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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경매 물건 하나를 끝까지 따라가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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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경매 물건 하나를 끝까지 따라가 봤더니

법원 입찰장에서 가장 아까웠던 날은 낙찰을 놓친 날이 아니었다. 전날 밤까지 괜찮아 보이던 물건을 입찰 직전에 접었던 날이다. 등기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매각물건명세서의 임차인 기재와 현장에서 들은 점유 이야기가 맞지 않았다. 싸게 사는 기회를 놓쳤을 수도 있다. 그래도 확인되지 않은 보증금까지 떠안을 가능성을 안고 입찰서를 넣을 수는 없었다.

대법원경매를 처음 보는 분은 최저매각가격부터 눈에 들어올 거다. 감정가보다 몇 번 떨어졌는지, 시세보다 얼마나 싼지.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경매 물건의 가격표에는 취득 비용과 점유 문제, 수리비가 적혀 있지 않다. 화면에서 물건을 찾는 일은 시작일 뿐이고, 돈을 넣어도 되는 물건인지 판단하는 일은 그다음부터다.

사건번호를 눌렀다면 서류 세 장부터 펼친다

대법원 법원경매정보에서 관심 물건을 찾으면 사건번호와 매각기일, 최저매각가격을 먼저 적는다. 그다음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 감정평가서를 차례로 읽는다. 매각물건명세서는 매수인이 인수할 수 있는 권리와 점유 관련 기재를 보는 출발점이다. 현황조사서에는 집행관이 확인한 점유 상황이, 감정평가서에는 평가 당시의 건물 상태와 가격 근거가 담긴다.

이 세 서류는 역할이 다르다. 현황조사서에 ‘폐문부재’라고 적혀 있다면 사람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조사 때 문이 닫혀 있었다는 뜻이다. 감정평가서 사진에 깨끗한 거실이 보여도 그 사진을 찍은 뒤 누수가 생겼을 수 있다. 매각물건명세서에 임차인이 적혀 있어도 보증금 전액을 낙찰자가 부담한다는 뜻으로 곧장 읽어서는 안 된다. 날짜와 배당 관계를 더 확인해야 한다.

나는 서류를 읽을 때 낯선 문구에 표시를 남긴다. ‘대항력 여부 불분명’, ‘유치권 신고’, ‘제시외 건물’ 같은 표현이다. 무서운 단어라서 무조건 버리는 게 아니다. 확인할 자료와 비용을 아직 계산하지 못했다는 신호로 본다. 초보라면 그 신호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입찰가격부터 정하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

등기 한 줄보다 날짜들의 순서가 중요했다

권리분석은 등기부에서 말소의 기준이 되는 권리를 찾는 데서 시작한다. 보통 근저당권, 압류, 가압류, 담보가등기, 경매개시결정등기 등의 순서를 본다. 하지만 등기부에 적힌 권리만 보고 끝내면 임차인을 놓치기 쉽다. 주택 임차인의 전입과 점유, 확정일자, 배당요구 여부와 시점을 함께 대조해야 한다.

가령 근저당권 설정일이 2020년 6월이고 임차인의 전입일이 2019년 11월이라면, ‘근저당권이 경매로 지워진다’는 말만으로 안심할 수 없다. 임차인이 매수인에게 대항할 수 있는지, 배당으로 보증금이 얼마나 회수되는지, 남는 금액을 누가 부담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반대로 전입일 하나가 빠르다고 무조건 보증금 전액을 인수한다고 단정해도 안 된다. 실제 점유와 권리 성립, 배당 내역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예전에 전입일이 빠른 임차인이 있는 아파트를 검토하며 예상 배당액을 확정하지 못한 적이 있다. 매각물건명세서와 등기사항증명서를 다시 맞춰 봐도 의문이 남았다. 그 물건은 가격이 꽤 매력적이었지만 입찰하지 않았다. 권리관계가 복잡한 물건은 싸게 낙찰받는 순간보다 잔금을 치른 뒤가 더 길다.

현장에 가면 화면 속 숫자가 달라진다

현장에서는 먼저 같은 동, 비슷한 층과 면적의 최근 거래를 비교한다. 호가만 들으면 안 된다. 실제 거래가격과 매물로 나온 기간을 같이 봐야 팔릴 가격을 짐작할 수 있다. 골목 주차, 경사, 엘리베이터 상태, 누수 흔적, 빈 상가 비율처럼 화면에 잘 안 잡히는 것들도 확인한다. 점유자와 접촉할 때는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퇴거를 재촉하지 않는다. 협의가 필요한 일은 낙찰 후 적법한 절차로 진행해야 한다.

숫자로 보면 더 선명하다. 비슷한 집의 실거래와 상태를 감안한 매도가를 2억 8천만 원으로 잡고, 입찰가를 2억 4천5백만 원으로 생각해 보자. 취득 관련 세금과 등기비용을 가정해 900만 원, 수리비 700만 원, 이사 협의와 보유 비용으로 300만 원을 더하면 투입액은 2억 6천4백만 원이다. 장부상 차이는 1천6백만 원이다. 여기서 대출이자, 매도 비용, 양도 관련 세금과 예상보다 길어진 보유 기간을 빼면 남는 돈은 훨씬 적다. 이 수치는 설명을 위한 가정이고, 실제 세금과 비용은 물건과 사람마다 다르다.

경락잔금대출도 입찰 전에 조건을 확인한다. 같은 낙찰가라도 담보 평가, 소득, 보유 주택 수와 금융기관 심사에 따라 가능한 금액이 달라진다. 낙찰 뒤 대출이 예상보다 적게 나오면 법원이 정한 기한 안에 부족한 잔금을 마련해야 한다. 대출이 될 거라는 말만 듣고 입찰하는 건 위험하다.

입찰봉투를 넣기 전날 다시 보는 것들

입찰 전날에는 사건 진행 상태와 매각기일 변경 여부, 최신 매각물건명세서, 등기 변동을 다시 확인한다. 현장에서 들은 점유 이야기와 서류가 다르면 해결될 때까지 질문을 남겨 둔다. 입찰보증금은 통상 최저매각가격의 10분의 1이지만 법원이 다르게 정할 수 있으니 해당 사건의 공고를 확인한다. 입찰표에는 사건번호와 물건번호, 금액의 자릿수를 천천히 적는다. 숫자 하나 잘못 쓴 실수는 권리분석을 잘한 것과 별개로 큰 손해가 된다.

낙찰이 끝도 아니다. 매각허가가 확정되면 법원이 정한 대금지급기한에 잔금을 내야 하고, 그 뒤 점유자와 인도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인도명령은 대금을 낸 뒤 6개월 이내에 신청할 수 있지만, 점유자에게 매수인에게 대항할 권원이 있다면 그 절차로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명도에 쓸 시간과 비용은 입찰 전에 예산에 넣는다.

내가 대법원경매에서 가장 오래 들여다보는 숫자는 최저가가 아니라 ‘모든 비용을 치르고도 남는 금액’이다. 그 금액을 계산하려면 서류, 날짜, 현장을 번갈아 봐야 한다. 의문이 남는 물건을 보내고 나면 아쉬울 때도 있다. 그래도 다음 입찰장에 다시 설 수 있는 쪽이 오래 가는 투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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