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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인 수선의무를 낙찰 뒤에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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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인 수선의무를 낙찰 뒤에야 실감했다

몇 년 전 오래된 빌라에 입찰하려고 현장을 봤을 때, 세입자가 천장 모서리의 누수 자국부터 보여줬습니다. 저는 도배비 몇십만 원쯤 생각했죠. 그런데 관리사무소에 물으니 비가 올 때마다 물이 스며든다는 겁니다. 그제야 도배가 아니라 누수 원인과 임대차 관계부터 확인해야 할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매에서는 이런 하자가 낙찰가 계산을 바꾸고, 낙찰 뒤 임대인이 된다면 수리 책임까지 따라올 수 있습니다.

낙찰받았다고 모든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임대인 수선의무를 따지기 전에 먼저 봐야 할 게 있습니다. 그 임대차가 경매 뒤에도 살아남는지입니다. 대항력 있는 임차인의 임대차가 매수인에게 이어지는 경우, 낙찰자는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할 수 있습니다. 보증금 반환뿐 아니라 임대차계약에서 임대인이 부담하는 의무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경매로 소멸하는 임대차라면 같은 집에 세입자가 있더라도 법적 관계가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입찰 전 매각물건명세서만 읽고 끝내지 않습니다. 전입일과 점유 상태, 말소기준권리, 확정일자, 배당요구 여부를 맞춰 봅니다. 배당요구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임차인이 보증금을 전부 받고 나간다고 단정해도 곤란합니다. 배당 후 남는 보증금이 있는지까지 봐야 인수할 부담을 가늠할 수 있죠. 권리분석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세입자에게 ‘수리해 드리겠다’거나 ‘곧 비워 달라’고 말하는 것도 피합니다.

수선의무는 고장 이름보다 생활에 미치는 영향으로 본다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이 계약 기간 동안 임차인이 목적물을 사용하고 수익하는 데 필요한 상태를 유지할 의무를 둡니다. 그렇다고 집 안에서 고장 난 물건을 무조건 집주인이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파손 부위와 정도, 주거에 주는 지장, 수리 비용, 계약 당시 상태, 임차인의 사용상 과실을 함께 봐야 합니다.

가령 수도관에서 물이 새어 바닥이 젖고 아랫집까지 피해가 번진다면 급한 수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겨울에 난방이 되지 않는 보일러도 마찬가지로 주거에 큰 지장을 줍니다. 반면 임차인이 떨어뜨려 깨뜨린 세면대나 직접 망가뜨린 방문 손잡이라면 비용 부담을 다르게 따져야 합니다. 보일러라는 이름만 듣고 임대인 부담이라고 답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노후로 고장 났는지, 사용 중 과실이 있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계약서에 ‘수리비는 임차인 부담’이라고 적혀 있어도 그 한 줄만으로 모든 다툼이 끝나진 않습니다. 어떤 수리를 뜻하는지, 하자가 주거에 얼마나 큰 지장을 주는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입찰 전에 계약서를 볼 수 있다면 특약을 읽고, 볼 수 없다면 수선비 여유를 남겨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누수 자국 하나를 도배비로만 계산하면 위험하다

그 빌라에서 제 계산이 바뀐 지점도 여기였습니다. 천장 얼룩만 지우면 끝나는 일이 아니라면 원인 조사, 배관이나 방수 공사, 마감 복구, 아랫집 피해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비용이 어디까지 커질지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낮은 입찰가만 보고 수익을 잡으면 숫자가 쉽게 틀어집니다.

예를 들어 낙찰가 2억 원에 취득 관련 비용과 대출비용을 합쳐 1천만 원, 가벼운 도배비를 100만 원으로 잡았다고 해보죠. 그런데 현장 확인 뒤 누수 원인 조사와 수리, 아래층 복구에 800만 원이 든다면 예상 비용은 700만 원 늘어납니다. 여기에 공사 기간의 공실이나 임대료 조정 가능성까지 더하면 처음 계산한 수익과 차이가 커집니다. 이 숫자는 설명을 위한 예시지만, 경매에서 수선비를 지나치게 작게 잡는 실수는 현실적입니다.

현장에서는 얼룩의 크기보다 반복된 흔적을 봅니다. 새로 칠한 부분만 유독 깨끗한지, 창틀 주변 실리콘이 들떴는지, 비 온 뒤 냄새가 달라지는지 확인합니다. 관리사무소나 이웃에게 물어볼 수도 있지만, 들은 말만으로 누수 원인을 확정하진 않습니다. 원인을 모르면 견적도 확정할 수 없으니까요.

수리 요청을 받으면 기록부터 남긴다

낙찰 뒤 임대인 지위를 승계한 집에서 하자 연락이 오면 저는 사진과 발생 시점부터 받습니다. 언제부터, 어느 부위에서, 어떤 상황에 물이 새는지 확인하고 현장 점검 일정을 잡습니다. 임차인에게도 수리가 필요한 상태를 지체 없이 알릴 의무가 있습니다. 실제로 누수와 곰팡이가 있었어도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제때 알리지 않아 수선 기회를 주지 못한 점이 손해배상 판단에 영향을 준 사례가 있습니다.

급한 누수라면 피해가 번지지 않도록 먼저 조치하고, 원인과 수리 범위는 따로 확인합니다. 임차인이 먼저 수리비를 냈다면 영수증만 보고 바로 정산하기보다 왜 필요한 공사였는지, 임대인에게 언제 알렸는지, 지출액이 적정한지 살핍니다. 민법에는 임차인이 보존에 필요한 비용을 지출했을 때 상환을 청구할 수 있는 규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연락 내용, 점검 결과, 견적서, 수리 전후 사진을 남겨 두는 게 양쪽 모두에게 좋습니다.

제 입찰표에는 이제 수선비 칸을 따로 둡니다. 권리관계가 복잡한 집일수록 낙찰 뒤 누가 임대인이 되는지와 집이 실제로 살 만한 상태인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천장 얼룩 하나가 작은 비용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원인과 책임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작은 비용이라고 적지 않는 쪽이 제 돈을 지키는 방법이었습니다.

임대인 수선의무를 낙찰 뒤에야 실감했다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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