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만기시 정산 방법 이삿날마다 확인한다

얼마 전 경매 물건을 보러 갔다가, 이삿짐은 다 뺐는데 보증금을 못 받아 현관 앞에서 집주인을 기다리는 세입자를 만났습니다. 집주인은 새 세입자 잔금이 늦어진다고 했고, 세입자는 이미 다음 집 이사 시간을 잡아 둔 상태였죠. 경매 현장을 오래 다니다 보면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습니다. 전세 만기시 정산 방법은 숫자 몇 개를 빼는 일이기도 하지만, 돈을 받는 순서와 집을 넘기는 시점을 맞추는 일이기도 합니다.
만기 두 달 전, 종료 의사부터 남긴다
계약서의 만기일을 먼저 확인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이 만기 2개월 전까지 갱신하지 않겠다는 뜻을 알리지 않으면 묵시적으로 갱신될 수 있습니다. 날짜를 달력에 표시하고 집주인에게 문자로 계약 종료일과 보증금 반환 요청일을 보내 둡니다. 통화했다면 통화 뒤에 같은 내용을 문자로 남기는 편이 좋습니다. 나중에 말이 달라졌을 때 필요한 건 '분명히 얘기했다'는 기억보다 상대방에게 전달된 기록입니다.
이미 묵시적 갱신이 됐다면 만기일만 보고 정산 날짜를 잡으면 곤란합니다. 이 경우 임차인은 언제든 해지를 통지할 수 있지만, 해지 효력은 집주인이 통지를 받은 날부터 3개월이 지나야 생깁니다.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해 갱신한 경우도 해지 통지 규정을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어느 경우든 새집 계약금부터 넣기 전에 종료 시점과 반환 일정을 맞춰 두는 게 안전합니다.
보증금에서 빠질 돈과 돌려받을 돈을 따로 적는다
제가 정산표에 적는 항목은 단순합니다. 보증금, 미납 관리비와 공과금, 합의된 수리비, 임차인이 대신 낸 장기수선충당금입니다. 예를 들어 보증금이 3억 원이고 미납 관리비 18만 원, 파손 수리비 12만 원에 합의했으며 돌려받을 장기수선충당금이 24만 원이라면, 정산액은 3억 원에서 18만 원과 12만 원을 빼고 24만 원을 더한 2억 9,994만 원입니다. 다만 관리비를 관리사무소에 직접 냈다면 보증금에서 다시 빼면 이중 납부입니다.
관리사무소가 있는 아파트라면 이사일 기준 관리비 정산서와 장기수선충당금 납부 확인서를 받습니다. 전기·가스·수도는 계량기 숫자를 사진으로 남기고 각 공급처나 관리사무소에서 마지막 사용분을 확인합니다. 아직 고지되지 않은 금액은 계산 방식과 지급 날짜를 문자로 합의해 두면 됩니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에 따르면 사용자가 대신 낸 장기수선충당금은 소유자가 반환해야 합니다. 관리비 고지서에 섞여 있어 놓치기 쉬운 돈입니다.
수리비는 사진과 근거를 놓고 이야기한다
현장에서 다툼이 잦은 건 벽지와 바닥입니다. 오래 살며 생긴 자연스러운 변색이나 생활 흔적과, 무거운 가구를 끌어 바닥을 깊게 긁은 손상은 같은 항목으로 계산하기 어렵습니다. 대법원 판례도 통상적인 사용에 따른 마모는 특별한 약정이 없으면 임차인에게 원상회복 비용을 떠넘기기 어렵다는 취지입니다. 반면 임차인 책임이 확인되는 파손은 비용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입주 때 찍은 사진, 퇴거 직전 사진, 계약서 특약, 수리 견적서를 한곳에 모읍니다. 집주인이 '도배 100만 원'이라고 하면 어느 부분을 왜 교체해야 하는지, 실제 견적은 얼마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세입자도 자신이 낸 흠집을 무조건 생활 마모라고 우길 일은 아니고요. 예전에 작은 벽지 오염을 두고 전체 도배비를 요구하는 장면을 봤는데, 입주 당시 사진을 꺼내 놓자 논의 범위가 오염된 부분으로 좁혀졌습니다. 금액보다 근거를 먼저 맞춰야 정산이 빨라집니다.
입금 확인과 열쇠 인도는 같은 자리에서
이삿날에는 집 상태를 함께 확인하고 정산액을 확정한 뒤, 보증금이 실제 계좌에 들어왔는지 확인하면서 열쇠와 출입 비밀번호를 넘기는 순서가 깔끔합니다. '송금했다'는 말이나 이체 예약 화면만 믿고 떠나면 곤란합니다. 전세대출을 썼다면 은행의 상환 방식도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보증금 가운데 일부가 대출 상환에 쓰이는 구조라면 집주인에게 받을 금액과 은행으로 보낼 금액을 이사 당일 처음 계산해서는 시간이 모자랍니다.
집주인이 새 세입자 돈이 들어와야 돌려주겠다고 해도, 그 사정만으로 세입자의 보증금 반환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반환이 늦어진다면 지연 사유와 지급 예정일을 문자로 남기고, 가입한 반환보증이 있다면 보증기관의 청구 요건과 절차를 확인합니다. 전액을 못 받았는데 이사를 서둘러야 한다면 임차권등기명령도 검토해야 합니다. 임대차가 끝난 뒤 보증금이 반환되지 않았을 때 법원에 신청할 수 있고, 중요한 건 신청만 한 상태에서 전출하거나 집을 비우지 말고 실제 등기 완료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매장에서 등기부를 볼 때도 결국 날짜와 순서를 따집니다. 전세 만기 정산 역시 비슷합니다. 종료 통지를 남기고, 공제 항목의 근거를 맞추고, 입금을 확인한 뒤 집을 넘기는 것. 이 순서를 지키면 이삿날 감정이 상하더라도 적어도 무엇을 두고 다투는지는 분명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