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판에서 자동매매프로그램 이야기를 들었다

법원 입찰장에서 기다리다 보면 스마트폰으로 주식 시세를 보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경매는 한 물건을 몇 주씩 들여다보는데, 화면에서는 몇 초마다 매수와 매도가 오갑니다. 그럴 때 자동매매프로그램 이야기가 나오면 저는 먼저 수익률보다 손실이 나는 순간을 묻습니다. 경매에서도 권리분석 한 줄을 놓치면 돈을 잃지만, 자동 주문은 그 실수를 사람이 알아채기 전에 여러 번 반복할 수 있으니까요.
버튼을 누른 뒤에도 판단은 내 몫이다
자동매매프로그램은 사람이 정한 조건에 따라 매수·매도 주문을 내는 도구입니다. 특정 가격에 도달하면 사거나, 손실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파는 식이죠. 조건을 빠짐없이 실행하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다만 프로그램이 그 조건의 타당성까지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상승장에서 맞아떨어진 규칙이 횡보장에서도 통한다는 보장은 없고, 손절 주문을 넣었다고 원하는 가격에 반드시 팔리는 것도 아닙니다.
경매 초보가 감정가와 최저가만 보고 입찰가를 쓰는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숫자 계산은 정확할 수 있어도 선순위 권리나 점유 관계를 빠뜨리면 계산 전체가 틀어집니다. 자동매매도 비슷합니다. 주문 속도는 빨라지지만, 전략에 빠진 전제까지 채워 주지는 않습니다. 매매 대상이 주식인지 해외주식인지, 하루에 몇 번 거래하는지, 주문이 실패하면 어떻게 처리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수익 화면보다 거래 내역을 먼저 본다
홍보 화면에는 지난달 수익률이 크게 찍혀 있어도, 그 숫자가 내 계좌에 남을 돈인지는 따로 계산해야 합니다. 가령 매수와 매도를 합친 월 거래대금이 6천만 원이고, 수수료·세금·매수와 매도 가격 차이 등을 합친 비용을 거래대금의 0.15%로 가정해 보겠습니다. 비용만 9만 원입니다. 거래로 번 돈이 15만 원이라면 6만 원이 남습니다. 여기에 프로그램 이용료가 월 9만 9천 원이면 결과는 3만 9천 원 손실입니다. 이 수치는 설명을 위한 가정이고 실제 비용은 상품, 증권사, 주문 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저는 경매 물건을 볼 때 예상 매도가에서 낙찰가만 빼지 않습니다. 취득 비용, 이자, 수리비, 명도 비용, 보유 기간을 같이 적습니다. 자동매매프로그램도 같은 방식으로 봐야 합니다. 승률이 80%라는 말보다 한 번 이길 때 얼마를 벌고 질 때 얼마를 잃는지, 연속 손실이 몇 번 났는지, 그 기간에도 거래를 멈출 수 있었는지가 중요합니다. 열 번 중 여덟 번 1만 원씩 벌고 두 번 10만 원씩 잃으면 승률은 높아도 계좌에서는 12만 원이 빠집니다.
과거 자료로 만든 성과표도 그대로 믿기 어렵습니다. 이미 지나간 가격에 맞춰 조건을 여러 번 고르면 성적이 좋아 보이기 쉽습니다. 실제 주문에서는 원하는 가격에 체결되지 않거나 일부만 체결될 수 있고, 장이 급하게 움직이면 손실 폭이 예상보다 커집니다. 가능하다면 거래 기간 전체의 내역, 비용을 뺀 성과, 가장 크게 잃은 구간을 봐야 합니다. 보여 주는 거래가 몇 건의 성공 사례뿐이라면 판단할 재료가 부족한 겁니다.
제가 먼저 확인할 안전장치
미국 금융산업규제기구는 자동매매 서비스를 내세우며 높은 수익을 약속하거나 계좌 접근 정보를 요구하는 업체에 주의를 당부합니다. 국내에서 프로그램을 고를 때도 광고 문구보다 실제 주문 권한과 계좌 통제 방법을 먼저 확인하는 게 낫습니다. 특히 계좌 비밀번호를 업체에 넘겨야만 작동한다면 저는 거기서 멈춥니다.
- 내가 쓰는 증권사의 공식 주문 방식과 연결되는지, 프로그램이 어떤 계좌 권한을 갖는지 확인합니다.
- 한 종목당 주문 금액, 하루 최대 손실, 주문 횟수에 상한을 둘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 오류나 통신 장애가 생겼을 때 주문 상태를 확인하고 자동 주문을 즉시 중단할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 모의 거래와 소액 거래에서 주문 기록, 실제 체결 가격, 비용을 직접 대조합니다.
손실 한도도 주문을 내기 전에 숫자로 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운용 자금이 1천만 원인데 하루 손실 한도를 2%로 잡았다면 20만 원입니다. 다만 설정한 한도가 실제 손실의 절대 상한은 아닙니다. 급격한 가격 변동이나 체결 지연이 있으면 그보다 더 잃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동 중단 기능만 믿지 말고 계좌를 직접 확인할 시간도 마련해야 합니다. 생활비나 경매 잔금처럼 날짜가 정해진 돈을 이런 시험에 넣는 건 피하고 싶습니다.
경매 투자자에게 필요한 자동화는 조금 다르다
경매·공매를 하는 사람에게 자동매매프로그램이라는 말은 두 갈래로 들립니다. 주식 주문을 자동으로 넣는 프로그램이 있고, 경매 물건 검색이나 수익 계산을 돕는 도구가 있습니다. 둘은 역할이 다릅니다. 경매에서는 유찰 횟수, 최저가, 면적 같은 조건으로 물건을 걸러 내는 일은 자동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각물건명세서의 특이 사항, 임차인의 대항력, 현장 점유 상태까지 검색 조건 몇 개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예전에 시세만 보고 괜찮아 보였던 물건도 현장에 가면 수리 범위가 예상보다 넓거나 거래가 거의 없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숫자를 모으는 도구는 그런 물건을 빨리 찾아줄 수 있어도, 입찰가를 책임져 주지는 않습니다. 주식 자동매매 역시 주문을 대신할 뿐 투자 판단과 손실은 계좌 주인에게 남습니다. 세금도 거래 대상에 따라 다릅니다. 국세청 안내를 보면 국내 상장주식을 장내에서 파는 일반적인 소액주주와 해외주식 투자자의 양도소득세 적용은 같지 않습니다. 프로그램 화면의 수익률을 세후 수익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제가 이런 도구를 쓴다면 처음부터 수익을 맡기기보다 기록을 남기는 데 쓰겠습니다. 어떤 조건에서 주문이 나갔고, 실제로 얼마에 체결됐고, 비용을 제하고 얼마가 남았는지 확인하는 식입니다. 경매에서 입찰표를 쓰기 전 등기와 점유를 다시 보는 습관처럼, 자동매매에서도 돈이 움직이는 조건은 사람이 끝까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