두 약속으로 두지 않습니다.
- 보증보험 가입 불가 시 처리 방식을 계약서에 적습니다.
- 임대인 체납 확인에 협조한다는 문구를 넣습니다.
- 잔금 전 등기 변동이 생기면 계약을 중단할 수 있게 합니다.
다가구와 원룸 건물은 선순위 임차인이 진짜 변수입니다
아파트 전세와 다가구 전세는 위험 계산이 다릅니다. 아파트는 보통 한 집에 한 임차인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다가구주택은 건물 전체가 하나의 등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301호에 살아도 경매에서는 건물 전체가 한 덩어리로 움직입니다.
문제는 선순위 임차인입니다. 나보다 먼저 전입하고 확정일자를 받은 세입자들의 보증금이 앞에 서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건물 시세가 10억 원이고, 선순위 임차인 보증금 합계가 6억 원인데 내가 1억 5천만 원에 들어간다고 해봅시다. 여기에 근저당까지 있으면 경매 배당표에서 내 차례가 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가구는 전입세대 열람, 확정일자 부여 현황, 임대차 현황을 확인해야 합니다. 임대인이 협조를 꺼리거나 “다른 세입자 정보라 못 보여준다”고만 하면 저는 빠집니다. 개인정보를 다 보자는 게 아닙니다. 내 보증금보다 앞서는 돈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해야 계약 판단이 됩니다.
잔금 치른 뒤가 아니라 잔금 치르기 전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계약 후에는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빨리 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잔금 당일 바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그 전에 더 중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잔금 보내기 직전 등기부를 다시 보는 겁니다.
실제로 계약 당시에는 깨끗했는데 잔금 전날 근저당이 설정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임대인이 잔금 받기 직전에 대출을 일으키면, 임차인은 뒤통수를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잔금 송금 직전에 등기부를 열람하고, 중개사무소에서 말소 서류와 대출 상환 절차를 확인한 뒤 돈을 보냅니다.
입금 계좌도 소유자 명의인지 봐야 합니다. 배우자, 법인 직원, 분양대행사 계좌로 보내달라는 말이 나오면 멈춰야 합니다. 대리 계약은 가능하지만, 가능하다는 것과 안전하다는 것은 다릅니다. 돈은 한 번 나가면 되돌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제가 초보라면 이런 물건은 피합니다. 시세가 애매한 신축 빌라, 전세가율이 80%를 넘는 집, 소유자가 최근 바뀐 집, 임대인이 체납 확인을 싫어하는 집, 보증보험 가입을 말로만 넘기는 집, 다가구인데 선순위 보증금 자료를 안 주는 집. 수익형 부동산을 오래 하다 보면 좋은 기회보다 피해야 할 기회를 먼저 알아보는 눈이 생깁니다. 전세도 똑같습니다. 조금 덜 예쁜 집에 살더라도, 내 보증금이 돌아올 구조가 보이는 집을 고르는 게 훨씬 낫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