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약서 쓰기 전 직접 체크해봤더니, 돈 잃는 집은 티가 났습니다

얼마 전 후배가 전세계약서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보증금 2억 4천만 원짜리 빌라였고, 역에서 7분 거리라며 꽤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그런데 등기부를 펴보니 근저당이 1억 8천만 원, 같은 건물에 전입세대도 여러 명이 걸려 있었습니다. 후배는 집이 깨끗하다는 얘기만 했고, 저는 그 자리에서 계약을 말렸습니다. 전세는 집을 고르는 일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내 돈이 빠져나올 순서를 따지는 일입니다.
전세계약주의사항은 집 보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초보 때 제일 많이 하는 실수가 집 상태부터 보는 겁니다. 채광 좋고, 도배 새로 했고, 싱크대 반짝이면 마음이 먼저 갑니다. 그런데 경매를 오래 하다 보면 반대로 보게 됩니다. 집 내부보다 먼저 보는 건 등기부, 시세, 임대인의 채무 흔적입니다.
예를 들어 매매 시세가 3억 원인 집에 전세보증금이 2억 7천만 원이면 겉으로는 90% 전세가율입니다. 여기에 선순위 근저당 5천만 원이 있으면 실제로는 보증금과 채권 합계가 3억 2천만 원입니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낙찰가가 시세 그대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빌라나 다세대는 70~80% 선에서 멈추는 일도 흔합니다. 그러면 계산이 바로 깨집니다.
- 등기부등본은 계약 당일 기준으로 다시 발급해서 봐야 합니다.
- 갑구에서는 소유자, 압류, 가압류, 신탁등기 여부를 봅니다.
- 을구에서는 근저당권, 전세권, 지상권 같은 부담을 봅니다.
- 계약서의 임대인 이름과 등기부상 소유자 이름이 같은지 대조합니다.
특히 신탁등기가 있는 집은 초보가 손대기 어렵습니다. 소유자가 겉으로 보이는 임대인이 아니라 신탁회사로 되어 있을 수 있고, 임대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이런 집은 싸다고 덤비면 나중에 보증금 반환에서 말이 길어집니다.
보증금이 안전한지 숫자로 따져야 합니다
전세계약주의사항을 이야기할 때 저는 늘 숫자부터 씁니다. 감으로 안전한 집은 없습니다. 매매 시세, 선순위 채권, 내 보증금, 예상 낙찰가를 놓고 계산해야 합니다. 단독주택, 다가구주택은 여기에 다른 세입자 보증금까지 들어갑니다.
다가구는 등기부만 봐서는 세입자가 몇 명인지, 보증금 총액이 얼마인지 바로 안 보입니다. 그래서 임대인에게 선순위 임차보증금 내역을 요구해야 합니다. 말로만 “별거 없다”는 답은 의미 없습니다. 경매 현장에서 다가구 물건을 보면 세입자가 7명, 10명씩 줄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보증금이 그 줄의 뒤쪽이면 집이 팔려도 받을 돈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는 간단한 위험 신호
- 전세가가 매매가의 80%를 훌쩍 넘는데 근저당까지 있는 집
- 임대인이 최근에 매수했고 바로 전세를 놓는 집
- 주변 거래가 거의 없어서 시세 판단이 어려운 신축 빌라
- 중개사가 등기부 설명을 흐리거나 “다들 이렇게 한다”고 넘기는 경우
-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가능 여부를 확답하지 못하는 집
신축 빌라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분양가, 감정가, 전세가가 서로 비슷하게 포장되는 일이 있습니다. 실거래가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동네라면 광고 가격만 믿으면 안 됩니다. 저는 최소한 같은 동, 같은 면적, 비슷한 연식의 실거래를 따로 봅니다. 없으면 한두 정거장 옆 동네까지 넓혀서라도 봅니다.
계약서 특약은 말보다 강합니다
계약 현장에서 “잔금일 전에 근저당 말소해드릴게요”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말은 쉽습니다. 그런데 특약에 안 쓰면 나중에 다툴 때 힘이 약합니다. 전세계약주의사항 중에서 특약은 꽤 현실적인 방패입니다.
저라면 선순위 근저당이 있는 집은 특약에 이렇게 넣습니다. 잔금 지급과 동시에 근저당을 말소하고, 말소가 불가능하면 임차인은 계약을 해제할 수 있으며 임대인은 계약금을 반환한다는 식입니다. 문구는 상황에 따라 다듬어야 하지만, 방향은 분명해야 합니다. 돈을 주는 날 내 순위가 깨끗해져야 합니다.
- 잔금일 전까지 추가 담보권, 압류, 가압류를 설정하지 않는다는 조항
-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에 필요한 서류를 임대인이 협조한다는 조항
- 임대인의 국세, 지방세 체납 확인에 협조한다는 조항
- 다가구라면 선순위 임차보증금 내역이 사실과 다를 때 계약 해제 가능 조항
- 잔금 지급 전 등기부 변동이 있으면 임차인이 계약을 거절할 수 있다는 조항
중개사가 싫은 표정을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보증금 2억, 3억이 걸린 일입니다. 특약 몇 줄 쓰는 걸 불편해하는 거래라면 저는 그 거래 자체를 다시 봅니다. 좋은 집은 서류 확인을 피하지 않습니다.
잔금일에 가장 많이 사고가 납니다
계약서를 잘 써도 잔금일에 방심하면 틈이 생깁니다. 잔금 보내기 직전에 등기부를 다시 봐야 합니다. 계약일과 잔금일 사이에 근저당, 압류, 가압류가 새로 들어오는 사례가 실제로 있습니다. 등기부는 어제 본 게 아니라 돈 보내기 직전에 본 게 중요합니다.
잔금은 가능하면 임대인 본인 명의 계좌로 보내야 합니다. 대리인이 나온다면 위임장, 인감증명서, 신분증을 봐야 하고 통화 확인도 해두는 게 좋습니다. 현장에서 급하다고 넘어가면 나중에 설명할 자료가 없습니다.
이사 당일에는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바로 처리해야 합니다. 임차인의 대항력은 전입신고와 실제 점유가 맞물려야 하고, 우선변제권은 확정일자가 있어야 힘을 가집니다. 이 부분을 하루 이틀 미루는 분들이 있는데, 경매 쪽에서 보면 그 하루가 순위를 바꾸는 날이 되기도 합니다.
잔금일 체크 순서
- 등기부등본을 당일 다시 발급합니다.
- 특약 이행 여부를 확인합니다.
- 근저당 말소 조건이면 법무사 동시 진행 여부를 확인합니다.
- 임대인 본인 계좌로 잔금을 보냅니다.
- 입주 즉시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챙깁니다.
보증보험은 만능이 아니라 마지막 안전망입니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있는 집인지 확인하는 건 중요합니다. 다만 보증보험이 된다고 해서 아무 집이나 들어가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보증기관마다 주택 유형, 보증금 한도, 선순위 채권, 임대인 상태 등을 봅니다. 서류 하나가 안 맞거나 권리관계가 복잡하면 가입이 거절될 수 있습니다.
제가 권하는 방식은 간단합니다. 계약 전에 가입 가능성을 먼저 확인하고, 계약서에는 임대인이 보증 가입에 협조한다는 특약을 넣습니다. 그리고 잔금 후 미루지 말고 바로 진행합니다. 나중에 임대인 사정이 바뀌거나 등기부가 지저분해지면 그때는 늦습니다.
솔직히 전세는 예전처럼 “집주인 믿고 들어가는 계약”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저는 경매장에서 보증금 못 받고 울먹이는 임차인을 여러 번 봤습니다. 대부분 나쁜 의도가 있어서 당한 게 아닙니다. 등기부 한 번 덜 보고, 시세를 대충 믿고, 특약을 말로만 넘긴 결과였습니다. 전세계약은 싸게 들어가는 것보다 무사히 나오는 게 먼저입니다. 마음에 드는 집일수록 계산기를 더 냉정하게 두드려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