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상한제만 믿고 입찰하려다 멈춘 이유

얼마 전 전세가 끼어 있는 아파트 입찰을 검토하다가 계산기를 다시 꺼냈습니다. 임차보증금은 3억 원, 계약 만료까지는 8개월. 주변 전세 시세가 3억 6천만 원이라 처음엔 다음 계약에서 보증금을 올리면 자금 부담이 줄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전월세 상한제를 생각하면, 주변 시세보다 먼저 봐야 할 건 그 임대차계약의 상태였습니다.
전월세 상한제의 5%는 언제 걸릴까
주택 임차인이 법에서 정한 기간에 계약갱신을 요구하면, 갱신되는 계약의 보증금이나 차임 증액에는 상한이 적용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증액청구는 종전 금액의 5%를 넘을 수 없습니다. 지역 조례가 더 낮은 상한을 정했을 가능성도 확인해야 합니다. 신규 임차인과 새로 맺는 계약의 임대료까지 일률적으로 5%로 묶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앞의 사례에서 보증금 3억 원을 기준으로 5%를 계산하면 1,500만 원입니다. 갱신요구권이 적법하게 행사되고 증액 사유가 인정된다 해도, 상한만 놓고 보면 3억 1,500만 원을 넘겨 요구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주변 전세 시세 3억 6천만 원을 그대로 넣어 수익을 계산했다면 차이가 4,500만 원이나 납니다. 경락잔금대출과 보유 자금을 맞춰 놓은 사람에겐 작은 차이가 아니죠.
여기서 하나 더. 5%는 임대인이 무조건 받을 수 있는 인상률이 아닙니다. 법은 조세나 공과금 부담, 경제사정의 변동 등으로 종전 금액이 적절하지 않게 된 경우 장래에 대한 증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임대차계약을 맺었거나 증액한 뒤 1년 이내에는 증액청구도 할 수 없습니다. 계산기에 5%를 먼저 더하기 전에, 언제 계약했고 언제 올렸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재계약서의 이름보다 갱신 경위를 봤다
현장에서는 계약서 제목에 ‘재계약’이라고 적혀 있어도 사정이 제각각입니다. 임차인이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해 갱신한 경우가 있고, 당사자가 조건을 협의해 다시 계약한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 통지 없이 기간이 지나 묵시적으로 갱신된 경우도 있죠. 이 셋을 같은 계약으로 보고 입찰가를 쓰면 판단이 어긋납니다.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은 원칙적으로 한 번 행사할 수 있고, 그 요구로 갱신되는 임대차기간은 2년으로 봅니다. 행사 기간은 계약 만료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입니다. 반면 묵시적 갱신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1회 사용권을 이미 썼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 임차인이 갱신을 요구했는지, 문자나 내용증명에 어떤 의사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입찰 전 임대차 서류를 볼 때는 계약일, 만료일, 보증금 증액일을 시간순으로 적습니다. 그 옆에 갱신요구 통지의 유무와 날짜를 붙이죠. 임차인이나 소유자의 말만 듣고 빈칸을 채우지는 않습니다. 경매 기록에 없는 사정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두고, 그에 따른 자금 부담을 따로 계산합니다.
낙찰받으면 임차인이 바로 나간다는 계산
경매 물건에서 더 위험한 착각은 낙찰 뒤 집을 비워 받을 수 있다고 먼저 가정하는 겁니다. 임차인이 매수인에게 대항할 수 있는지, 보증금이 배당으로 얼마나 회수되는지에 따라 낙찰자가 맞닥뜨릴 상황이 달라집니다. 대항력이 유지되는 임대차라면 매수인이 임대인 지위를 승계하고 보증금 반환 문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전월세 상한제 계산보다 선순위 권리와 임차인의 대항력 분석이 먼저인 이유입니다.
실거주 계획도 말 한마디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법에는 임대인이나 일정한 가족의 실제 거주가 갱신거절 사유로 규정돼 있지만, 임차인이 갱신을 요구한 시점과 거절 통지 시점, 소유권 취득 시점을 함께 봐야 합니다. 실거주를 이유로 거절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갱신됐을 기간 안에 제3자에게 임대하면 손해배상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낙찰 예정자가 입찰장에서 ‘내가 들어가 살 거니까 괜찮다’고 판단하기엔 확인할 게 많습니다.
입찰가에 넣어야 했던 숫자
저라면 앞의 보증금 3억 원 사례를 두 갈래로 계산합니다. 먼저 임차관계가 이어져 보증금이 당분간 묶이는 경우입니다. 가능한 증액분을 보수적으로 잡고, 대출이자와 세금, 관리비, 수리비를 지출로 적습니다. 다음은 적법하게 임대차가 끝나 집을 인도받는 경우입니다. 이때도 보증금 반환에 필요한 돈과 인도까지 걸릴 시간을 계산에 넣습니다. 두 경우 중 하나만 수익이 나면, 그 차이를 감수할 수 있는 입찰가인지 다시 묻게 됩니다.
전월세 상한제는 숫자 하나로 외우기 쉬운 제도입니다. 근데 경매에서는 그 숫자가 적용되는 계약인지 확인하는 일이 훨씬 오래 걸립니다. 임차인의 권리와 보증금 흐름을 끝까지 확인하지 못한 물건이라면, 저는 예상 임대료를 높여 쓰기보다 입찰가를 낮추거나 그냥 지나갑니다. 놓친 물건은 다시 만나도, 잘못 인수한 보증금은 낙찰 뒤에 지울 수 없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