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찰받고 임대차계약서 한 장 때문에 식은땀 났던 이야기

얼마 전 후배가 경매 물건 하나를 들고 와서 같이 봤는데, 등기부는 깨끗하고 감정가 대비 72%까지 내려온 아파트였습니다. 겉으로는 좋아 보였죠. 그런데 매각물건명세서에 적힌 임차인 보증금 8,000만 원, 전입일자, 확정일자를 보자마자 손이 멈췄습니다. 결국 그 물건은 임대차계약서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면 초보가 들어가면 안 되는 물건이었습니다.
경매에서 임대차계약서는 그냥 집주인과 세입자가 월세 얼마, 보증금 얼마 적어둔 종이가 아닙니다. 낙찰자가 인수할 돈이 있는지, 명도가 얼마나 꼬일지, 배당에서 세입자가 빠져나갈 수 있는지 가르는 자료입니다. 법원 서류 한 줄보다 현장에서 확인한 계약서 한 장이 더 무서울 때도 많습니다.
임대차계약서, 경매에서는 돈의 순서를 보여준다
일반 매매라면 임대차계약서는 세입자 존재를 확인하는 정도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매는 다릅니다. 누가 먼저 권리를 잡았는지, 보증금을 누가 책임지는지가 입찰가를 바로 바꿉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 시세가 3억 원이고 최저가가 2억 1,000만 원이라고 해봅시다. 겉으로 보면 9,000만 원 싸게 사는 느낌이 납니다. 그런데 임차인이 대항력을 갖추고 있고 보증금 7,000만 원을 낙찰자가 인수해야 한다면 계산이 달라집니다. 낙찰가 2억 1,000만 원에 인수보증금 7,000만 원을 더하면 실제 취득 부담은 2억 8,000만 원입니다. 여기에 취득세, 법무비, 명도비, 이자까지 붙으면 여유가 거의 없어집니다.
제가 현장에서 자주 보는 초보 실수는 이겁니다. 매각물건명세서에 임차인 있음이라고 적혀 있는데도 최저가만 보고 싸다고 판단합니다. 임대차계약서의 보증금, 월세, 계약일, 전입일, 확정일자를 같이 봐야 하는데 그 과정을 건너뜁니다. 경매는 싸게 사는 게임 같지만, 실제로는 빠뜨린 돈을 찾아내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계약서에서 먼저 보는 5가지
제가 임대차계약서를 보거나 임차인 진술을 들을 때 먼저 확인하는 항목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멋있는 분석보다 빠뜨리지 않는 확인이 더 중요합니다.
- 계약일: 근저당권 설정일보다 빠른지 늦은지 봅니다.
- 전입일자: 대항력 판단의 출발점입니다.
- 확정일자: 배당 순위를 볼 때 중요합니다.
- 보증금과 월세: 실제 인수금액과 배당 가능성을 계산합니다.
- 임대인 이름: 등기부상 소유자와 계약 당사자가 맞는지 확인합니다.
특히 전입일자와 확정일자를 헷갈리면 안 됩니다. 전입만 빠르다고 무조건 배당에서 유리한 것도 아니고, 확정일자가 있다고 무조건 낙찰자가 책임을 안 지는 것도 아닙니다. 대항력, 우선변제권, 최우선변제권은 각각 따로 봐야 합니다.
실전에서는 계약서에 적힌 날짜와 주민센터 전입세대열람, 법원 현황조사서 내용이 서로 어긋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계약서는 2021년 3월인데 전입은 2022년 1월인 경우, 또는 계약자는 남편인데 전입은 배우자와 자녀만 되어 있는 경우도 봤습니다. 이런 물건은 단순히 인터넷 자료만 보고 판단하면 위험합니다.
계약서가 없다는 말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현장에 가서 초인종을 눌러보면 임차인이 계약서를 안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합니다. 경매 나온 집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낯선 투자자가 와서 계약서 보여달라고 하면 기분이 좋을 리 없습니다. 그래서 말 한마디, 표정 하나, 우편함 상태, 관리사무소 정보까지 조심스럽게 맞춰봐야 합니다.
제가 예전에 빌라 물건을 보러 갔을 때 임차인이 보증금 5,000만 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법원 현황조사에는 3,000만 원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처음 계약은 3,000만 원이었고, 갱신하면서 2,000만 원을 더 올려준 상황이었습니다. 증액분의 확정일자가 따로 문제 되면서 배당 계산이 복잡해졌습니다. 초보였다면 그냥 3,000만 원만 보고 입찰했을 겁니다.
반대로 임차인이 보증금을 크게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명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잡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저는 임차인 말만 듣고 겁먹지도 않고, 법원 서류만 믿고 낙관하지도 않습니다. 계약서 원본, 전입일자, 확정일자, 배당요구 여부가 같이 맞아야 숫자가 됩니다.
임대차계약서 특약, 작게 적힌 문장이 크게 터진다
계약서 특약란도 그냥 넘기면 안 됩니다. 특약에 관리비 체납, 시설물 원상복구, 전세권 설정, 임대인의 채무관계 같은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특약이 낙찰자에게 전부 그대로 따라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명도 과정에서는 이런 문구가 협상 재료가 됩니다.
예를 들어 임차인이 계약서 특약에 임대인은 계약 종료 시 이사비 300만 원을 지급한다고 적혀 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낙찰자가 당연히 떠안는 돈이 아니더라도, 실제 명도 협상에서는 그 문장이 대화의 출발점이 됩니다. 경매는 법대로만 끝나는 일이 드뭅니다. 현장에서 시간과 비용을 줄이려면 상대가 무엇을 근거로 버티는지 알아야 합니다.
또 하나 조심할 게 가족 간 임대차계약서입니다. 부모와 자녀, 형제, 법인 대표와 가족 사이 계약은 특히 더 봐야 합니다. 진짜 보증금이 오갔는지, 점유가 실제인지, 배당을 노린 가장임차인 가능성은 없는지 따져야 합니다. 초보가 이런 물건을 싸다고 들어가면 소송까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초보라면 이런 임대차계약서 물건은 피하는 게 낫다
제가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자주 말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수익률보다 먼저 잠을 잘 수 있는 물건을 고르라는 겁니다. 임대차관계가 복잡한 물건은 낙찰받기 전에는 싸 보이고, 낙찰받은 뒤에는 하루하루 이자가 무섭게 느껴집니다.
- 선순위 임차인이 있고 보증금 규모가 큰 물건
- 계약서 내용과 법원 서류의 숫자가 다른 물건
- 전입자가 여러 세대인데 점유관계가 불분명한 물건
- 임차인이 배당요구를 하지 않았거나 배당요구 여부가 애매한 물건
- 가족 간 계약, 법인 관련 계약처럼 실체 확인이 어려운 물건
물론 이런 물건에서도 돈 버는 투자자는 있습니다. 저도 경력이 쌓인 뒤에는 일부러 복잡한 물건을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경쟁자가 줄어드니까요. 하지만 그건 권리분석, 현장조사, 명도 경험, 자금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첫 입찰부터 임대차계약서가 찜찜한 물건을 잡는 건 운전면허 따자마자 비 오는 밤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계약서 한 장을 못 보면 입찰가를 낮춰야 한다
현장에서 임대차계약서를 끝내 확인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합니다. 아예 입찰하지 않거나, 최악의 경우를 숫자로 반영해서 입찰가를 낮춥니다. 애매하면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나쁜 쪽으로 계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인수 가능성이 3,000만 원이라면 저는 최소 3,000만 원만 빼지 않습니다. 명도 지연 3개월 이자, 관리비 체납 가능성, 협상비, 세금까지 같이 봅니다. 그러면 입찰가가 생각보다 많이 내려갑니다. 그 가격으로는 낙찰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경매에서 못 산 물건은 손해가 아니지만, 잘못 산 물건은 바로 손해가 됩니다.
임대차계약서는 작고 평범한 종이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경매장에서는 그 종이가 낙찰자의 지갑을 열 수도 있고, 닫아줄 수도 있습니다. 초보 때는 화려한 수익 사례보다 임대차계약서 한 줄을 의심하는 습관이 먼저입니다. 저는 아직도 입찰 전날 계약관계가 찜찜하면 과감히 빠집니다. 오래 버틴 투자자일수록 많이 먹은 사람보다 크게 안 다친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