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임대차보호법만 보고 입찰하려다 멈춘 이유

얼마 전 상가 경매 물건을 보다가 매각물건명세서의 ‘임차인 있음’이라는 한 줄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사진에는 간판이 없었고 현장에서도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비어 있는 점포처럼 보였죠. 그런데 상가 경매에서는 문이 닫혀 있다는 사실보다 임차인이 언제 점포를 넘겨받고 사업자등록을 신청했는지가 훨씬 중요합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을 읽을 때도 저는 그 날짜부터 확인합니다.
사업자등록 날짜 하나로 낙찰자의 계산이 달라진다
상가 임차인이 건물을 인도받고 사업자등록을 신청하면, 두 요건을 갖춘 다음 날부터 제3자에게 임대차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대항력입니다. 여기서 사업자등록증의 발급일만 보고 날짜를 판단하면 어긋날 수 있습니다. 신청일과 실제 점유 시점을 함께 봐야 합니다.
경매 물건이라면 이 날짜를 등기부의 근저당권, 압류 등과 나란히 놓습니다. 선순위 권리보다 앞서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은 매각 뒤에도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지 못했다면 임차권이 남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선순위 담보권보다 늦게 대항력을 갖췄다면 같은 방식으로 낙찰자에게 보증금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고 단정하면 안 됩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적용 대상이니까 보증금은 낙찰자가 무조건 떠안는다’는 말이 위험한 이유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임차인이 2022년 6월 점포를 넘겨받고 사업자등록을 신청했으며, 은행 근저당권이 2023년 3월 설정된 상가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임차인 보증금은 5천만 원, 경매 배당으로 받는 돈은 3천만 원입니다. 다른 선순위 권리나 예외 사정이 없다면 낙찰자는 남은 2천만 원을 고려해야 합니다. 입찰가가 시세보다 2천만 원 싸 보인다고 반길 일이 아닙니다. 그 차액이 그대로 보증금 부담일 수 있으니까요.
확정일자가 있어도 배당액은 따로 계산한다
대항력과 우선변제권도 자주 뒤섞입니다. 임차인이 점포 인도와 사업자등록 요건을 갖추고 관할 세무서에서 임대차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으면, 경매·공매 대금에서 후순위 권리자보다 보증금을 우선 변제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확정일자 도장이 있다고 보증금 전액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앞선 권리, 배당받을 채권, 실제 매각대금을 놓고 계산해야 합니다.
입찰 전에는 배당요구를 했는지, 어느 계약서를 근거로 했는지도 확인합니다. 갱신 계약서에 보증금이나 당사자가 달라졌다면 처음 계약서의 날짜를 그대로 적용해도 되는지 따져야 합니다. 대법원은 상가 임차인이 배당요구 종기가 지난 뒤 최초 계약서의 확정일자를 새로 주장해 배당순위를 바꾸려 한 사건에서 이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서류 한 장의 날짜가 예상 배당액을 바꾸고, 그 금액이 다시 입찰가를 바꿉니다.
환산보증금 기준을 넘으면 보호가 전부 사라질까
현장에서 또 많이 듣는 말이 ‘보증금이 크니 상가임대차보호법과 관계없다’는 겁니다. 이것도 너무 빠른 판단입니다. 적용 범위를 따질 때 쓰는 환산보증금은 보증금에 월세의 100배를 더한 금액입니다. 서울은 현재 9억 원이 기준입니다.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900만 원이라면 환산보증금은 10억 원이 됩니다.
이렇게 지역별 기준을 넘더라도 대항력이나 계약갱신요구권,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처럼 적용되는 조항이 있습니다. 다만 확정일자에 따른 우선변제와 소액임차인 보호까지 똑같이 적용된다고 보면 곤란합니다. 특히 소액임차인의 일정액 우선변제는 별도의 지역별 보증금 기준과 한도가 있고, 경매신청 등기 전 대항요건도 따집니다. 환산보증금 기준과 소액보증금 기준을 같은 숫자로 취급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입찰장에 가기 전에는 점포 안의 사람을 본다
제가 상가를 볼 때 순서는 이렇습니다. 등기부에서 권리 날짜를 적고, 매각물건명세서와 현황조사서에서 임차인 주장과 보증금을 확인합니다. 그다음 실제 점유자와 업종, 간판, 영업 흔적을 현장에서 대조합니다. 이해관계인이라면 세무서의 상가건물 임대차 현황서로 확정일자와 보증금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지도 살핍니다. 서류와 현장이 맞지 않으면 입찰가를 낮추는 것으로 덮지 않습니다. 무엇이 다른지 확인될 때까지 계산을 멈춥니다.
계약갱신요구권도 명도 일정과 맞물립니다. 임차인은 원칙적으로 계약 만료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 갱신을 요구할 수 있고, 최초 임대차기간을 포함해 전체 10년 범위에서 행사합니다. 다만 3기의 차임액에 이르도록 연체한 사실이 있는 경우 등 법에서 정한 사유가 있으면 임대인이 거절할 수 있습니다. 낙찰만 받으면 바로 점포를 비울 수 있다고 가정하면 자금 계획부터 틀어집니다.
실제 입찰가에는 예상 보증금 인수액뿐 아니라 취득세, 잔금대출 이자, 수리비, 공실 기간과 명도 비용까지 넣습니다. 권리관계가 복잡한 점포라면 상담 비용도 아끼지 않습니다. 상가에서는 싸게 낙찰받은 가격보다, 낙찰 뒤 누구에게 얼마를 돌려줘야 하는지 정확히 적어 둔 메모가 제 돈을 더 오래 지켜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