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야매매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2시간 만에 발 뺀 이야기

얼마 전 지인이 임야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평당 가격만 보면 주변 밭의 절반 수준이고, 사진으로는 소나무도 예쁘게 서 있더군요. 그런데 현장에 가서 2시간 정도 걸어보고 바로 말했습니다. 이 땅은 싸서 좋은 게 아니라, 빠져나갈 길이 없어서 싼 겁니다.
임야는 가격보다 먼저 길을 봐야 합니다
임야매매에서 초보가 제일 많이 놓치는 게 진입로입니다. 지도에는 길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가보면 남의 사유지 농로인 경우가 많습니다. 차 한 대 겨우 들어가는 길도 소유권이 따로 있으면 나중에 건축, 벌목, 공사차 진입에서 계속 걸립니다.
제가 봤던 물건 중 하나는 매매가가 8천만 원이었고 주변 시세보다 30%쯤 싸 보였습니다. 등기부는 깨끗했습니다. 근데 현장에 가보니 입구 40미터가 다른 사람 땅이었습니다. 매도인은 동네에서 다 같이 쓰는 길이라고 했지만, 토지대장과 지적도에는 도로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땅은 사는 순간부터 협상 상대가 생깁니다. 그 협상이 잘되면 다행이고, 틀어지면 내 땅이 내 땅 같지 않습니다.
- 지적도상 도로와 실제 도로가 맞는지 확인
- 차량 진입 폭이 공사 차량 기준으로 가능한지 확인
- 도로 부분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확인
- 오래 쓴 길이라도 사용권이 확실한지 확인
보전산지냐 준보전산지냐, 여기서 돈이 갈립니다
임야라고 다 같은 임야가 아닙니다. 산지관리법상 보전산지와 준보전산지로 나뉘고, 보전산지는 다시 임업용산지와 공익용산지 성격을 가집니다. 말이 좀 딱딱한데, 현장식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나라가 이 산은 함부로 건드리지 말자고 보는 땅이면 활용 폭이 확 줄어듭니다.
토지이음에서 토지이용계획을 보면 용도지역, 산지구분, 각종 제한구역이 같이 나옵니다. 여기서 농림지역, 보전산지, 공익용산지, 개발행위 제한, 문화재, 군사시설보호 같은 단어가 겹치면 단순 임야매매가 아니라 인허가 싸움이 됩니다. 초보가 싸다고 덥석 물면 안 되는 구간입니다.
산지전용허가가 필요한 경우에는 사업계획서, 피해방지계획, 대체산림자원조성비, 복구비 예치 같은 비용과 절차가 붙을 수 있습니다. 면적이 커지거나 경사가 심하면 재해위험성 검토도 따라올 수 있고요. 매입가 1억짜리 땅이 실제로는 1억 3천, 1억 5천짜리 프로젝트가 되는 일이 여기서 생깁니다.
싼 임야에는 보통 이유가 붙어 있습니다
현장에서 오래 다니다 보면 가격표만 봐도 느낌이 옵니다. 주변 임야가 평당 20만 원인데 어떤 필지만 7만 원이면, 매도인이 천사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맹지, 급경사, 분묘, 송전선, 보전산지, 토석 문제, 경계 불명확 같은 이유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분묘는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산에 봉분이 하나라도 있으면 위치, 연고자, 설치 시기, 관리 흔적을 봐야 합니다. 명도보다 더 까다로운 게 분묘 협의입니다. 돈으로 풀리면 낫지만, 감정이 섞이면 매수자가 생각한 일정은 쉽게 무너집니다.
경계도 중요합니다. 임야는 말뚝이 없거나 오래된 경우가 많습니다. 매도인이 저기 능선까지라고 말해도 믿으면 안 됩니다. 실제 경계는 지적도와 측량으로 봐야 합니다. 저는 임야를 볼 때 마음에 들수록 측량 가능성과 경계 분쟁 가능성을 더 집요하게 봅니다. 좋은 땅일수록 옆 땅 주인과의 선 하나가 돈입니다.
임야매매 전에는 계산서를 다시 써야 합니다
초보자는 매매가만 놓고 수익률을 잡습니다. 그런데 임야는 부대비용이 꽤 큽니다. 취득세 같은 세금, 중개보수, 법무비, 측량비, 벌채비, 토목 설계비, 진입로 확보 비용, 산지전용 관련 부담, 대출 이자까지 넣어야 실제 숫자가 보입니다.
예를 들어 9천만 원에 산 임야를 1억 2천만 원에 팔 수 있을 것 같다고 가정해보죠. 겉으로는 3천만 원 차익입니다. 그런데 취득 비용과 보유 비용, 진입로 협의금, 측량비, 잡목 제거 비용이 1천만 원 넘게 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거기에 매도까지 2년 걸리면 기회비용도 생깁니다. 산은 아파트처럼 매수자가 매일 줄 서는 물건이 아닙니다.
대출도 현실적으로 봐야 합니다. 임야는 담보 평가가 보수적으로 나오는 편입니다. 특히 개발 가능성이 낮거나 거래 사례가 적은 지역은 기대한 만큼 돈이 안 나옵니다. 잔금 계획을 대출에만 기대고 계약하면, 잔금일 앞두고 식은땀 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제가 보는 임야는 결국 세 가지입니다
첫째, 당장 개발이 가능한 땅인지 봅니다. 둘째, 개발은 어렵지만 보유 가치가 있는 땅인지 봅니다. 셋째, 그냥 싸 보이기만 하는 땅인지 가릅니다. 이 셋을 구분하지 못하면 임야매매는 투자보다 수집에 가까워집니다.
저라면 초보에게 이런 땅은 피하라고 말합니다. 지적도상 도로가 없는 맹지, 보전산지 제한이 강한 땅, 경사가 심해 장비가 못 들어가는 땅, 분묘가 여러 기 있는 땅, 주변 거래가 거의 없는 산골짜기 땅입니다. 반대로 도로가 확실하고, 주변에 실제 건축 사례가 있고, 토지이용계획상 제한이 단순하며, 면적을 쪼개거나 붙여 활용할 여지가 있는 땅은 시간을 들여 볼 만합니다.
임야는 싸게 사는 게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못 쓰는 땅을 걸러내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저는 현장에서 발목까지 흙 묻히고 내려온 뒤에야 숫자를 다시 봅니다. 책상에서 좋아 보이는 산은 많습니다. 돈이 되는 산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그래서 임야매매는 서류 한 장, 길 한 줄, 봉분 하나를 귀찮게 보는 사람이 오래 버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