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임대차보호법 믿고 입찰했다가 보증금을 다시 봤다

입찰장에 앉아 있으면 감정가보다 1억 원 낮은 아파트가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싸 보이는 물건 옆에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으면 계산기를 다시 꺼냅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을 보호하는 법이지만, 경매 투자자에게는 낙찰 뒤 얼마를 더 부담할 수 있는지 알려 주는 법이기도 합니다.
전입일 하루 차이가 입찰가를 바꾼다
예를 들어 서울의 한 아파트에 임차인이 보증금 1억 4천만 원을 내고 2020년 3월 10일 입주와 전입신고를 마쳤다고 해봅시다. 등기부의 첫 근저당권 설정일은 3월 20일입니다. 임차인이 실제로 집을 인도받았고 주민등록도 유지했다면, 그 임차인은 근저당권보다 먼저 대항력을 갖춘 셈입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은 주택 인도와 주민등록을 모두 마친 다음 날부터 생깁니다.
여기서 흔히 놓치는 게 ‘계약일’입니다. 계약서에 3월 1일이라고 적혀 있어도 실제 입주와 전입이 3월 21일이었다면 판단이 달라집니다. 반대로 전입신고일만 보고 입주 사실을 확인하지 않아도 위험합니다. 저는 등기부의 권리 설정일, 전입세대 자료, 현황조사서, 임대차계약서의 날짜를 나란히 적습니다. 날짜가 하루라도 엇갈리면 그 이유를 확인하기 전에는 입찰가를 쓰지 않습니다.
확정일자가 있어도 배당액은 따로 계산한다
대항력과 우선변제권도 구분해야 합니다. 주택 인도와 주민등록이 대항력의 출발점이라면, 여기에 계약서의 확정일자까지 갖춰야 경매나 공매 대금에서 후순위 채권자보다 우선해 보증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확정일자가 찍힌 보증금 전액이 반드시 배당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선순위 권리, 집행비용, 다른 임차인의 권리, 실제 낙찰가에 따라 받을 돈이 달라집니다.
아까 사례에서 임차인이 배당요구를 했고, 여러 권리를 따져 보니 보증금 1억 4천만 원 중 9천만 원만 배당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가정해봅시다. 선순위 대항력이 유지되는 임차권이라면 미변제액 5천만 원이 낙찰자에게 남을 수 있습니다. 낙찰가가 2억 7천만 원이라고 해서 총매입비용도 2억 7천만 원인 게 아닙니다. 인수할 보증금 5천만 원을 더하면 벌써 3억 2천만 원입니다. 여기에 취득세, 등기비용, 수리비와 점유자 퇴거에 드는 시간까지 넣어야 합니다.
실무에서는 배당예상액을 숫자 하나로 확정해 놓지 않습니다. 배당요구 여부와 종기, 확정일자, 배당받을 채권의 순위가 확인되지 않으면 예상액 자체가 흔들립니다. 특히 매각물건명세서에 보증금이 전부 변제되지 않을 경우 매수인이 인수할 수 있다는 취지의 문구가 보이면, 그 금액을 0원으로 놓고 수익률을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
소액임차인이라는 말도 금액을 보장하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현행 시행령상 보증금 1억 6천500만 원 이하인 임차인이 소액임차인 범위에 들어가고, 우선변제받을 수 있는 일정액의 상한은 5천500만 원입니다. 이 두 숫자를 헷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증금이 1억 6천만 원이면 1억 6천만 원을 최우선으로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일정액을 먼저 받을 수 있는지, 실제 얼마를 받는지는 요건과 배당재원에 달려 있습니다.
소액임차인은 경매신청 등기 전에 주택 인도와 주민등록을 갖춰야 합니다. 또 최우선변제액은 주택가액의 절반을 넘을 수 없습니다. 근저당권이 오래전에 설정된 물건이라면 지금의 서울 기준액만 그대로 대입해서도 안 됩니다. 시행령이 바뀌기 전에 담보물권을 취득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당시 기준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래된 근저당권이 보이면 설정 연도에 맞는 기준부터 다시 확인합니다.
현장에서 확인되지 않은 칸은 비용으로 남는다
초보 때는 현황조사서에 ‘임차인 없음’이라고 적혀 있으면 빈집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조사 당시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실제 점유 관계가 서류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입찰 전에는 등기부와 매각물건명세서의 최신본을 보고, 전입세대 자료와 임대차 신고 내용, 배당요구 내역을 맞춰 봅니다. 가능하면 현장에 가서 우편함과 계량기, 이웃의 말을 통해 점유 흔적도 확인합니다. 이웃의 말만으로 권리를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 등기부에서 먼저 설정된 근저당권 등 권리의 날짜를 적는다.
- 임차인의 실제 입주일, 전입일, 확정일자와 배당요구 여부를 각각 확인한다.
- 보증금 전액 배당, 일부 배당, 배당 없음의 경우를 나눠 인수 가능액을 계산한다.
- 낙찰가에 세금, 수리비, 대출이자와 점유 문제에 드는 비용을 더한다.
이 가운데 임차인의 입주일이나 보증금처럼 중요한 사실이 끝내 확인되지 않는 물건도 있습니다. 그런 물건은 예상 수익이 커 보여도 입찰가를 낮추거나 그냥 보냅니다. 경매에서는 싸게 낙찰받는 것보다, 낙찰 뒤 누구에게 얼마를 지급해야 하는지 알고 들어가는 편이 오래 버티는 길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