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계약서 쓰기 전 등기부부터 까봤더니, 위험한 집은 티가 났다

얼마 전 지인이 빌라 전세 계약을 앞두고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보내왔는데, 보자마자 손이 멈췄습니다. 전세금은 2억 3천만 원인데, 같은 동 실거래 매매가가 2억 5천만 원 안팎이었고 선순위 근저당까지 4천만 원이 붙어 있었습니다. 중개사는 “보증보험 되니까 괜찮다”고 했다는데, 현장에서 이런 말을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괜찮은 물건은 설명이 짧고, 위험한 물건은 변명이 깁니다.
전세사기예방은 특별한 기술보다 순서 싸움입니다. 계약금 넣고 나서 확인하면 늦습니다. 마음에 드는 집을 봤을 때 바로 계약서부터 쓰는 게 아니라, 내 돈이 그 집에서 몇 번째 순위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전세가가 매매가에 붙어 있으면 일단 멈춰야 합니다
초보가 가장 많이 놓치는 게 전세가율입니다. 예를 들어 주변 매매가가 2억 6천만 원인데 전세금이 2억 4천만 원이면 겉으로는 2천만 원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경매로 넘어가면 감정가 그대로 팔린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유찰 한 번이면 20퍼센트, 두 번이면 지역에 따라 30퍼센트 이상 빠지는 경우도 봅니다. 여기에 체납 세금, 선순위 권리, 배당 지연 비용까지 끼면 임차인 보증금은 생각보다 쉽게 다칩니다.
저는 전세가가 매매가의 80퍼센트를 넘으면 이유를 따로 봅니다. 아파트처럼 거래가 활발하고 시세가 투명한 곳과, 빌라·오피스텔처럼 비교 매물이 애매한 곳은 기준을 다르게 둬야 합니다. 특히 신축 빌라는 분양가, 감정가, 호가가 서로 다르게 움직이는 일이 많습니다. “신축이라 깨끗하다”는 말보다 “비슷한 면적이 실제로 얼마에 팔렸는지”가 훨씬 중요합니다.
- 전세금이 매매가의 80퍼센트 이상이면 보수적으로 본다
- 빌라·오피스텔은 같은 건물, 같은 층, 비슷한 면적 거래를 따로 확인한다
- 실거래가가 없고 호가만 많은 집은 가격을 믿기 어렵다
- 전세금과 근저당을 더한 금액이 매매가에 가까우면 피하는 쪽이 낫다
등기부는 계약 당일 한 번 더 봐야 합니다
등기사항전부증명서는 발급일이 중요합니다. 일주일 전 등기부로 계약하는 건 저는 싫어합니다. 계약 직전, 잔금 직전 두 번은 봅니다. 갑구에서는 소유자가 누구인지, 가압류나 압류가 있는지 봅니다. 을구에서는 근저당권, 전세권, 임차권등기 같은 돈과 순위에 관련된 내용을 봅니다.
현장에서 제일 무서운 건 “잔금일 아침에 설정된 근저당”입니다. 예전에는 임차인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아도 대항력 발생 시점 때문에 공백이 생겼고, 그 틈을 노린 대출 사고가 많았습니다. 국토교통부가 2026년 3월 발표한 전세사기 방지 대책에서도 계약 전 위험정보 확인과 대항력 효력 발생 시기 개선이 다뤄졌습니다. 제도가 바뀌는 흐름은 임차인에게 유리하지만, 그렇다고 확인을 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등기부에서 제가 먼저 보는 줄
- 소유자 이름과 계약 상대방이 같은지
- 근저당 채권최고액이 얼마인지
- 압류, 가압류, 가처분이 있는지
- 신탁등기 여부와 신탁원부 확인 필요성이 있는지
- 매매가 짧은 기간에 여러 번 바뀐 흔적이 있는지
특히 신탁등기가 있으면 조심해야 합니다. 집주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 임대 권한이 없을 수 있습니다. 신탁원부를 봐야 하고, 수탁자의 동의 없이 계약하면 보증금을 지키기 어려운 경우가 생깁니다. 중개사가 “다들 이렇게 한다”고 말해도 내 보증금은 남들이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보증보험 가능하다는 말만 믿으면 안 됩니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좋은 장치입니다. HUG 같은 보증기관의 심사를 통과하면 임차인 입장에서는 큰 안전판이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가입 가능할 것 같다”와 “실제로 가입 완료됐다”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계약서 쓰기 전에는 가능하다고 듣고, 잔금 뒤에 심사에서 막히는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미 돈은 나갔고 협상력은 확 줄어듭니다.
저라면 특약에 이렇게 씁니다. 보증보험 가입이 거절될 경우 임대인은 계약금을 즉시 반환하고 계약은 해제한다. 문구는 상황에 맞게 조정해야 하지만, 방향은 분명해야 합니다. 보증보험을 안전장치로 삼을 거면 계약 구조도 그에 맞춰야 합니다.
- 보증보험 가입 가능 여부를 계약 전 직접 확인한다
- 임대인 체납, 선순위 권리, 주택가격 산정 기준을 같이 본다
- 구두 약속은 믿지 말고 특약으로 남긴다
- 잔금 전까지 보증 관련 조건이 충족되는지 다시 확인한다
집주인보다 집의 현금 흐름을 봐야 합니다
전세사기 사건을 보면 집주인이 처음부터 나쁜 의도로 접근한 경우도 있지만, 무리하게 여러 채를 굴리다 시장이 꺾이며 터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임대인이 갭투자로 여러 채를 가지고 있고, 보증금 반환을 다음 세입자 돈으로 막는 구조라면 시장이 멈추는 순간 위험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집주인의 말보다 숫자를 봅니다.
예를 들어 보증금 2억 원짜리 집인데 주변 월세 전환 시세가 보증금 3천만 원에 월 80만 원 정도라면, 그 집의 임대 수익력은 제한적입니다. 매매가가 떨어지거나 다음 세입자가 안 들어오면 임대인이 자기 돈으로 돌려줘야 하는데, 그 능력이 있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결국 임차인은 집값 하락과 임대인의 현금 부족을 같이 떠안게 됩니다.
현장에서 위험하게 보는 말들
- “이 동네는 원래 전세가가 높아요”
- “집주인이 법인인데 문제 없어요”
- “잔금 치면 근저당 바로 말소해요”
- “보증보험은 나중에 해도 돼요”
- “다른 사람이 바로 계약한다고 했어요”
이런 말이 전부 거짓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급하게 결정하게 만드는 말은 한 번 멈춰서 숫자로 확인해야 합니다. 법인 임대인이라면 법인 등기, 대표자, 실제 소유 구조까지 봐야 하고, 근저당 말소 조건은 잔금 지급 방식과 동시에 맞물려야 합니다.
계약서 특약은 길게 쓰는 게 아니라 정확해야 합니다
특약을 많이 넣는다고 안전해지는 건 아닙니다. 애매한 문장은 분쟁 때 힘이 약합니다. 저는 계약서에서 세 가지를 꼭 봅니다. 첫째, 잔금일까지 현재 등기상 권리관계를 유지한다는 내용. 둘째, 잔금 지급과 동시에 기존 근저당을 말소한다는 내용. 셋째, 보증보험 가입 불가 시 처리 방식입니다.
계약금도 조심해야 합니다. 전세금이 큰데 계약금 10퍼센트를 바로 넣으면, 이상한 점을 발견했을 때 빠져나오기 부담스럽습니다. 집이 정말 괜찮다면 하루 이틀 확인 시간을 주는 게 정상입니다. 확인을 싫어하는 집주인, 서류 제출을 미루는 중개사, 질문에 짜증 내는 현장은 저는 그냥 나옵니다. 놓친 집보다 잘못 잡은 집이 훨씬 비쌉니다.
국토교통부의 안심전세앱은 시세와 임대인 관련 위험 신호를 확인하는 쪽으로 계속 개편되고 있고, 대법원 등기정보와 주민센터 확정일자, 전입신고 확인도 함께 챙겨야 합니다. 앱 하나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등기, 시세, 보증, 계약서, 잔금 흐름을 같이 맞춰야 사고 확률이 내려갑니다.
제가 경매 법정에서 본 전세 피해자들은 대부분 “설마 이 정도까지 가겠어”라고 생각했던 분들입니다. 전세는 사는 동안 편하면 되는 계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 전 재산을 남의 부동산 순위표에 올려놓는 일입니다. 집이 예쁜지보다 내 돈이 몇 번째로 보호되는지가 먼저입니다. 그 순서를 지키는 사람이 오래 버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