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용어 정리하다 입찰가를 다시 쓴 날

법원 입찰장에 가기 전날, 입찰가를 적었다가 지운 적이 있습니다. 매각물건명세서에 적힌 임차인의 전입일을 등기부의 근저당 설정일과 다시 맞춰 보니, 제가 생각한 것보다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물건이었거든요. 부동산 용어 정리는 단어를 외우는 공부 같지만, 경매에서는 그 단어 옆에 적힌 날짜와 금액을 읽는 일에 가깝습니다.
감정가가 싸다는 말부터 의심했다
처음 물건을 찾으면 감정가, 최저매각가격, 입찰가가 한꺼번에 눈에 들어옵니다. 감정가는 감정평가사가 일정한 기준일에 평가한 금액입니다. 최저매각가격은 해당 매각기일에 그보다 낮게는 입찰할 수 없는 가격이고, 입찰가는 내가 써내는 금액입니다. 셋은 서로 다른 숫자입니다.
가령 감정가 3억 원인 집의 최저매각가격이 2억 1천만 원이라도, 지금 시세가 3억 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감정평가 기준일 이후 거래가 달라졌을 수 있고, 내부 상태도 사진만으로는 알기 어렵습니다. 저는 비슷한 면적과 층의 최근 거래, 현재 매물의 호가, 수리 상태를 따로 봅니다. 호가는 팔겠다는 가격이지 실제 거래된 가격이 아니라는 점도 구분합니다.
등기사항증명서에는 소유권과 근저당권 같은 등기된 권리가 나옵니다. 반면 현황조사보고서에는 조사 당시 누가 점유하는지에 관한 내용이 담깁니다. 매각물건명세서는 점유 관계에 대한 진술과 매각 후에도 효력을 잃지 않는 권리 등을 확인하는 서류입니다. 법원경매정보에서 이 서류들과 감정평가서를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장에 적힌 내용만 믿고 다른 서류의 날짜나 현장 상태를 건너뛰면 위험합니다.
말소기준권리보다 임차인의 날짜가 먼저 보였다
말소기준권리는 경매로 소멸하는 권리와 매수인이 부담할 수 있는 권리를 가를 때 기준으로 삼는 권리를 뜻합니다. 실무에서는 등기부의 근저당권 설정일 등을 먼저 찾고, 그 앞뒤로 다른 권리와 임차인의 지위를 확인합니다. 다만 날짜 하나만 찾았다고 권리분석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권리의 종류와 매각물건명세서의 인수 사항까지 봐야 합니다.
주택 임차인의 대항력은 집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을 마친 다음 날부터 생기는 것이 원칙입니다. 매수인에게 임대차를 주장할 수 있는 지위와 관련된 말이죠. 확정일자는 임대차계약서에 날짜를 부여받는 절차이고, 대항요건과 함께 갖추면 경매대금에서 보증금을 우선 변제받을 권리를 판단할 때 중요해집니다.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임차인의 전입과 실제 입주가 3월 1일, 근저당권 설정이 3월 5일이라면 임차인의 대항력 발생 시점을 먼저 따져야 합니다. 여기에 확정일자, 보증금, 배당요구 여부, 예상 배당액이 붙습니다.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 보증금을 전부 배당받지 못하면 매수인이 남은 보증금을 부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숫자를 넣어 계산해 보기 전에는 ‘세입자가 있으니 명도비만 들겠지’라고 넘길 수 없습니다.
배당요구는 경매대금에서 돈을 받겠다고 법원에 신청하는 절차입니다. 배당요구 종기라는 신청 기한도 사건마다 확인해야 합니다. 임차인의 지위나 경매 신청 방식에 따라 배당 관계가 달라질 수 있으니, 서류에 배당요구가 적혀 있는지와 그 의미를 함께 읽습니다.
낙찰가만 계산했다가 비용표를 다시 만들었다
낙찰은 입찰에서 최고가매수신고인이 되는 일과 같은 뜻으로 느껴지지만, 그날 바로 집주인이 되는 건 아닙니다. 매각허가와 대금 납부를 거쳐야 하고, 민사집행법상 매수인은 매각대금을 다 낸 때 권리를 취득합니다. 입찰보증금도 잔금 계획과 따로 놀 수 없습니다. 대출이 예상보다 적게 나오면 납부 기한에 맞출 현금이 부족해질 수 있으니까요.
저는 입찰가 옆에 취득세와 등기 비용, 수리비, 이자, 보유 기간의 관리비, 매도할 때 드는 비용을 적습니다. 체납 관리비는 항목에 따라 부담 관계를 따져야 하므로 관리사무소에서 내역을 받아 확인합니다. 경락잔금대출은 ‘낙찰가의 몇 퍼센트’라는 말만 듣고 확정하지 않습니다. 물건의 상태, 담보 평가, 개인의 대출 조건에 따라 실제 가능 금액이 달라집니다.
가령 낙찰가를 2억 2천만 원으로 생각하고 추가 비용과 수리비를 합쳐 2천만 원으로 잡았다면, 일단 투입액은 2억 4천만 원입니다. 여기서 예상 매도가 2억 6천만 원이라는 숫자만 빼면 2천만 원이 남아 보입니다. 하지만 보유 중 이자와 세금, 매도 비용, 예상보다 긴 명도 기간을 반영하면 결과는 달라집니다. 저는 이 계산에서 여유가 거의 없으면 입찰가를 낮춥니다.
명도라는 두 글자에는 사람이 산다
명도는 점유자로부터 부동산을 인도받는 과정입니다. 문을 열어 보는 일쯤으로 생각하면 현장에서 당황합니다. 누가 살고 있는지, 어떤 권원으로 점유하는지, 이사 일정은 어떤지에 따라 시간과 비용이 달라집니다. 현황조사보고서에 ‘폐문부재’가 적혀 있으면 조사 당시 문이 닫혀 있어 내부 사정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뜻이므로, 빈집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대금을 낸 매수인은 일정한 경우 법원에 인도명령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민사집행법은 대금 납부 뒤 6개월 이내의 신청을 규정하지만, 점유자가 매수인에게 대항할 수 있는 권원으로 점유한다면 인도명령이 허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입찰 전에 점유자와 임차인의 권리부터 확인합니다. 낙찰 뒤에 해결할 문제로 미뤄 두기에는 비용의 폭이 너무 큽니다.
경매 서류를 볼 때 낯선 용어를 전부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용어가 가리키는 사람, 날짜, 돈을 한 줄씩 연결해 봐야 합니다. 제 입찰가가 바뀌었던 날도 새로운 비법을 알아낸 게 아니라, 이미 적혀 있던 날짜를 다시 읽은 날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