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물건경매 들어갔다가 보증금 날릴 뻔한 진짜 이야기

얼마 전 지인 한 명이 법원 경매 사이트에서 아파트 하나를 캡처해서 보내왔습니다. 감정가 4억 2천만 원짜리가 최저가 2억 6천만 원까지 내려왔으니 괜찮지 않냐는 말이었죠. 사진만 보면 깨끗했고, 위치도 지하철역에서 도보 8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등기부와 매각물건명세서를 같이 보니 초보가 손대기에는 꽤 날카로운 물건이었습니다.
제가 10년 넘게 물건경매를 보면서 느낀 건 하나입니다. 싸 보이는 물건이 전부 싼 물건은 아닙니다. 싸게 보이도록 사연이 붙어 있는 물건이 훨씬 많습니다. 현장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낙찰가를 낮게 쓰는 사람이 아니라, 돈이 새는 구멍을 먼저 찾는 사람입니다.
물건경매에서 제일 먼저 보는 건 가격이 아닙니다
초보 때는 저도 최저가부터 봤습니다. 감정가 대비 몇 퍼센트인지, 몇 번 유찰됐는지, 주변 실거래가보다 얼마나 싼지부터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실제 입찰장에서 몇 번 깨지고 나면 순서가 바뀝니다. 저는 지금 권리관계, 점유자, 인수되는 부담, 현장 상태를 먼저 봅니다. 가격은 그다음입니다.
예를 들어 감정가 5억짜리 빌라가 3억 2천만 원까지 내려왔다고 해봅시다. 겉으로는 1억 8천만 원 싸 보입니다. 그런데 선순위 임차인 보증금 1억 5천만 원이 인수되고, 밀린 관리비와 수리비가 1천만 원 넘게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취득세, 법무비, 이자, 명도비까지 얹으면 실제 매입 원가는 금방 4억 9천만 원 근처까지 올라갑니다. 이러면 싸게 산 게 아니라 복잡한 물건을 제값 주고 산 셈입니다.
물건경매를 볼 때 저는 최소한 아래 네 가지는 같은 날 같이 확인합니다.
- 매각물건명세서에 인수할 권리가 적혀 있는지
- 현황조사서와 전입세대 열람 내용이 맞는지
- 등기부상 말소기준권리보다 앞선 권리가 있는지
- 시세가 호가가 아니라 실제 거래 기준으로 맞는지
이 네 가지 중 하나라도 찜찜하면 입찰가를 낮추거나 그냥 접습니다. 기회는 계속 나오는데, 보증금 날린 돈은 쉽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초보가 자주 속는 물건은 따로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많이 본 초보 실수는 대체로 비슷합니다. 첫째, 반값이라는 말에 끌려 특수물건을 너무 쉽게 봅니다. 둘째, 임차인을 단순히 내보내면 되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셋째, 대출이 당연히 나올 거라고 믿습니다. 셋 다 위험합니다.
특히 지분경매는 초보에게 꽤 까다롭습니다. 아파트 전체가 아니라 2분의 1 지분, 3분의 1 지분만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감정가도 작고 최저가도 낮으니 부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낙찰받아도 그 집 전체를 마음대로 쓸 수 없습니다. 공유자와 협의가 안 되면 공유물분할소송까지 가야 할 수 있고, 그 시간 동안 자금은 묶입니다. 수익률 계산표에는 잘 안 보이는 피로도가 큽니다.
유치권이 신고된 공장이나 상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치권이 무조건 무섭다는 뜻은 아닙니다. 허위 유치권도 있고,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초보가 서류 몇 장 보고 판단하기에는 리스크가 큽니다. 공사대금 7천만 원 유치권 신고가 붙어 있는데 낙찰 차익이 5천만 원이면, 이미 숫자 싸움에서 불리합니다.
임차인 있는 주거 물건도 만만하게 보면 안 됩니다. 대항력 있는 임차인인지, 확정일자는 언제인지, 배당요구를 했는지, 보증금 전액을 배당받는 구조인지 봐야 합니다. 말소기준권리보다 전입이 빠른데 배당으로 다 못 받는 임차인이 있으면 남은 보증금을 낙찰자가 떠안을 수 있습니다. 이 한 줄 놓치면 수천만 원이 바로 비용이 됩니다.
시세조사는 중개업소 전화 한 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물건경매에서 시세조사를 대충 하면 입찰가가 흔들립니다. 저는 보통 세 가지 가격을 나눠 봅니다. 빠르게 팔 수 있는 가격, 보통 매도 가격, 욕심낸 호가입니다. 초보는 세 번째 가격을 시세로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낙찰받는 순간 이미 수익이 사라져 있습니다.
예전에 수도권 외곽의 구축 아파트를 검토한 적이 있습니다. 매물 호가는 3억 1천만 원에서 3억 3천만 원 사이였습니다. 중개업소 두 곳은 3억 2천만 원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거래는 2억 8천만 원대가 많았고, 같은 동 저층은 2억 7천만 원에도 거래된 적이 있었습니다. 해당 물건은 저층에 내부 수리도 안 된 상태였습니다. 저는 매도 가능 가격을 2억 7천만 원으로 잡고 비용을 뺐습니다. 그러니 쓸 수 있는 입찰가는 생각보다 낮아졌습니다.
시세를 볼 때는 같은 아파트라도 동, 층, 향, 수리 상태를 나눠야 합니다. 빌라라면 주차, 엘리베이터, 불법 증축, 도로 접면, 누수 흔적까지 봐야 합니다. 상가는 더 냉정해야 합니다. 임대료가 얼마냐보다 실제로 그 임대료를 낼 임차인이 들어올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공실 6개월이면 이자와 관리비가 조용히 수익을 갉아먹습니다.
입찰가 계산은 낙찰 후 돈 나갈 순서로 해야 합니다
처음 물건경매를 하는 분들이 자주 놓치는 게 비용 순서입니다. 낙찰가만 준비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잔금 전에 대출 조건을 맞춰야 하고, 잔금 후에는 취득세와 법무비가 바로 따라옵니다. 점유자가 있으면 명도 비용과 시간도 들어갑니다. 수리 후 매도나 임대를 생각한다면 공사비와 공실 기간도 넣어야 합니다.
저는 입찰 전에 종이에 이렇게 씁니다. 낙찰 예상가, 취득세, 법무비, 대출 이자 6개월치, 명도비, 수리비, 중개수수료, 보수적으로 잡은 매도 가격.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돈을 봅니다. 남는 금액이 전체 투입금 대비 너무 작으면 들어가지 않습니다. 3천만 원 벌려고 들어갔는데 변수 하나로 2천만 원이 날아가는 구조라면, 그건 투자가 아니라 운에 가까운 게임입니다.
경락잔금대출도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감정가가 높다고 대출이 많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금융기관은 낙찰가, 담보 가치, 지역, 물건 종류, 본인 소득과 기존 대출을 같이 봅니다. 특히 상가, 토지, 지분 물건, 특수 권리 물건은 생각보다 대출이 짜게 나올 수 있습니다. 입찰 전에 상담을 받아보고, 잔금 부족 상황이 생기지 않게 보수적으로 잡는 편이 낫습니다.
제가 초보라면 이런 물건부터 고르겠습니다
처음부터 큰 수익을 노리면 눈이 흐려집니다. 제가 다시 초보로 돌아간다면 권리관계 단순한 아파트나 소형 빌라부터 볼 겁니다. 말소기준권리 이후 권리만 있고,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 없거나 배당으로 보증금 문제가 깔끔하게 끝나는 물건. 점유자가 소유자라면 더 좋습니다. 물론 소유자 점유도 명도가 쉬운 건 아니지만, 적어도 임차인 보증금 인수 문제보다는 계산이 단순합니다.
처음 한두 건은 수익을 크게 남기는 것보다 전 과정을 겪는 데 의미가 큽니다. 입찰표 쓰는 긴장감, 보증금 수표 준비, 패찰했을 때의 허탈함, 낙찰 후 잔금 일정, 점유자와의 통화, 수리 견적, 임대나 매도까지. 이걸 한 번 몸으로 지나가면 책에서 보던 문장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물건경매는 남들이 안 보는 기회를 찾는 일이기도 하지만, 남들이 피하는 이유를 정확히 아는 일이 먼저입니다. 저는 지금도 입찰 전날 마음이 과하게 들뜨면 일부러 계산표를 다시 봅니다. 숫자가 차분하면 들어가고, 숫자가 억지로 맞춰져 있으면 멈춥니다. 경매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사람은 대담한 사람이 아니라, 빠질 때 빠질 줄 아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