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부등본확인 직접 놓칠 뻔했던 날, 입찰가 2천만 원을 낮춘 이유

얼마 전 후배가 입찰하려던 아파트 등기부등본을 같이 봐준 적이 있습니다. 감정가 4억 2천만 원, 2회 유찰, 최저가 2억 6천만 원대 물건이었죠. 겉으로 보면 꽤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등기부를 넘기다 보니 을구에 근저당 말고도 전세권 설정이 하나 더 붙어 있었습니다. 후배는 “말소기준권리보다 뒤니까 없어지는 거 아니냐”고 했고, 저는 그 자리에서 입찰가를 다시 계산하라고 했습니다.
등기부등본확인은 그냥 서류 한 장 보는 일이 아닙니다. 경매에서는 돈의 순서, 사람의 주장, 낙찰자가 떠안을 가능성을 읽는 작업입니다. 특히 초보 때는 등기부에 적힌 단어를 외우는 데만 급급한데, 현장에서는 단어보다 순서와 날짜가 더 무섭습니다.
등기부등본확인은 입찰 당일 기준으로 다시 봐야 한다
제가 초보 때 가장 크게 혼난 부분이 이겁니다. 물건 검색할 때 한 번 출력하고, 그걸 들고 몇 주 뒤 입찰장에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권리는 며칠 사이에도 바뀝니다. 압류가 추가될 수도 있고, 가처분이 들어올 수도 있고, 임의경매와 강제경매가 겹칠 수도 있습니다.
등기부는 보통 표제부, 갑구, 을구로 나뉩니다. 표제부는 부동산의 외형입니다. 소재지, 면적, 구조, 대지권 같은 내용이 들어갑니다. 갑구는 소유권과 관련된 권리입니다. 소유권이전, 가압류, 압류, 가처분, 경매개시결정 같은 항목이 보입니다. 을구는 근저당권, 전세권, 지상권 같은 소유권 외 권리가 적힙니다.
경매에서 등기부를 볼 때는 예쁘게 읽으면 안 됩니다. 시간표처럼 읽어야 합니다. 접수일자와 접수번호가 먼저입니다. 같은 날 접수된 권리라도 번호 순서가 앞서면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낙찰가보다 무서운 게 순위입니다.
갑구에서 먼저 봐야 할 건 소유자가 아니라 흔적이다
초보자는 갑구를 보면서 현재 소유자 이름만 확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소유자 확인은 기본입니다. 그런데 저는 갑구에서 ‘이 집이 얼마나 시끄러웠나’를 먼저 봅니다. 가압류가 여러 개 붙었다가 말소된 흔적, 세금 압류, 가처분, 소유권이 여러 번 짧은 기간에 넘어간 기록이 있으면 긴장합니다.
예전에 빌라 물건 하나가 있었습니다. 감정가 대비 60%대라 숫자만 보면 괜찮았죠. 그런데 갑구를 보니 2년 사이 소유권이 세 번 바뀌었고, 중간에 가처분이 들어왔다가 말소된 흔적이 있었습니다. 현장에 가보니 실제 점유자는 등기상 소유자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명도에서 말이 길어질 가능성이 컸습니다. 저는 그 물건을 버렸고, 나중에 낙찰받은 분이 꽤 오래 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갑구에서 특히 신경 써야 할 항목은 가처분입니다. 모든 가처분이 낙찰자에게 인수되는 건 아니지만, 말소기준권리보다 앞선 가처분은 성격을 따져야 합니다. 소유권이전청구권 가처분 같은 것은 초보자가 대충 넘길 물건이 아닙니다. 법무사나 변호사에게 비용을 내고 확인할 사안입니다. 수임료 아끼려다 보증금 수천만 원이 묶이는 경우를 실제로 봤습니다.
을구는 근저당 금액보다 순서가 먼저다
을구를 볼 때 많은 분들이 채권최고액만 봅니다. “근저당이 3억이네요, 빚이 많네요” 정도로 끝내죠. 그런데 경매에서는 금액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이 말소기준권리입니다. 보통 근저당권, 압류, 가압류, 담보가등기, 경매개시결정등기 중 가장 앞선 권리가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기준보다 뒤의 권리는 대체로 매각으로 사라지고, 앞의 권리는 인수 가능성을 따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2019년 3월 근저당이 있고, 2020년 6월 전세권이 있으면 보통 전세권은 뒤에 있습니다. 그런데 전세권자가 배당요구를 했는지, 점유 관계가 어떤지, 임차인의 대항력과 확정일자는 어떤지 같이 봐야 합니다. 등기부만 보고 “뒤니까 끝”이라고 생각하면 위험합니다.
근저당 채권최고액도 실제 대출잔액과 다릅니다. 채권최고액 3억이면 실제 빚이 3억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금융기관이 이자와 지연손해금까지 감안해 넉넉히 잡아 둔 한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배당표를 예상할 때는 등기부,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 임대차조사 내용을 같이 놓고 봐야 숫자가 맞아집니다.
초보가 등기부등본확인할 때 자주 놓치는 7가지
제가 현장에서 초보자에게 가장 많이 말하는 체크 포인트가 있습니다. 복잡한 특수물건이 아니어도 이 정도는 직접 손으로 표시하면서 봐야 합니다.
- 발급일자가 입찰일과 너무 떨어져 있지 않은지 확인합니다.
- 표제부의 면적, 대지권, 호수 표시가 매각물건명세서와 맞는지 봅니다.
- 갑구에서 가압류, 압류, 가처분, 가등기, 경매개시결정 순서를 표시합니다.
- 을구에서 가장 빠른 근저당권이나 담보권을 찾아 말소기준권리 후보로 잡습니다.
- 말소기준권리보다 앞선 권리가 있는지 따로 표시합니다.
- 전세권, 지상권, 지역권처럼 사용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권리를 가볍게 넘기지 않습니다.
- 등기부 내용과 점유자, 임차인, 현장 상황이 서로 맞는지 비교합니다.
여기서 하나라도 찜찜하면 입찰가를 낮추거나 입찰을 쉬는 게 낫습니다. 경매는 많이 넣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닙니다. 안 들어갈 물건을 거르는 사람이 오래 남습니다.
등기부만 깨끗해도 현장은 더러울 수 있다
솔직히 등기부가 깨끗한 물건도 명도에서 고생할 수 있습니다. 등기부에는 사람의 감정이 안 적힙니다. 체납 관리비도 등기부에 안 보이고, 집 안 상태도 안 보이고, 점유자가 어떤 태도로 나올지도 안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등기부등본확인을 권리분석의 출발점으로 보지, 끝으로 보지 않습니다.
한 번은 등기부상으로는 아주 단순한 아파트를 낙찰받았습니다. 선순위 근저당 하나, 뒤에 압류 몇 개, 구조는 깔끔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장기 공실에 누수가 있었습니다. 관리비 체납도 꽤 있었습니다. 낙찰가는 싸게 받았지만 수리비와 시간 비용을 넣으니 기대 수익이 확 줄었습니다. 등기부가 말해주는 위험과 현장이 말해주는 위험은 종류가 다릅니다.
등기부등본확인을 잘한다는 건 어려운 법률 용어를 많이 아는 게 아닙니다. 날짜를 보고, 순서를 보고, 사라질 권리와 남을 수 있는 권리를 나누고, 그래도 모르는 부분은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초보 때는 모르는 물건을 이겨 보겠다는 마음보다, 아는 물건만 조심스럽게 들어가는 게 훨씬 낫습니다. 경매장은 용감한 사람보다 오래 버틴 사람이 결국 배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