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계약서 특약 한 줄에 잔금이 걸렸던 날

입찰장에서는 숫자를 잘못 쓰면 바로 티가 납니다. 그런데 낙찰받은 뒤 집을 팔 때는 계약서의 짧은 문장 하나가 문제를 일으키곤 합니다. 제가 현장에서 가장 경계하는 말이 ‘별일 없겠죠’입니다. 등기부를 확인하고 가격도 맞췄는데, 누가 언제 집을 비우고 어떤 권리를 지울지 계약서에 없으면 잔금 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먼저 선을 하나 그어야 합니다. 법원 경매로 물건을 사는 순간에는 일반 매매처럼 매도인과 부동산 계약서 특약을 협상할 수 없습니다. 매각물건명세서와 현황조사서, 등기사항증명서 등을 보고 입찰 여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아래 이야기는 일반 매매계약, 그리고 낙찰받은 물건을 다시 팔 때 제가 챙기는 특약에 관한 것입니다.
‘현 상태로 매매’라는 말이 불안했던 이유
낙찰 물건을 매도할 때 중개 현장에서 ‘현 상태로 매매한다’는 문구를 자주 봅니다. 짧아서 편하지만, 매수인이 무엇을 확인했고 매도인은 무엇을 알렸는지까지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가령 천장 누수 흔적이 있고 베란다에 무단으로 설치한 구조물이 있다면, 그 사실을 말로만 설명한 뒤 이 문구 하나로 끝내기는 찜찜합니다.
저라면 확인된 상태를 적습니다. ‘매수인은 거실 천장 누수 흔적과 베란다 설치물의 현황을 확인하였으며, 해당 부분의 수리 및 철거 범위는 별도로 합의한 내용에 따른다’는 식입니다. 누가 수리비를 낼지도 금액이나 견적 기준으로 붙여야 분쟁이 줄어듭니다. 다만 제가 모르는 하자까지 ‘일체 책임 없음’이라고 쓰는 건 조심합니다. 특약 한 줄이 모든 법적 책임을 없애준다고 믿고 거래할 일은 아닙니다.
계약 전에는 사진을 찍고 날짜를 남깁니다. 설명한 내용이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와 다른지도 대조합니다. 공인중개사법은 중개업자에게 권리관계와 물건 상태 등을 확인하고 설명하도록 하고 있지만, 계약 당사자도 자기 돈이 걸린 사실은 서류와 현장에서 다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잔금 날 지울 권리는 이름과 시점을 적는다
매매가 4억 원인 집에 근저당권이 남아 있다고 해봅시다. ‘매도인이 근저당을 말소한다’만 적으면 언제, 어떤 돈으로, 어떤 등기까지 처리할지가 비어 있습니다. 잔금 3억 6천만 원을 보냈는데 말소 서류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그때부터는 전화만 바빠집니다.
계약서에는 등기사항증명서에 나온 권리를 특정하고, 잔금 지급과 말소 서류 교부를 어떻게 맞출지 적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면 ‘매도인은 잔금 지급일에 ○○은행 근저당권 말소에 필요한 서류를 교부하고, 잔금 중 해당 채무 상환액은 금융기관에 직접 지급하는 방식으로 처리한다’는 식입니다. 실제 문구는 채무액과 금융기관 절차를 확인한 뒤 당사자와 법무사가 맞춰야 합니다.
계약 당일 등기부만 보고 끝내지도 않습니다. 잔금 직전에 새 압류나 가압류가 생기지는 않았는지 다시 확인합니다. ‘계약일 이후 매도인은 새로운 담보권이나 제삼자의 권리를 설정하지 않으며, 발생하면 잔금일까지 말소한다’는 약속도 적어둘 만합니다. 약속을 어겼을 때 잔금 지급을 미룰 수 있는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지까지 당사자가 합의해 두면 더 분명합니다.
사람이 살고 있다면 퇴거 날짜부터 확인한다
경매 물건을 사고 나서 명도를 겪어보면 ‘잔금 때 비워주겠다’는 말이 얼마나 넓은지 압니다. 이사 갈 집이 아직 안 구해졌다는 이유로 며칠만 기다려 달라는 일이 생깁니다. 매수인이 그날 입주하거나 세입자를 들일 계획이라면 며칠이 작지 않습니다.
점유자가 누구인지, 임차인이 있다면 보증금과 계약기간은 어떤지 먼저 확인합니다. 매매계약에는 ‘매도인은 잔금일 ○시까지 점유자 전원의 퇴거와 열쇠 인도를 완료한다’처럼 인도 시점을 적을 수 있습니다. 이행이 늦어질 때의 비용과 처리 방식도 협의해야 합니다. 기존 임대차를 승계하는 거래라면 퇴거 약속을 쓸 일이 아닙니다. 승계할 보증금, 실제 지급할 잔금, 임대차 서류를 서로 맞춰야 합니다.
미납 관리비도 같은 방식으로 다룹니다. ‘관리비는 매도인이 부담’이라고만 쓰지 말고 관리사무소에서 확인한 미납액과 정산 기준일을 적습니다. 경매에서 전 소유자의 미납 관리비를 누가 부담하는지는 항목별로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낙찰 때 치른 문제를 재매매 계약의 한 줄로 덮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대출 특약은 실패했을 때의 절차까지 써야 한다
매수인이 ‘대출은 될 거예요’라고 하면 저는 승인 예정 금액과 신청 시점을 먼저 묻습니다. 잔금 3억 원 중 2억 원을 대출로 마련할 계획인데 1억 5천만 원만 승인된다면, 부족한 5천만 원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거래의 관건입니다.
대출을 계약 조건으로 삼기로 했다면 금융기관 신청 기한, 필요한 승인액, 불승인 사실을 알릴 기한, 제출할 증빙, 계약금 반환 여부를 한 문장씩 분명히 적어야 합니다. ‘대출 불가 시 계약 무효’는 불가의 범위도, 당사자가 해야 할 일도 흐릿합니다. 신청을 미루거나 서류를 내지 않아 승인이 안 난 경우까지 같은 취급을 할지도 미리 합의해야 합니다. 매도인 입장에서도 잔금 직전에 처음 듣는 대출 문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계약금도 가볍게 볼 돈이 아닙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민법 제565조는 별도 약정이 없는 경우, 당사자 한쪽이 이행에 착수하기 전까지 계약금을 포기하거나 배액을 상환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언제 이행에 착수했는지는 거래 경과에 따라 다툼이 생길 수 있으니, ‘마음이 바뀌면 계약금만 돌려주면 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계약서를 볼 때 읽는 곳이 특약란입니다. 화려한 문구보다 권리의 이름, 돈의 흐름, 날짜, 약속을 못 지켰을 때의 처리가 적혀 있는지를 봅니다. 빈칸이 보이면 잔금 날의 제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그날 처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계약하는 자리에서 나누는 게 결국 돈을 덜 잃는 길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