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시세만 믿고 입찰했다가 가격을 다시 깎은 이야기

몇 해 전 입찰을 준비하던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같은 단지의 최근 거래가 5억 원 안팎이었고, 중개업소에 나온 매물은 5억 4천만 원부터 시작하더군요. 감정가보다 싸게 낙찰받으면 여유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장을 다녀온 뒤 제가 적어 둔 입찰 상한은 처음 계산보다 훨씬 낮아졌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아파트시세와 그 물건을 다시 팔 수 있는 가격은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실거래가 한 건이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저는 먼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서 같은 단지, 같은 전용면적의 거래를 모아 봅니다. 이때 최고가 한 건에 눈이 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거래가 수리된 고층 남향 집이고, 경매 물건은 저층에 내부 상태도 확인되지 않았다면 같은 가격을 붙이기 어렵습니다. 거래 날짜, 층, 동, 향, 수리 상태를 나란히 놓아야 차이가 보입니다.
실거래가는 계약일 기준으로 공개됩니다. 계약과 신고 사이에 시차가 있고, 나중에 해제된 거래가 표시되기도 합니다. 최근 한두 달 거래가 적다고 해서 곧바로 매수자가 몰린다고 판단하면 위험합니다. 오래된 거래만 남아 있다면 그 가격이 지금도 통하는지 현장에서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평형에서 5억 2천만 원 거래가 한 건, 4억 9천만 원 거래가 두 건 있었다고 합시다. 이 숫자만으로 ‘시세는 5억 2천’이라고 적지 않습니다. 어느 집이 더 좋은 조건이었는지 확인하고, 확인되지 않은 차이는 보수적으로 잡습니다. 한국부동산원의 부동산테크 같은 시세 자료도 함께 보지만, 그것만으로 개별 경매 물건의 상태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호가는 매도자의 희망이고 매수자의 약속은 아니다
현장에서는 중개업소 두세 곳에 따로 묻습니다. 같은 평형의 현재 매물 가격, 오래 남아 있는 매물, 최근 실제로 찾는 매수자의 가격대를 구분해서 듣습니다. ‘5억 4천에 나왔다’는 말과 ‘5억 4천이면 바로 팔린다’는 말은 전혀 다릅니다. 급매가 4억 8천에도 남아 있다면 저는 그 숫자를 더 무겁게 봅니다.
한 번은 매물 호가만 보고 수익 계산을 해 둔 적이 있습니다. 현장에 가 보니 같은 단지의 더 좋은 층이 제가 예상한 매도가보다 낮은 가격에 오래 나와 있었습니다. 그날 입찰표의 숫자를 고쳤습니다. 응찰장에서는 남보다 높게 쓰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낙찰 뒤 그 가격을 감당하는 쪽이 훨씬 어렵습니다.
중개업소의 말도 그대로 받아 적지는 않습니다. 같은 질문을 여러 곳에 던지고 답이 갈리는 이유를 찾습니다. 매물의 동과 층이 다른지, 내부 수리 여부가 다른지, 세입자가 있어 바로 입주할 수 없는지 확인하면 가격 차이가 설명될 때가 많습니다.
낙찰가와 예상 매도가 사이에는 비용이 들어간다
입찰 상한을 잡을 때는 예상 매도가에서 비용부터 뺍니다. 가령 이 아파트를 보수적으로 4억 8천만 원에 팔 수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입찰가 4억 1천만 원에 취득·등기 비용 1천5백만 원, 명도 관련 비용 1천만 원, 수리비 1천5백만 원, 보유 기간의 이자와 관리비 8백만 원, 매도 중개보수 등 2백만 원을 넣으면 총투입액은 4억 6천만 원입니다. 남는 2천만 원도 양도 관련 세금과 예상 밖 비용을 빼기 전 숫자입니다.
이 수치는 계산 방법을 보여 주기 위한 가정입니다. 실제 취득세는 보유 주택 수와 물건 조건 등에 따라 달라지고, 명도비나 수리비도 현장을 보기 전에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대출을 쓴다면 낙찰가의 몇 퍼센트가 나올 거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입찰 전에 금융기관에 해당 물건의 대출 가능 금액과 조건을 확인하고, 잔금 납부일까지 필요한 현금을 따로 계산합니다.
보증금 문제는 더 민감합니다.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 등기기록을 함께 읽고 임차인의 대항력과 배당 관계를 확인해야 합니다. 인수할 금액이 있다면 낙찰가에 더해 계산해야 합니다. 권리관계가 불분명한데 시세 차이만 크게 보이는 물건은 초보자에게 특히 위험합니다.
입찰 전에는 가격보다 물건의 상태를 확인한다
시세표를 만든 뒤에는 단지로 갑니다. 같은 평형 매물이 어느 동에 있는지, 경매 물건은 소음이나 일조 조건이 어떤지, 주차와 공용부 상태는 어떤지 살핍니다. 집 안을 볼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때는 내부가 멀쩡할 거라고 기대하며 수리비를 줄이지 않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부분은 비용과 시간을 더 잡습니다.
제가 쓰는 입찰 상한은 ‘최근 최고 실거래가에서 몇 퍼센트 할인’ 같은 공식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지금 팔릴 만한 가격을 낮게 잡고, 세금과 비용을 물건별로 다시 넣은 뒤, 그래도 남길 금액이 있는지 봅니다. 계산이 빡빡하면 입찰을 쉬는 편입니다. 아파트시세 숫자는 다음 물건에서도 볼 수 있지만, 한 번 낙찰받은 물건의 잔금과 점유 문제는 제가 직접 책임져야 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