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계약기간 중 퇴거를 말했더니 돈부터 따지게 됐다

경매로 낙찰받은 집의 임차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사 날짜보다 보증금 이야기가 먼저 나올 때가 많습니다. 임차인 쪽에서 “계약이 남았는데 나가도 되나요?”라고 묻기도 하고요. 월세 계약기간 중 퇴거는 짐을 언제 빼느냐보다 계약이 언제 끝나고, 그때까지 누가 어떤 돈을 내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먼저 계약이 처음 약속한 기간인지 확인합니다
계약서에 2년을 적었고 아직 그 기간이 지나지 않았다면, 임차인이 이사한다고 통보하는 것만으로 계약이 바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중도 해지할 수 있다는 특약이 있거나 임대인과 합의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러니 계약서의 기간, 중도 해지 특약, 이후에 주고받은 갱신 관련 문자를 먼저 펼쳐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70만 원, 계약 만료까지 6개월이 남았다고 해보죠. 다음 달에 이사를 간다는 사정만으로 남은 월세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임대인이 남은 6개월치인 420만 원을 무조건 한꺼번에 가져가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새 임차인이 언제 들어오는지, 기존 계약을 언제 끝내기로 합의하는지에 따라 계산이 달라집니다. 빈집이 된 날과 계약이 끝난 날을 같은 날로 생각하면 여기서부터 다툼이 생깁니다.
저라면 먼저 “새 임차인이 입주하는 날 기존 계약을 끝내고, 그날까지의 월세와 관리비를 계산한다”처럼 기준일을 문장으로 적습니다. 새 임차인이 구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도 함께 정해야 합니다. 구두로 “집만 빨리 빼주세요”라고 했다가 한쪽은 즉시 해지로, 다른 쪽은 단순한 이사 협조로 받아들이는 경우를 봤습니다.
갱신된 월세라면 3개월의 출발점이 다릅니다
처음 계약한 2년이 지났다고 해서 모두 같은 중도 퇴거는 아닙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묵시적으로 갱신된 계약에서는 임차인이 언제든 해지를 통지할 수 있고, 임대인이 그 통지를 받은 날부터 3개월이 지나면 해지 효력이 생깁니다. 계약갱신요구권을 써서 갱신한 경우에도 같은 해지 규정이 적용됩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실린 대법원 판례는 갱신요구에 따른 해지 통지가 새 계약기간 시작 전에 도달했더라도 3개월이 지나면 효력이 생긴다고 봤습니다.
여기서 제가 꼭 확인하는 단어는 ‘보낸 날’이 아니라 ‘받은 날’입니다. 4월 1일에 문자를 작성했어도 임대인에게 도달했는지가 불분명하면 날짜부터 다툴 수 있습니다. 해지 의사를 분명히 적은 문자나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 통화 후 확인 문자 같은 기록을 남기는 편이 좋습니다. 보증금이 크거나 상대방이 수신을 부인한다면 내용증명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새 계약서를 다시 썼다고 전부 계약갱신요구권에 따른 갱신은 아닙니다. 서로 새 기간을 정한 재계약인지, 묵시적 갱신인지, 갱신요구권을 행사했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서류에 적힌 제목보다 당시 주고받은 통지와 합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복비와 월세를 섞어 계산하면 손해가 커집니다
중도 퇴거 상담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나가는 사람이 복비를 다 내는 거 아닌가요?”입니다. 그렇게 자동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공인중개사에게 지급하는 중개보수와, 임대인·임차인 사이에서 중도 해지 조건으로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할지는 구분해야 합니다. 임차인이 새 사람을 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맡기로 합의할 수는 있지만, 그 범위와 금액을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가령 월세 70만 원인 집을 한 달 일찍 비우려는데, 임대인이 중개비 35만 원을 임차인에게 부탁한다고 해봅시다. 임차인이 이를 받아들이면 새 임차인 입주일, 기존 계약 종료일, 월세 마지막 계산일, 중개비 부담액을 한 번에 적어두는 게 낫습니다. “복비는 제가 낼게요” 한 줄만 남기면 집이 두 달 동안 비어 있을 때 월세까지 계속 내야 하는지 다시 싸우게 됩니다.
관리비도 따로 봐야 합니다. 사용량에 따라 나오는 전기·가스·수도 요금은 계량기 사진을 찍고 이사일까지 계산하면 비교적 분명합니다. 고정 관리비, 미납액, 청소비나 수리비는 계약 내용과 실제 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보증금에서 빼겠다는 말을 들었다면 항목별 금액과 근거를 받아보는 게 좋습니다. 생활하면서 생긴 통상적인 마모까지 곧바로 임차인 부담으로 묶어서는 안 됩니다.
보증금이 들어오기 전에는 이사 순서를 다시 봅니다
보증금 1,000만 원을 받아야 다음 집 잔금을 치를 수 있다면, “새 세입자 들어오면 줄게요”라는 말만 믿고 날짜를 잡기 어렵습니다. 처음 계약기간이 남아 있고 중도 해지 합의도 없다면 원하는 이사 날짜에 곧바로 반환을 요구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계약이 적법하게 끝났는데도 보증금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새 임차인을 못 구했다는 사정만으로 반환 의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현장에서 권하는 순서는 단순합니다. 계약 종료일과 보증금 입금일을 먼저 맞추고, 월세·관리비·공제액을 확인한 뒤 열쇠 인도 시간을 정합니다. 보증금 입금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전출하고 집을 완전히 비우면 임차인의 권리 보호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계약이 끝났는데 보증금을 받지 못해 이사해야 한다면 임차권등기명령을 검토하고, 실제 등기가 완료됐는지 확인한 다음 움직여야 안전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대차 종료 후 보증금이 반환되지 않은 임차인이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경매 물건을 볼 때도 저는 임차인이 언제 나간다는 말보다 계약 종료와 보증금 반환 약속이 어떻게 적혀 있는지를 먼저 봅니다. 월세 계약기간 중 퇴거 역시 이사 의사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날짜와 돈을 한 장에 적어 서로 확인한 집은 대체로 조용했고, 그 한 장을 건너뛴 집에서 오히려 오래 실랑이가 이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