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시세 믿고 입찰했다가 2천만 원 날릴 뻔한 이야기

얼마 전 법원 입찰장에서 초보 투자자 한 분이 제 옆자리에서 계속 휴대폰 시세 앱만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물건은 수도권 외곽 25평 아파트였고, 감정가는 4억 2천만 원, 1회 유찰돼 최저가는 2억 9천만 원대였습니다. 화면상 최근 실거래가가 3억 8천만 원으로 찍혀 있으니 싸 보였겠죠. 그런데 현장 다녀온 제 눈에는 그 가격이 그대로 믿을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시세 앱 숫자는 출발점이지 답안지가 아닙니다
아파트시세를 볼 때 초보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실거래가 하나 보고 “이 정도면 안전하다”라고 판단하는 겁니다. 저도 초반에는 그랬습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 자료, 부동산 플랫폼 호가, 네이버 매물 가격만 놓고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경매는 그렇게 얌전하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단지 84㎡라도 3층, 15층, 탑층, 필로티 위 세대 가격이 다릅니다. 남향인지, 동향인지, 앞동에 가려지는지, 엘리베이터 가까운지, 주차장이 지하인지 지상인지도 가격에 들어갑니다. 실거래가 5억짜리와 내가 보려는 물건이 같은 평형이라고 해서 같은 물건은 아닙니다.
제가 현장에서 보는 순서는 대충 이렇습니다.
- 최근 6개월 실거래가와 1년 전 거래 흐름을 나눠서 본다
- 현재 매물 호가 중 실제로 팔릴 만한 가격만 따로 본다
- 같은 동, 같은 라인, 같은 층대 거래가 있는지 찾는다
- 전세가와 월세 환산 수익률을 같이 본다
- 급매가 쌓였는지, 매물이 갑자기 줄었는지 확인한다
시세 앱에 4억이라고 떠도 현장 부동산에 전화하면 “그건 거래된 지 오래된 가격이고 지금은 3억 6천에도 잘 안 나가요”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앱에는 낮게 보이는데 실제로는 전세 수요가 좋아서 급매가 바로 빠지는 단지도 있습니다. 숫자는 화면에 있지만, 온도는 현장에 있습니다.
제가 2천만 원 손실을 피했던 물건
몇 년 전 경기 남부 쪽에서 59㎡ 아파트 경매 물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감정가는 3억 1천만 원, 최저가는 2억 4천만 원 정도였습니다. 같은 단지 실거래가가 2억 9천만 원에서 3억 사이였으니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습니다. 권리관계도 깨끗했습니다. 말소기준권리 이후 권리는 소멸, 임차인도 배당요구를 했고 대항력 문제도 없어 보였습니다.
근데 이상하게 매물이 많았습니다. 같은 평형이 12개 정도 나와 있었고, 그중 3개는 집주인이 가격을 계속 내리고 있었습니다. 현장 부동산 세 군데에 전화했더니 공통으로 나온 말이 있었습니다. “그 동은 도로 소음이 심하고, 바로 앞에 공사 예정지가 있어서 손님들이 보고 돌아가요.”
직접 가봤습니다. 낮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저녁 퇴근 시간에 다시 가보니 차 소리가 꽤 컸습니다. 베란다 문을 열면 대화가 끊길 정도였습니다. 같은 단지 안에서도 조용한 동은 2억 9천, 문제 있는 동은 2억 6천 후반에도 거래가 쉽지 않았습니다. 만약 앱 시세만 믿고 2억 7천만 원 후반에 썼다면 취득세, 법무비, 명도비, 중개수수료까지 넣고 빠져나올 때 거의 남는 게 없었을 겁니다.
결국 저는 입찰하지 않았고, 그 물건은 다른 분이 낙찰받았습니다. 나중에 등기 변동과 매물 추이를 보니 몇 달 동안 매도 호가를 내리며 고생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경매에서 돈을 버는 것보다 중요한 날이 있습니다. 안 들어가서 지키는 날입니다.
아파트시세 볼 때 저는 세 가지 가격을 따로 적습니다
초보분들한테 늘 말합니다. 아파트시세는 하나가 아닙니다. 적어도 세 개로 쪼개서 봐야 합니다. 첫째는 팔리는 가격, 둘째는 팔고 싶은 가격, 셋째는 내가 낙찰받아도 되는 가격입니다.
1. 팔리는 가격
이건 실거래가입니다. 다만 신고가 하나만 보면 안 됩니다. 최근 거래가 4억 1천, 3억 9천, 3억 7천으로 내려오고 있다면 지금 기준은 4억 1천이 아니라 3억 7천에 더 가깝습니다. 거래량이 없는 상태에서 찍힌 한 건의 가격은 더 조심해야 합니다. 가족 간 거래, 특수관계 거래, 수리 상태 차이까지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팔고 싶은 가격
이건 매도 호가입니다. 주인이 받고 싶은 가격이라 실제 시장가보다 높게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무시하면 안 됩니다. 호가가 계속 낮아지고 있는지, 급매 표시가 붙은 물건이 몇 개인지, 같은 평형 매물이 갑자기 늘었는지를 보면 분위기가 보입니다. 저는 같은 단지 매물이 10개 이상 쌓여 있는데 거래가 두 달 넘게 없다면 입찰가를 상당히 보수적으로 잡습니다.
3. 내가 낙찰받아도 되는 가격
이 가격이 제일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예상 매도가가 4억이라고 해도 낙찰가를 3억 8천으로 쓰면 남는 게 별로 없을 수 있습니다. 취득세, 법무사 비용, 명도 협의금, 이자, 수리비, 중개보수, 보유기간 동안 관리비까지 들어갑니다. 저는 보통 초보라면 예상 매도가에서 최소 8~12% 정도는 비용과 변동 리스크로 비워두라고 말합니다. 시장이 흔들리는 시기에는 더 넓게 잡습니다.
현장 시세조사는 전화보다 발품에서 갈립니다
전화 시세조사는 꼭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전화만 하면 반쪽입니다. 부동산 중개사님들도 바쁩니다. 전화로 “이 아파트 얼마예요?”라고 물으면 대충 호가 중심으로 답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 이 가격에 실제로 보러 오는 사람이 있는지
- 급매로 바로 팔려면 얼마까지 봐야 하는지
- 전세는 며칠 안에 맞출 수 있는지
- 같은 단지에서 사람들이 피하는 동이나 라인이 있는지
- 수리 안 된 집과 올수리 집 가격 차이가 얼마인지
저는 최소 세 군데는 통화합니다. 말이 서로 다르면 현장을 갑니다. 단지 입구, 지하주차장, 엘리베이터, 복도 냄새, 분리수거장, 어린이집 동선, 상가 공실까지 봅니다. 아파트시세는 집 안에서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단지 전체 분위기와 생활 편의가 같이 가격을 만듭니다.
특히 경매 물건은 내부를 못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수록 보수적으로 봐야 합니다. 같은 평형 올수리 매물이 5억이라면 경매 물건도 5억이라고 보면 곤란합니다. 내부 상태를 모르면 기본 수리비를 잡아야 합니다. 25평 기준 도배, 장판, 싱크대, 욕실 일부까지 손대면 1천만 원은 금방 넘어갑니다. 샷시까지 들어가면 숫자가 달라집니다.
초보가 피해야 할 시세 착시
아파트시세에서 제일 무서운 건 싸 보이는 착시입니다. 감정가 대비 70%라고 해서 무조건 싼 게 아닙니다. 감정평가 시점이 1년 전이고 그 사이 시장이 15% 빠졌다면 이미 최저가가 현재 시세와 비슷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전세가 착시입니다. 매매가 4억, 전세가 3억 5천이면 갭이 작아 보여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전세 매물이 많고 세입자 구하는 데 두세 달 걸리는 지역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잔금대출 이자와 공실 기간 관리비를 버텨야 합니다. 경락잔금대출도 낙찰가 전부를 빌려주는 게 아닙니다. 지역, 개인 신용, 소득, 규제, 물건 상태에 따라 한도가 달라집니다.
제가 싫어하는 물건은 이런 특징이 겹친 물건입니다.
- 최근 실거래는 높은데 현재 매물이 많이 쌓인 단지
- 감정가 산정 이후 주변 가격이 뚜렷하게 빠진 지역
- 입지는 애매한데 낙찰 경쟁만 센 소형 아파트
- 전세가율만 보고 들어가야 수익이 나는 물건
- 내부 상태를 전혀 모르는 데도 수리비를 낮게 잡아야 겨우 남는 물건
이런 물건은 계산서가 예쁘게 나옵니다. 엑셀에서는 수익이 납니다. 그런데 실제 잔금 치르고, 점유자 만나고, 수리 견적 받고, 매수 문의 뜸해지는 순간 표정이 바뀝니다. 경매는 숫자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사람과 현장이 남습니다.
입찰가를 쓰기 전 보는 것
입찰 전날 저는 다시 한 번 시세를 봅니다. 전날 밤에 새 급매가 올라오는 경우도 있고, 같은 단지 거래가 신고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은 변화 같지만 입찰가 300만 원, 500만 원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낙찰받고 나서 “어제 급매가 있었네”를 알게 되면 속이 꽤 쓰립니다.
제 기준으로 아파트시세 조사는 낙찰가를 높이기 위한 작업이 아닙니다. 포기할 이유를 찾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문제가 안 보이면 그때 들어갑니다. 수익은 공격적으로 계산하면 커 보이고, 보수적으로 계산하면 작아 보입니다. 그런데 오래 살아남는 쪽은 대체로 후자였습니다.
초보 때는 좋은 물건을 잡는 눈보다 위험한 물건을 거르는 눈이 먼저입니다. 아파트시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싸게 팔 수 있다는 기대보다, 안 팔릴 때 얼마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법원 입찰장 분위기에 휩쓸려 100만 원씩 올리다 보면 어느 순간 투자자가 아니라 구매자가 됩니다. 저는 아직도 입찰표 쓰기 전에 이 생각을 합니다. 이 가격에 낙찰받아도 밤에 잠이 오는가. 그 질문에 마음이 걸리면, 그날은 펜을 내려놓는 게 낫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