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상한제 폐지 소식에 경매장을 다시 봤더니

입찰장에서 옆자리 투자자가 “분양가상한제 폐지되면 이 동네 신축이 더 비싸질 테니, 구축도 지금 잡아야죠”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날 저는 입찰가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신축 분양가가 오를 가능성과 눈앞의 낡은 아파트를 얼마에 팔 수 있는지는 다른 계산이기 때문입니다. 경매에서는 정책 뉴스 한 줄보다 최근 거래 한 건, 임차인 한 명이 수익을 더 크게 바꿉니다.
폐지됐다는 말, 어느 땅 이야기인지부터 봅니다
분양가상한제는 새로 공급하는 주택의 분양가격에 상한을 두는 제도입니다. 주택법은 공공택지에 공급하는 공동주택과 정부가 지정한 민간택지 지역의 공동주택을 적용 대상으로 둡니다. 따라서 ‘분양가상한제 폐지’라는 표현을 전국의 모든 아파트에 제도가 사라졌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2023년 1월에는 민간택지 적용지역 상당수가 해제됐습니다. 당시 국토교통부 공고에서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은 적용지역으로 남았습니다. 공공택지에 관한 주택법 규정도 살아 있습니다. 2026년 10월 현재 물건을 검토한다면 오래된 기사 제목보다 해당 지역의 최신 지정 공고와 그 단지의 입주자모집승인 신청 시점을 맞춰 봐야 합니다. 같은 동네라도 어느 시점에 공급 절차를 밟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특히 많이 헷갈리는 게 규제지역과 분양가상한제 적용지역입니다. 대출이나 청약 규제가 강화됐다는 소식만 보고 그곳의 모든 새 아파트에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다고 단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지정은 각각 확인해야 합니다. 입찰 전에 국토교통부의 적용지역 공고와 해당 단지 모집공고를 따로 읽는 이유입니다.
신축 분양가가 오르면 구축 경매도 오를까
분양가 상한이 풀린 지역에서는 사업자가 더 높은 분양가를 책정할 여지가 생깁니다. 그렇다고 실제 분양가가 반드시 오르거나, 주변 구축 가격이 같은 폭으로 따라가는 건 아닙니다. 청약 수요, 대출 여건, 미분양 위험, 입주 예정 물량이 그 가격을 받아줘야 합니다. 저는 신축 분양가를 구축의 ‘미래 시세’로 바로 옮겨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인근 새 아파트 분양가가 13억 8천만 원이고, 경매에 나온 15년 차 아파트의 최근 실거래가가 13억 3천만 원이라고 해봅시다. 숫자는 계산 방식을 보여주기 위한 가정입니다. 동과 층, 전용면적, 주차, 수리 상태가 다르면 두 가격의 차이는 금방 벌어집니다. 더구나 신축은 입주까지 시간이 남았고, 구축은 낙찰 뒤 곧바로 잔금을 치러야 합니다. 자금이 묶이는 기간도 서로 다릅니다.
현장에서는 호가가 먼저 뛰고 실거래가가 뒤따르지 않는 때가 꽤 있습니다. 이럴 때 매도 호가 세 건을 시세로 잡으면 입찰가가 높아집니다. 저는 같은 단지의 최근 거래, 비슷한 층의 거래, 실제 매물의 수리 상태를 따로 적습니다. 거래가 적으면 인접 단지까지 넓혀 보되, 그 차이를 가격에서 깎습니다. 정책 기대감은 따로 메모할 뿐 입찰 상한을 올리는 근거로 바로 쓰지 않습니다.
낙찰가보다 총투입금이 먼저입니다
위 사례에서 11억 4천만 원에 낙찰받는다고 가정해보죠. 취득 관련 비용 4천5백만 원, 수리비 3천5백만 원, 보유 중 금융비용 5천5백만 원, 명도와 기타 비용 1천5백만 원을 잡으면 총투입금은 12억 9천만 원입니다. 13억 3천만 원에 팔아도 차이는 4천만 원입니다. 여기서 매도 중개보수와 실제 양도소득세 부담을 빼야 하고, 매도가 늦어지면 이자도 더 붙습니다. 비용과 세금은 보유 주택 수, 거래 형태, 보유 기간에 따라 달라지므로 이 숫자는 예상 수익이 아닙니다.
예전에 저도 ‘신축 가격이 받쳐주겠지’라는 생각으로 구축 입찰가를 높게 써본 적이 있습니다. 낙찰은 못 받았지만, 나중에 다시 계산하니 수리비와 잔금대출 이자를 너무 얇게 잡았더군요. 떨어진 게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경락잔금대출은 낙찰가 전액이 나오는 돈도 아니고, 개인의 소득·기존 대출·담보 평가에 따라 조건이 달라집니다. 입찰 전에 금융기관에 해당 물건 기준으로 가능 금액과 잔금일을 확인해야 현금 부족으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명도도 숫자로 넣어야 합니다. 점유자가 협의에 응하면 비용이 작을 수 있지만, 일정이 길어지면 이자와 관리비가 계속 쌓입니다. 임차인이 보이면 전입일, 확정일자, 배당요구 여부, 말소기준권리와의 순서를 확인합니다. 매각물건명세서의 인수 가능성 표시도 읽고, 현황조사서와 등기부 내용이 맞는지 대조합니다. 분양가 뉴스가 아무리 좋아도 인수해야 할 보증금을 놓치면 계산은 그 자리에서 무너집니다.
제가 입찰 전 지우는 숫자
경매 화면의 감정가를 먼저 지웁니다. 감정 시점이 오래됐다면 현재 매매 가능 가격과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신축 분양가에서 기대한 상승분을 지웁니다. 남는 것은 확인된 실거래와 보수적으로 잡은 매도가입니다. 그 금액에서 취득비, 수리비, 명도비, 대출이자, 매도비용, 예상 세금, 추가 비용 여유분을 빼고도 만족할 금액이 남을 때 입찰가를 씁니다.
분양가상한제 폐지 소식은 시장 분위기를 읽는 재료로 쓸 만합니다. 다만 그 말만 믿고 입찰장에 들어가면 적용지역도, 물건의 권리도, 내 현금 사정도 놓치기 쉽습니다. 저는 가격이 오를 이유보다 계획한 가격에 팔리지 않을 때 버틸 수 있는 기간을 먼저 봅니다. 그 계산이 되는 물건만 오래 들고 갈 자신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