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권설정등기 믿고 입찰했다가 현장에서 식은땀 난 이야기

법원 기록만 보고 안심했던 물건
얼마 전 후배 투자자 하나가 전세권설정등기가 잡힌 아파트 경매 물건을 들고 왔습니다. 등기부를 보니 전세권자가 있고, 말소기준권리보다 뒤에 설정된 전세권이었습니다. 후배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형, 이거 어차피 소멸되는 거죠?”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경매장에서 이 한 줄만 보고 들어가면 꽤 위험합니다.
전세권설정등기는 임차인이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등기부에 올려두는 권리입니다. 보통 전세 계약서만 쓰고 확정일자와 전입신고로 대항력을 챙기는 경우가 많지만, 전세권은 아예 등기부에 권리로 박아 넣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초보 입장에서는 등기부에 보이는 권리니까 더 명확하고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경매에서는 그 명확함이 오히려 함정이 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본 물건은 감정가 4억 2천만 원짜리 빌라였습니다. 최저가는 두 번 유찰돼 2억 6천만 원대까지 내려왔고, 등기부에는 1순위 근저당, 그 뒤로 전세권설정등기 1억 8천만 원이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전세권은 근저당보다 늦으니 매각으로 소멸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매각물건명세서를 보니 전세권자가 실제 점유자였고, 배당요구도 해둔 상태였습니다. 여기까지는 흔한 구조입니다. 문제는 현장에 가서 만난 옆집 아주머니 말에서 나왔습니다. “그 집 사람, 전세권 하기 전부터 살았어요.”
전세권설정등기와 대항력은 따로 봐야 한다
초보들이 가장 많이 착각하는 부분이 이겁니다. 전세권설정등기가 늦게 되어 있으면 그냥 소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 임차인이 언제 전입했는지, 확정일자는 언제인지, 점유가 계속 이어졌는지를 따로 봐야 합니다. 전세권이라는 등기 권리와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은 같은 듯 보이지만 판단 기준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근저당 설정일이 2021년 5월 10일이고, 전세권설정등기가 2021년 8월 1일이라고 해보겠습니다. 등기만 보면 전세권은 후순위입니다. 그런데 임차인이 2021년 4월 20일에 전입하고 실제로 거주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임차인은 근저당보다 먼저 대항력을 갖췄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낙찰자가 보증금을 떠안을 가능성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전세권설정등기가 있는 물건을 보면 순서를 이렇게 봅니다.
- 말소기준권리보다 전세권설정등기가 빠른지 늦은지
- 전세권자가 실제 점유자인지 아닌지
- 전입일자가 말소기준권리보다 빠른지 늦은지
- 배당요구를 했는지, 배당요구 종기 안에 들어왔는지
- 전세권과 임대차 보증금이 같은 돈인지 별개의 채권인지
여기서 하나라도 애매하면 입찰가를 낮추거나 아예 빠지는 게 낫습니다. 경매는 모르는 걸 용기로 밀어붙이는 게임이 아닙니다. 모르는 부분은 돈으로 터집니다.
전세권자가 배당요구를 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전세권자는 일정한 요건에서 배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전세권설정등기가 되어 있고 배당요구를 했다면 낙찰대금에서 자기 몫을 받아가는 구조가 됩니다. 초보들은 여기서 “배당받고 나가겠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는 배당금이 보증금 전액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봤던 한 다세대주택은 전세권 1억 5천만 원, 예상 낙찰가 1억 2천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선순위 근저당 채권최고액이 9천만 원 있었고, 체납세금도 일부 확인됐습니다. 전세권자가 배당요구를 했지만 실제 배당 가능 금액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런 물건에서 낙찰자가 “등기상 후순위니까 소멸”만 외우고 들어가면 명도 과정에서 부딪힙니다. 법적으로 인도명령이 가능하더라도 사람은 계산기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특히 보증금을 거의 못 받는 점유자는 집을 쉽게 비워주지 않습니다. 이사비 협의가 필요할 수도 있고, 인도명령 후 강제집행까지 가면 시간과 비용이 붙습니다. 강제집행 예납금, 보관비, 인건비, 열쇠공 비용까지 생각하면 몇백만 원은 금방입니다. 낙찰가를 쓸 때 이런 비용을 빼고 계산해야 합니다.
전세권설정등기 물건에서 현장조사가 중요한 이유
전세권설정등기가 있는 물건은 서류가 많아 보이지만, 의외로 현장에서 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편함에 누구 이름이 붙어 있는지, 전기·가스 사용 흔적이 있는지, 관리사무소에서 체납 관리비가 어느 정도인지, 주변 중개업소가 해당 세대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제가 직접 겪은 사례 중에는 등기부상 전세권자는 A씨인데 실제 거주자는 A씨의 부모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계약 당시 사정상 자녀 명의로 전세권을 설정했고 부모가 계속 살고 있던 겁니다. 또 어떤 물건은 전세권설정등기만 있고 실제 점유자는 이미 나간 상태였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명도 리스크가 확 줄어듭니다. 같은 전세권 물건이라도 현장 상태에 따라 입찰가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관리비도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아파트나 오피스텔은 공용부분 관리비 일부가 낙찰자에게 부담될 수 있습니다. 전세권자가 보증금을 못 받고 버티는 동안 관리비가 계속 쌓였다면, 낙찰 후 첫 달부터 기분 나쁜 계산서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입찰 전 관리사무소에 체납액 범위라도 확인하려고 합니다. 정확한 금액을 다 말해주지 않는 곳도 있지만, 대략적인 분위기만 알아도 입찰가 조정에는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초보라면 이런 전세권 물건은 피하는 게 낫다
전세권설정등기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위험한 물건은 아닙니다. 오히려 권리관계가 선명해서 계산하기 쉬운 물건도 있습니다. 다만 초보라면 피해야 할 유형이 있습니다. 선순위 전입 가능성이 보이는데 주민등록 자료 해석이 애매한 물건, 전세권자와 점유자가 다르게 보이는 물건, 배당을 받아도 보증금 손실이 큰 물건, 체납 관리비가 크고 점유자가 연락을 피하는 물건은 굳이 첫 입찰 대상으로 삼을 이유가 없습니다.
경매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어려운 물건을 멋있게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손해 볼 물건을 미리 걸러내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전세권설정등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등기부 한 줄로 판단하지 말고, 전입일자와 점유, 배당요구, 실제 회수 가능 금액을 같이 봐야 합니다.
입찰표 쓰기 전에는 늘 숫자로 다시 계산합니다. 예상 낙찰가에서 취득세, 법무비, 미납관리비, 명도비, 대출이자, 보수 공사비까지 빼봅니다. 그리고 전세권자와의 충돌 가능성까지 감안합니다. 이 계산을 하고도 수익이 남으면 그때 들어가는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초보가 전세권설정등기 물건으로 첫 낙찰을 받는 건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공부용으로 분석은 많이 하되, 실제 돈을 넣는 건 권리관계가 단순한 물건부터 시작하는 편이 오래 버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