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약주의사항, 경매장에서 보증금 날린 세입자들 보며 적어본 진짜 이야기

법원 복도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얼마 전 법원 매각기일에 갔다가 또 비슷한 장면을 봤습니다. 한 빌라 물건 앞에서 세입자로 보이는 분이 한참을 서 있더군요. 매각물건명세서에는 임차보증금 2억 1천만 원, 확정일자 있음, 배당요구 있음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순위 근저당이 1억 8천만 원, 압류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감정가 3억짜리 빌라가 2억 초반에 낙찰되면 세입자 보증금은 온전히 돌아오기 어렵습니다.
전세계약주의사항을 말할 때 저는 늘 이 장면부터 떠올립니다. 계약서 예쁘게 쓰고, 중개사 사무실에서 도장 찍고, 집주인이 친절했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전세는 집을 빌리는 계약이지만, 실제로는 내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집주인에게 맡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계약 전 30분을 대충 넘기면, 나중에 3년을 끌려다닐 수 있습니다.
등기부등본은 한 번 보는 게 아니라 세 번 봅니다
초보 세입자들이 제일 많이 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계약 당일에 중개사가 보여주는 등기부등본만 보고 안심하는 겁니다. 그런데 권리관계는 계약 전, 잔금 전, 전입 직전까지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제가 경매에서 본 위험한 물건 중에는 계약 당시에는 깨끗했는데 잔금일 직전에 근저당이 들어간 경우도 있었습니다.
등기부등본에서는 최소한 갑구와 을구를 나눠 봐야 합니다. 갑구에는 소유권, 가압류, 압류, 가처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을구에는 근저당권, 전세권 같은 담보권이 나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순서입니다. 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보다 앞선 권리가 있으면, 경매로 넘어갔을 때 그 권리가 먼저 돈을 가져갑니다.
숫자로 보면 더 무섭습니다
예를 들어 시세 4억 원짜리 아파트에 선순위 근저당이 2억 8천만 원 잡혀 있고, 내가 전세보증금 2억 원으로 들어간다고 해봅시다. 겉으로는 집값이 전세금보다 높아 보입니다. 그런데 경매에 들어가면 감정가 그대로 팔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1회 유찰 후 3억 2천만 원에 낙찰되고, 비용과 선순위 채권을 빼면 내 보증금은 일부만 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세계약주의사항 중 첫 번째는 집값 대비 보증금 비율을 냉정하게 보는 겁니다. 빌라, 오피스텔, 신축 다세대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매매사례가 적고, 분양가와 실거래가가 다르고, 감정가도 실제 시장 가격과 벌어지는 일이 많습니다. 저는 초보라면 매매가의 70%를 넘는 전세는 일단 멈춰서 다시 계산하라고 말합니다.
집주인보다 먼저 봐야 할 사람은 ‘채권자’입니다
전세계약을 할 때 집주인 인상이 좋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솔직히 경매장에 나오는 집주인 중에도 처음에는 다 친절했을 겁니다. 문제는 성격이 아니라 돈의 흐름입니다. 대출이 많은 집주인, 여러 채를 갭투자로 돌리는 집주인, 세금 체납이 있는 집주인은 상황이 틀어질 때 세입자 보증금까지 같이 흔들립니다.
특히 국세, 지방세 체납은 조심해야 합니다. 등기부에 바로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더 까다롭습니다. 계약 전에는 집주인에게 납세증명서 제출을 요청하는 게 좋습니다. 말 꺼내기 민망하다고 그냥 넘어가면, 나중에 더 민망한 상황이 옵니다. 내 돈 1억, 2억이 걸린 일인데 눈치 볼 일이 아닙니다.
- 등기부등본상 소유자와 계약 당사자가 같은지 확인
- 대리인 계약이면 위임장, 인감증명서, 신분증 확인
- 근저당 채권최고액이 실제 대출금보다 크다는 점 감안
- 전세보증금과 선순위 채권을 합쳐 시세를 넘지 않는지 계산
- 잔금 지급 직전 등기부등본을 다시 발급해 변동 여부 확인
근저당을 볼 때도 단순히 1억이라고 보면 안 됩니다. 등기부에는 보통 채권최고액으로 표시됩니다. 은행 대출 1억이면 채권최고액은 1억 2천만 원, 1억 3천만 원으로 잡히는 경우가 흔합니다. 경매 배당에서는 이 금액 범위가 중요해집니다. 중개사가 “실제 대출은 적다”고 말해도, 세입자는 등기부에 적힌 숫자를 기준으로 보수적으로 봐야 합니다.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는 잔금일의 숙제입니다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는 많이들 압니다. 그런데 아는 것과 당일에 제대로 하는 건 다릅니다. 잔금 주고 이사하느라 정신없어서 하루 이틀 미루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하루 사이에 다른 권리가 들어오면 순위가 밀릴 수 있습니다. 경매에서는 하루 차이가 돈의 순서를 바꿉니다.
대항력은 보통 주택 인도와 전입신고를 갖추고 다음 날 0시부터 효력이 생깁니다. 확정일자는 우선변제권과 연결됩니다. 쉽게 말하면,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내 보증금을 배당받기 위한 줄 서기 번호표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잔금일에는 이사, 열쇠, 전입신고, 확정일자까지 한 묶음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특약은 예의 문구가 아니라 방어 장치입니다
계약서 특약도 대충 쓰면 안 됩니다. 저는 전세 계약에서 최소한 몇 가지는 넣으라고 말합니다. 잔금일까지 현재 등기부 권리관계를 유지한다는 문구, 잔금일 전 신규 근저당이나 제한물권 설정 시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을 반환한다는 문구, 선순위 대출 말소 조건이 있다면 잔금과 동시에 말소한다는 문구입니다.
예를 들어 집주인이 “잔금 받으면 대출 갚겠다”고 했다면, 말로 끝내면 안 됩니다. 은행 상환계좌, 말소 절차, 법무사 동행 여부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잔금 받고 다른 데 급한 돈부터 막는 집주인도 있습니다. 사람을 의심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돈이 오가는 순서를 문서와 절차로 고정하자는 겁니다.
보증보험은 만능 방패가 아닙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하면 마음이 놓이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모든 집이 가입되는 것도 아니고, 가입했다고 모든 상황이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나 SGI서울보증 기준에 따라 보증금, 선순위채권, 주택가격, 임대인 조건을 따집니다. 특히 빌라 전세는 심사에서 걸리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제가 보는 순서는 이렇습니다. 먼저 위험한 집을 피하고, 그다음 보증보험을 붙이는 겁니다. 위험한 물건을 잡아놓고 보험으로 덮으려 하면 순서가 거꾸로입니다. 보험 가입 가능 여부는 계약 전 단계에서 확인해야 하고, 특약에도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할 경우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는 게 안전합니다.
그리고 전세가율도 봐야 합니다. 주변 실거래가가 3억인데 전세가 2억 9천만 원이면,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순간 빠져나올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매매가가 조금만 내려가도 깡통전세가 됩니다. 신축 빌라에서 “분양가가 4억이니 전세 3억은 안전하다”는 말은 그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분양가는 파는 사람이 만든 숫자이고, 실거래가는 시장이 만든 숫자입니다.
제가 초보라면 이런 전세는 피합니다
전세계약주의사항을 길게 말했지만, 현장에서 보면 피해야 할 물건은 냄새가 비슷합니다. 시세가 불명확한 신축 빌라, 주변 매매거래가 거의 없는 다세대, 집주인이 여러 채를 보유한 갭투자형 물건, 선순위 대출이 큰 집, 잔금일에 대출 말소를 약속만 하는 집입니다. 여기에 임대인이 서류 제출을 불편해하면 저는 더 보수적으로 봅니다.
물론 모든 빌라가 위험하고 모든 아파트가 안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파트도 대출이 과하면 위험하고, 빌라도 권리관계가 깨끗하고 보증보험까지 가능하면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분위기가 아니라 계산입니다. 등기부, 시세, 선순위채권, 보증보험, 특약, 잔금일 절차를 하나씩 맞춰보면 위험한 계약은 대체로 걸러집니다.
전세 계약은 집을 고르는 일이면서 동시에 손실 가능성을 줄이는 일입니다. 좋은 집을 싸게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는 게 먼저입니다. 경매장에서 세입자들이 들고 온 계약서를 보면, 대부분 계약 당시에는 별일 아니라고 넘긴 작은 구멍이 나중에 크게 벌어져 있었습니다. 전세는 겁먹고 접근할 필요는 없지만, 만만하게 보면 안 되는 계약입니다. 저는 아직도 잔금 전 등기부를 다시 뽑을 때마다 잠깐 숨을 고릅니다. 그 정도 긴장감은 있어야 내 돈을 지킬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