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임대차보호법 제4조를 읽고 입찰가를 다시 쓴 날

입찰장에서 계약 만료일만 보고 빈집이 될 거라 계산한 물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임차인은 여전히 살고 있었고,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계약서의 날짜 한 줄로 명도 시점이나 인수할 돈을 판단하면 위험하다는 걸 다시 느꼈죠. 주택임대차보호법 제4조는 경매 물건을 볼 때도 그렇게 읽어야 합니다.
1년 계약이라도 임차인은 2년을 주장할 수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4조 제1항은 기간을 정하지 않았거나 2년보다 짧게 정한 임대차를 2년으로 봅니다. 다만 임차인은 계약서에 적힌 짧은 기간이 유효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25년 3월부터 1년간 빌린 집이라면, 임대인이 계약서만 내밀며 2026년 3월 퇴거를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임차인은 2027년 3월까지의 기간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임차인이 1년 약정대로 나가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매에서 이 조항을 처음 접하면 ‘그럼 낙찰자도 무조건 2년을 기다려야 하나’ 싶을 겁니다. 그렇게 바로 넘어가면 안 됩니다. 경매 매수인에게 임대차를 주장할 수 있는지는 임차인의 대항력과 선순위 권리, 경매로 소멸하는 권리를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계약 기간과 낙찰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지는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계약이 끝났어도 보증금을 못 받았다면
제4조 제2항은 임대차기간이 끝나도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때까지 임대차관계가 존속하는 것으로 봅니다. 제가 현장에서 조심하는 대목은 여기입니다. 계약 만료일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점유자를 무단 점유자로 단정하거나, 곧바로 집을 비워 줄 거라고 입찰가를 쓰면 계산이 틀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보증금을 못 받은 임차인이 모든 낙찰자에게 그 돈을 청구할 수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5에 따르면 경매로 임차권은 원칙적으로 소멸하지만, 보증금 전액을 변제받지 못한 대항력 있는 임차권은 예외입니다. 결국 임차인이 언제 집을 인도받고 전입신고를 했는지, 그보다 앞선 근저당권 등은 무엇인지부터 봐야 합니다.
확정일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 확정일자를 갖춘 임차인은 경매나 공매의 매각대금에서 일정한 순위에 따라 보증금을 배당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확정일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전액 배당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앞선 권리와 실제 배당 가능액을 함께 계산해야 합니다.
서류에는 만료, 현장에는 거주 중인 물건
가상의 숫자로 계산해 보죠. 예상 낙찰가가 2억 4천만 원이고, 임차인 보증금은 1억 2천만 원인 집입니다. 계약서상 기간은 이미 끝났습니다. 그런데 조사 결과 임차인이 선순위 대항력을 유지하고 있고, 예상 배당액은 7천만 원뿐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보증금 5천만 원이 남습니다.
이 경우 낙찰가만 비용으로 보면 안 됩니다. 남는 보증금을 매수인이 부담하는 상황이라면 취득 자금은 벌써 2억 9천만 원입니다. 취득세와 등기비용, 대출이자, 수리비, 명도 과정의 비용을 합쳐 1천500만 원이 더 든다면 총 3억 500만 원입니다. 시세가 3억 2천만 원이어도 차이는 1천500만 원뿐입니다. 매도 비용과 보유 기간의 부담까지 생각하면 처음 보였던 수익과는 거리가 멉니다.
반대로 선순위 담보권 때문에 경매에서 소멸하는 임차권이라면 같은 방식으로 보증금 잔액을 낙찰자 부담액에 더해서는 안 됩니다. 숫자는 같아도 권리 순서가 바뀌면 계산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임차인 보증금 액수만 적힌 표를 보고 입찰가부터 정하는 습관이 무섭습니다.
입찰 전에는 날짜와 돈을 한 줄씩 맞춘다
저는 이런 물건을 보면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 등기사항증명서, 임대차 관련 자료를 나란히 놓습니다. 임차인의 전입일과 점유 시작일, 확정일자, 계약 종료일, 보증금 액수를 먼저 적습니다. 그다음 근저당권 설정일 등 권리 순서를 맞춰 보고, 배당요구 여부와 예상 배당액을 따집니다. 서류끼리 내용이 다르거나 점유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 차이를 입찰 전에 확인해야 합니다.
- 계약서가 1년이라면 임차인이 2년의 기간을 주장할 여지가 있는지 본다.
- 계약이 끝났다면 보증금 반환 여부와 현재 점유 상태를 확인한다.
- 전입·점유 시점과 선순위 권리를 비교해 낙찰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지 따진다.
- 배당 후 보증금이 남을 가능성과 취득세·이자·명도 비용을 입찰가에 반영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4조는 계약 기간과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의 지위를 읽는 출발점입니다. 제가 입찰장에서 배운 건 그다음 숫자까지 써 봐야 한다는 겁니다. 만료일만 빨간 펜으로 표시해 둔 물건일수록, 임차인이 받을 돈과 낙찰자가 감당할 돈을 끝까지 따져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