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순위 보증금 확인서 믿고 입찰할 뻔했다

입찰장에서 다가구주택 서류를 펼쳐 놓고 ‘선순위 보증금 확인서가 있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확인자 도장이 찍혀 있으면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런데 경매에서 중요한 건 도장보다 그 숫자가 언제, 어떤 자료를 바탕으로 적혔느냐입니다. 보증금 한 건을 빠뜨리면 예상 수익이 줄어드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확인서에 적힌 숫자가 전부는 아니다
선순위 보증금 확인서라고 부르는 서류는 보통 건물 안 다른 임차인들의 보증금 내역을 적어 확인받는 문서입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는 ‘선순위 임대차보증금 확인서’라는 서식도 있습니다. 다만 그 서식이 있다고 해서 법원이 각 세대의 권리와 보증금 액수를 확정해 준 것은 아닙니다. 누가 작성했는지, 빈방과 월세방을 빠짐없이 적었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특히 다가구주택은 조심스럽습니다. 겉으로는 여러 호실이지만 등기상 건물 전체가 하나의 매각 대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보러 간 201호만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층 임차인의 보증금도 배당이나 인수 위험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반면 호실마다 따로 등기된 다세대주택은 매각 대상과 권리관계부터 다르게 봐야 합니다. 현장에서는 이 두 가지를 이름만 듣고 혼동하는 일이 꽤 있습니다.
확인서에는 호실별 보증금, 계약 시기, 확인 날짜와 확인자가 드러나야 비교가 됩니다. ‘선순위 보증금 합계 1억 원’이라는 한 줄만 있으면 저는 계산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합계가 맞더라도 어느 임차인이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면 순위를 가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입일과 확정일자를 따로 봐야 하는 이유
주택 임차인의 대항력은 주택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을 마친 다음 날부터 생깁니다. 확정일자까지 갖추면 경매대금에서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는지 따질 근거가 생깁니다. 그래서 전입일, 실제 점유, 확정일자, 등기부의 근저당권 설정일을 한 줄에 나란히 놓고 봅니다. 확인서에 보증금 액수만 적혀 있다면 권리분석은 아직 시작도 못 한 셈입니다.
입찰 전에는 법원 경매 기록의 매각물건명세서와 현황조사보고서, 등기사항증명서를 대조합니다. 매각물건명세서에는 점유자와 보증금 등에 관한 관계인의 진술이 담기지만, 거기 적힌 진술만으로 실제 보증금 지급이나 순위가 자동으로 확정되지는 않습니다. 전입세대 확인 자료와 확정일자 부여 현황도 확인 가능한 범위에서 맞춰 봅니다. 자료마다 세대 수나 금액이 다르면 그 차이의 이유를 찾을 때까지 입찰가를 적지 않습니다.
배당요구를 했다는 표시도 보증금 전액 회수와 같은 뜻은 아닙니다. 선순위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 배당을 받고도 보증금 일부를 못 받으면, 그 미회수액이 매수인에게 남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전입이 빠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금액을 인수한다고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실제 점유와 권리의 존속, 배당 관계를 함께 봐야 합니다.
숫자를 넣어 보니 입찰가가 달라졌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가상의 다가구주택을 놓고 계산해 보겠습니다. 주변 거래를 살펴 예상 처분가격을 5억 원으로 잡았고, 입찰가는 3억 2천만 원을 생각했다고 합시다. 확인서에는 보증금 8천만 원인 임차인 한 명만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경매 기록에는 다른 호실 점유자가 보이고, 그 보증금과 권리 순위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 상태에서 ‘8천만 원만 감안하면 된다’고 계산하면 남는 돈은 종이 위 숫자일 뿐입니다.
추가 임차인의 보증금이 7천만 원이고 그중 매수인이 부담할 미회수액이 5천만 원으로 확인된다면 계산은 바로 달라집니다. 낙찰대금 3억 2천만 원에 그 5천만 원을 더한 3억 7천만 원이 사실상 취득 부담의 출발점입니다. 여기에 취득세, 법무 비용, 체납 관리비 중 승계 여부를 확인할 금액, 수리비, 명도에 드는 시간과 비용, 대출 이자를 얹어야 합니다. 예상 처분가격 5억 원과 단순히 뺄셈해서 1억 3천만 원이 남는다고 생각하면 위험합니다. 세금과 실제 매각비용까지 반영한 뒤에야 수익을 말할 수 있습니다.
경락잔금대출도 입찰가를 정하기 전에 확인할 문제입니다. 금융기관이 선순위 임차인의 보증금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대출 가능 금액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낙찰 뒤 예상보다 대출이 적게 나오면 잔금 계획 자체가 흔들립니다. 저는 물건 자료를 들고 금융기관에 사전 상담을 받되, 상담 당시의 예상 금액을 확정된 대출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빈칸 하나가 있으면 현장으로 다시 간다
서류끼리 맞아도 현장에 가면 다른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현황조사에는 폐문으로 적혀 있는데 우편함에는 이름이 있고, 확인서에는 공실로 적혀 있는데 사람이 사는 흔적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문 앞에서 들은 말만으로 임차인 지위나 보증금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현장에서 확인한 내용은 서류를 다시 대조해야 할 신호로 씁니다.
확인서의 작성일이 오래됐거나 호실 하나가 비어 있다면, 그 사이 계약이 바뀌었을 가능성도 생각합니다. 확인자에게서 최신 내역을 받을 수 있는지 살피고, 입찰 직전 공개된 경매 기록도 다시 확인합니다. 그래도 실제 보증금과 인수 가능액을 좁힐 수 없다면 저는 그 물건의 수익률을 계산할 수 없다고 봅니다. 열 번 넘게 입찰장을 다녀도 모르는 돈까지 떠안는 베팅은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선순위 보증금 확인서는 출발점으로 유용하지만, 제 입찰가를 지켜 주는 건 결국 서로 다른 자료가 같은 사실을 가리키는지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