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상한제 실거주 믿고 전세부터 계산해봤더니

얼마 전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낮다는 아파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같이 현장을 보던 지인은 입주할 때 전세를 놓으면 잔금을 맞출 수 있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말이 나오면 수익 계산을 잠깐 멈춥니다. 경매에서도 싸게 사는 것보다 권리관계를 잘못 읽어 나중에 내 돈이 얼마나 묶이는지가 더 큰 문제였거든요. 분양가 상한제 실거주도 비슷합니다. 전세를 줄 수 있는 기간과 내가 실제로 살아야 하는 기간을 따로 놓고 봐야 합니다.
3년 유예는 3년 살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택법상 수도권에서 공급하는 분양가상한제 적용주택의 거주의무자는 최초 입주가능일부터 3년 이내에 입주하고, 정해진 기간 동안 계속 거주해야 합니다. 흔히 말하는 ‘실거주 3년 유예’는 거주 의무가 없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시작 시점을 최대 3년 뒤로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찍 들어가 살 수도 있습니다.
가령 최초 입주가능일이 2027년 1월이고 해당 주택의 거주의무기간이 3년이라면, 입주를 2029년 말까지 미루는 구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2030년 1월에 의무가 끝나는 건 아닙니다. 실제 거주를 시작한 때부터 의무기간을 채우는 일정이 남습니다. 날짜를 달력에 적어 보면 ‘3년 뒤에 팔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왜 위험한지 금방 보입니다.
기간도 모든 단지가 같지 않습니다. 현행 주택법 시행령은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적용주택의 거주의무기간을 택지 종류와 분양가격의 인근 주택매매가격 대비 비율에 따라 달리 정합니다. 공공택지는 3년 또는 5년, 민간택지는 2년 또는 3년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쓰는 인근 가격은 내가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들은 호가가 아닙니다. 국토교통부 기준에 따라 결정된 가격입니다. 그래서 입주자모집공고문의 거주의무 항목부터 읽어야 합니다.
전세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면 반환일도 내 일정입니다
숫자로 놓고 보겠습니다. 분양가 7억원, 내 돈 2억원, 대출 3억원, 전세보증금 2억원으로 잔금을 맞춘다고 가정해 보죠. 장부에는 숫자가 딱 맞습니다. 하지만 2년 임대차가 끝나 집에 들어갈 때는 세입자에게 2억원을 돌려줘야 합니다. 그때 새 대출이 안 나오거나 집값이 내려가면, 입주 계획 자체가 막힐 수 있습니다. 취득세, 등기비용, 이사비, 대출이자도 처음 계산에서 빠지기 쉽고요.
대출 3억원에 연 5% 이율을 단순 적용하면 이자만 연 1,500만원, 월 125만원입니다. 실제 상환액은 대출 조건에 따라 달라지지만, 전세보증금을 받은 순간 그 돈이 내 자본이 되는 건 아닙니다. 경매에서 낙찰대금만 보고 명도비와 수리비를 빼먹으면 수익이 사라지는 것과 닮았습니다. 저는 이런 계산표를 보면 예상 시세차익 옆에 보증금 반환 재원부터 적습니다.
임대차 기간도 ‘최대 3년 유예니까 2년 전세 한 번은 무조건 안전하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 집주인의 실제 입주 계획, 계약 종료 통지 시점이 맞물립니다.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하려면 관련 요건과 통지 절차를 지켜야 하고, 사정이 바뀌면 분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전세계약을 쓰기 전에 거주의무 개시 기한과 임대차 종료일을 같은 달력에 표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전매제한이 끝나도 거주의무는 남을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전매제한만 풀리면 팔면 되지 않나요?’ 두 기간은 별개입니다. 주택법은 거주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주택의 양도를 제한합니다. 전매제한 기간이 끝났다는 사실 하나로 매도가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정이 생겨 의무기간 중 이사를 가야 한다면 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의 매입 신청 절차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일반 매매로 시세차익을 바로 회수할 수 있다고 잡은 계획은 다시 계산해야 합니다.
경매 물건을 보는 분이라면 등기부의 거주의무 관련 부기등기에도 눈이 가야 합니다. 다만 부기등기 한 줄만 보고 낙찰자의 권리관계까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최초 공급 시점, 적용 법령, 매각 조건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물건에서 권리분석표에 ‘낙찰 후 거주의무 처리’라는 칸을 따로 만듭니다. 답이 모호한 상태라면 입찰가를 낮추는 문제가 아니라 응찰 자체를 보류할 문제일 수 있습니다.
공고문 한 줄과 내 현금 흐름을 같이 봅니다
청약을 검토할 때는 세 가지 날짜를 먼저 적습니다. 최초 입주가능일, 내가 실제 입주할 수 있는 날, 예정한 임대차 종료일입니다. 그다음 입주자모집공고문에서 거주의무기간과 전매제한기간을 각각 확인합니다. 과거에 공급된 단지는 적용 당시 규정과 개정 경과도 따져야 하니, 현재 법 조문만 읽고 예전 공고문 내용을 덮어쓰면 곤란합니다. 국토교통부 주택청약 안내도 개정 전후 입주자의 거주기간 산정을 구분해 설명합니다.
- 잔금일에 전세보증금이 제때 들어오지 않아도 치를 수 있는지
- 임대차가 끝날 때 보증금 전액을 돌려줄 재원이 있는지
- 대출이자와 취득·보유·매도 비용을 빼고도 감당할 수 있는지
- 거주의무기간 동안 직장과 가족의 생활 계획이 맞는지
분양가가 싸다는 숫자는 눈에 잘 들어옵니다. 그런데 제가 오래 현장을 다니며 더 자주 본 건, 싸게 샀어도 다음 날짜에 쓸 현금이 없어 계획이 틀어지는 경우였습니다. 분양가 상한제 실거주는 법에 적힌 기간이면서 동시에 내 생활과 자금이 묶이는 기간입니다.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는지까지 계산한 뒤에야 가격의 매력이 제대로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