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권 미등기 경매 현장에 갔다가 입찰을 접은 이유

입찰장에서 ‘대지권 미등기’라고 적힌 아파트를 보면 손이 한 번 멈춥니다. 몇 년 전에도 시세보다 싸 보이는 물건이 있었어요. 건물 등기부는 비교적 단순했고, 주변 거래가격과 최저매각가격 차이도 컸습니다. 그런데 토지 등기부를 펼쳐 보니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그날은 입찰표를 쓰지 않았습니다.
대지권 미등기 경매가 전부 위험한 건 아닙니다. 대지 지분을 넘겨받을 권리는 있는데 등기 절차만 늦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그 권리가 실제로 있는지, 있다면 누구에게 무엇을 청구해야 하는지부터 다퉈야 하는 물건도 있죠. 입찰 전에는 그 둘을 구별할 자료가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건물 등기부에 대지권이 없다는 말의 무게
집합건물의 전유부분을 소유하려면 그 건물이 서 있는 땅을 사용할 권리가 필요합니다. 이를 대지사용권이라고 합니다. 대지권 등기는 그 권리가 건물 등기기록에 표시된 상태를 말하고요. 등기 표시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대지사용권도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집합건물법 제20조는 원칙적으로 대지사용권이 전유부분의 처분을 따르도록 합니다. 대법원도 일정한 사안에서 전유부분을 경매로 산 사람이 미등기 상태의 대지사용권을 함께 취득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낙찰받으면 땅 지분은 자동으로 깨끗하게 등기된다’는 뜻으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어떤 권리가 성립했는지, 토지 소유자가 누구인지, 등기까지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는 물건마다 다릅니다.
특히 분양자가 지적 절차를 마친 뒤 대지 지분을 이전하기로 하고 건물만 먼저 등기한 사례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이런 사안의 경매 매수인이 대지사용권을 취득하고 대지 지분 이전등기를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동시에 분양자가 미지급 분양대금을 이유로 동시이행을 주장할 수 있다는 점도 판시했어요. 권리를 인정받는 문제와 추가 돈을 들이지 않고 등기를 끝내는 문제는 별개입니다.
제가 입찰표를 접었던 토지 등기부
당시 물건의 가격을 설명하려고 숫자를 단순화해 볼게요. 인근 비슷한 세대의 거래가격은 약 2억 6천만 원, 최저매각가격은 1억 9천만 원대였습니다. 겉으로는 6천만 원 넘게 남는 듯했죠. 그러나 토지 등기부에는 건물 등기부에서 보이지 않던 권리관계가 있었고, 대지 지분 이전 경위도 자료만으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토지에 담보권이 보인다고 곧바로 낙찰자가 그 빚을 떠안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전유부분과 대지사용권이 함께 매각되는지, 담보권의 설정 시점이 언제인지, 매각으로 소멸하는 권리인지, 특별매각조건이 있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집니다. 제가 멈춘 이유는 담보권 한 줄 자체보다, 그 권리와 해당 세대의 대지사용권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입찰 전 자료로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상태에서 ‘시세보다 6천만 원 싸다’고 계산하면 비용 칸이 텅 비게 됩니다. 대지 지분 이전에 필요한 대금이나 소송 비용이 있는지, 해결까지 몇 달이 걸릴지, 그동안 잔금대출과 재매각이 가능한지 알 수 없었거든요. 할인을 수익으로 확정하기 전에 불확실한 비용부터 적어야 합니다.
입찰 전에 제가 맞춰 보는 네 묶음의 자료
첫째는 법원 자료입니다. 매각물건명세서에서 매각 대상과 인수할 권리, 특별매각조건을 읽습니다. 감정평가서에는 토지 가치가 포함됐는지, 어떤 전제로 평가했는지 확인하고요. 현황조사서는 점유자를 파악하는 출발점입니다. 법원 자료 세 가지의 표현이 서로 다르면 그냥 넘기지 않습니다.
둘째는 건물과 토지의 등기기록입니다. 건물의 표제부와 권리관계만 보지 말고 토지의 소유자, 지분, 가압류·압류·담보권, 신탁 여부, 설정 날짜를 시간순으로 적습니다. 토지가 여러 필지라면 각 필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건물 주소만 검색해 나온 토지 한 장으로 끝내면 빠진 필지가 생길 수 있습니다.
셋째는 대지사용권이 생긴 근거입니다. 분양계약서와 공급계약 내용, 건축물대장, 토지대장, 다른 세대의 대지권 등기 상태가 단서가 됩니다. 같은 동의 옆집은 등기가 끝났는데 특정 세대만 비어 있다면 왜 그런지 확인해야 하죠. ‘나중에 등기될 예정’이라는 말은 확인 가능한 계약과 이행 경위가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자료를 구할 수 없다면 그 공백도 위험으로 봅니다.
넷째는 돈과 시간입니다. 대지 지분을 받을 때 추가 지급 문제가 있는지, 등기 절차에 협조할 사람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그다음 취득세, 등기·법무 비용, 명도 비용, 수리비, 보유기간의 이자와 관리비를 넣어 상한 입찰가를 다시 계산합니다. 경락잔금대출은 감정가나 예상 시세만 보고 가정하지 않습니다. 해당 물건 자료를 금융기관에 보여주고 대출 가능 여부와 조건을 확인해야 합니다.
초보라면 서류가 빈칸인 물건에서 물러나도 됩니다
대지권 미등기라는 표시 하나만으로 좋은 물건을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등기만 늦었다’는 판단에는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토지 소유 경위가 불명확하거나 대지 지분 이전에 필요한 계약을 확인할 수 없다면 저는 예상 수익에 큰 할인을 적용합니다. 그 할인으로도 소송과 추가 지급 가능성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입찰하지 않습니다.
명도 역시 따로 봐야 합니다. 대지권 문제가 풀릴 것 같아도 점유자의 보증금 인수 여부나 퇴거 협의 비용은 그대로 남습니다. 싸게 낙찰받은 숫자만 기억하고 토지, 점유, 금융을 각각 확인하지 않으면 잔금을 치를 무렵 계산이 완전히 바뀔 수 있습니다.
경매장에서 입찰표를 접고 돌아오는 날이 아깝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권리의 근거를 끝내 찾지 못한 물건이라면, 그날 아낀 돈이 낙찰 수익보다 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