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권등기 보고 싸다 싶어 입찰했다가 멈춘 이유

경매 물건을 보다가 등기부에 ‘주택임차권등기’가 찍혀 있으면 저는 입찰가 계산부터 멈춥니다. 예전에 빈집 사진과 낮은 최저가만 보고 관심을 가졌다가, 임차인의 전입일을 확인하고 계산을 처음부터 다시 한 적이 있습니다. 집이 비어 있어도 보증금 문제가 끝난 건 아니더군요.
임차권등기는 이사 간 세입자의 흔적일 수 있다
임대차가 끝났는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은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등기가 완료되면, 임차인이 이미 갖고 있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은 이후 이사하거나 전출해도 유지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에 있는 내용입니다. 신청서를 냈거나 법원이 명령을 내렸다는 말만 듣고 등기가 끝난 것으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등기사항전부증명서에서 실제 등기 완료 여부와 접수일을 확인해야 합니다.
여기서 경매 투자자가 놓치기 쉬운 점이 있습니다. 임차권등기 날짜가 늦다고 해서 그 임차인의 권리까지 무조건 늦게 생긴 것은 아닙니다. 임차인이 먼저 집을 인도받고 전입신고를 마쳤다면 대항력 발생일은 그다음 날입니다. 확정일자까지 받았다면 우선변제권도 따져야 합니다. 임차권등기는 기존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중에 올린 것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전입과 점유를 유지하지 못한 채 먼저 이사했고, 그 뒤에 임차권등기를 마쳤다면 잃었던 종전 순위가 저절로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짜에 어떤 요건을 갖췄는지 순서대로 봐야 합니다. 등기부에 적힌 한 날짜만으로는 이 차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빈집인데도 보증금 6천만 원을 계산에 넣은 이유
제가 현장에서 자주 쓰는 방식대로 숫자를 넣어보겠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가상 사례입니다. 임차인 보증금은 2억 원, 입주와 전입신고는 2021년 3월 10일, 확정일자도 그 무렵 받았습니다. 근저당권은 2021년 6월에 설정됐고, 임차권등기는 2024년에 마쳤습니다. 경매 때는 이미 이사해 집이 비어 있습니다.
이 경우 임차권등기가 근저당보다 늦다는 이유만으로 후순위 임차인이라고 보면 위험합니다. 2021년 3월에 갖춘 대항력이 근저당보다 앞서는지가 먼저입니다. 낙찰가를 1억 5천만 원, 임차인의 실제 배당액을 1억 4천만 원으로 가정하면 보증금 잔액은 6천만 원입니다. 선순위 대항력이 유지된 임차인이라면 그 미변제액의 반환의무를 매수인이 승계할 수 있습니다. 매입에 들어가는 돈을 낙찰가 1억 5천만 원으로만 적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물론 입찰 전에 배당액 1억 4천만 원이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집행비용, 선순위 채권, 세금 등 사건별 사정에 따라 실제 배당액은 달라집니다. 저는 예상 인수액을 하나의 숫자로 단정하지 않고, 배당이 적게 나오는 경우까지 따로 적습니다. 거기에 취득세, 등기비용, 대출이자, 수리비와 보유 기간의 비용도 더해야 비로소 입찰가가 보입니다.
배당요구 목록에 이름이 없을 때도 안심하지 않는다
초보 때는 매각물건명세서의 배당요구 여부를 보고 마음을 놓기 쉽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임차권등기가 첫 경매개시결정등기보다 먼저 마쳐진 경우, 그 임차인은 별도로 배당요구를 하지 않아도 배당받을 채권자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배당요구 목록에 이름이 없다는 사실 하나로 보증금이 사라졌다고 계산할 수 없는 겁니다.
제가 입찰 전에 맞춰보는 서류는 등기사항전부증명서,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 임대차관계 조사 내용과 사건기록입니다. 등기부에서는 임차권등기 접수일과 근저당 등 선순위 권리를 보고, 사건기록에서는 전입일·확정일자·보증금·배당요구 및 경매개시결정등기일을 대조합니다. 서류마다 임차인이나 금액이 다르게 적혀 있으면 이유를 확인하기 전에는 입찰가를 쓰지 않습니다.
빈집 여부도 별개로 확인합니다. 전출한 임차인 외에 다른 점유자가 있을 수 있고, 열쇠를 언제 넘겨받을지도 현장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선순위 임차인의 보증금 잔액을 떠안는 물건이라면 그 돈의 지급과 인도 일정까지 자금 계획에 넣어야 합니다. 명도비를 조금 잡아두는 것으로 보증금 문제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입찰을 접는 순간
임차권등기가 보이는데 임차인의 최초 전입일이나 보증금이 확인되지 않으면 저는 대개 그 물건을 넘깁니다. 특히 여러 세대가 사는 다가구주택은 다른 임차인의 보증금과 순위까지 얽혀 예상 배당액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싸 보이는 최저가가 그 불확실성을 충분히 보상하는지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임차권등기 자체가 위험한 물건이라는 표시는 아닙니다. 다만 ‘세입자가 나갔으니 비었다’와 ‘보증금 부담이 없다’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제 입찰 노트에서 임차권등기는 항상 날짜를 다시 펼쳐보게 만드는 표시입니다. 그 몇 분을 아끼려다 낙찰 뒤 몇천만 원을 새로 계산하는 일은 겪고 싶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