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로 싼 집 잡으려다 발길 돌린 날

몇 년 전 공매에 나온 아파트를 보러 갔다가 현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감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눈이 갔는데, 우편함에는 오래된 고지서가 쌓여 있고 집 안에서는 사람 기척이 났거든요. 그날 입찰은 접었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가격보다, 누가 살고 있고 그 사람의 보증금이 어떻게 처리되는지가 먼저였습니다.
공매는 온라인으로 입찰할 수 있어 시작이 쉬워 보입니다. 그런데 클릭이 쉬운 것과 물건이 쉬운 것은 별개입니다. 제가 초보에게 가장 먼저 묻는 것도 예상 수익률이 아닙니다. 이 물건을 사면 누구와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같은 공매 화면이어도 매각 조건은 다릅니다
온비드에서 본 물건이라고 모두 같은 절차로 팔리는 건 아닙니다. 세금 체납으로 나온 압류재산도 있고, 신탁재산이나 기관이 처분하는 재산도 있습니다. 매도 주체와 매각 조건이 다르면 계약 방식, 대금 납부 일정, 인수하는 부담도 달라집니다. 예전에 압류재산 물건을 보던 습관대로 다른 공고를 읽었다가 계약 조항에서 손을 멈춘 적이 있습니다. 익숙한 화면 때문에 공고문을 대충 읽기 쉬웠죠.
저는 물건을 열면 입찰가를 적기 전에 공고문부터 봅니다. 매각 대상이 건물 전체인지 지분인지, 토지는 함께 넘어오는지, 점유 관계에 관한 안내가 있는지 확인합니다. 현황대로 판다는 문구가 있으면 그 현황을 누가, 어디까지 확인했는지도 따져야 합니다. 사진 한 장으로 누수나 불법 증축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압류재산 공매라면 체납액 납부 등으로 절차가 중지되거나 취소될 가능성도 염두에 둡니다. 한국자산관리공사도 입찰 전 공부 열람과 현장 조사를 당부합니다. 저는 멀리 있는 물건일수록 공고를 읽은 뒤 현장을 갈 수 있는 일정부터 잡습니다. 그 일정이 안 나오면 가격이 좋아 보여도 다음 물건을 봅니다.
등기부에서 끝내면 임차인을 놓칩니다
권리분석은 등기사항증명서의 줄을 읽는 데서 시작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압류와 근저당의 날짜, 공매공고 내용, 건축물대장, 임대차 관계를 함께 놓고 봐야 합니다. 특히 주택 임차인은 점유와 주민등록을 갖춘 시점에 따라 매수인에게 대항할 수 있는지가 달라집니다. 확정일자와 배분요구 여부는 보증금을 공매대금에서 얼마나 돌려받을 수 있는지와 연결됩니다.
제가 현장에서 가장 경계하는 말이 “등기부 깨끗하네요”입니다. 등기부에 임차인 보증금이 그대로 적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전입세대 확인 자료와 공고에 제공된 임대차 자료를 대조하고, 실제 거주자가 있는지도 봅니다. 자료끼리 날짜나 이름이 맞지 않으면 추측으로 빈칸을 채우지 않습니다. 확인이 안 되는 보증금은 수익 계산에서 0원으로 취급할 돈이 아닙니다.
가령 2억 5천만 원에 살 수 있는 집에 보증금 8천만 원인 임차인이 있다고 합시다. 임차인의 대항력과 배분 결과에 따라 매수인이 부담할 금액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때 “낙찰받으면 다 없어지겠지”라고 가정하고 2억 5천만 원만 준비하면 위험합니다. 저는 배분을 받은 뒤 남을 보증금이 있는지, 그 금액을 매수인이 떠안을 수 있는지까지 확인되지 않으면 입찰가를 쓰지 않습니다. 권리 순위와 배분은 물건마다 달라서 날짜 몇 개만 보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빈집이 아니면 명도 비용도 숫자에 넣습니다
집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면 소유권을 얻는 일과 집을 넘겨받는 일은 다른 단계입니다. 한국자산관리공사도 압류재산 공매의 임차인 명도 책임은 매수자에게 있다고 안내합니다. 점유자와 협의가 되면 좋지만, 대화가 길어지거나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까지 계산해야 합니다. 이사비를 무조건 줘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선택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현장에서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관리사무소에서 확인 가능한 범위의 관리 상태를 묻고, 건물 외벽과 공용부를 봅니다. 점유자를 만나더라도 보증금이나 퇴거 날짜를 그 자리에서 단정하지 않습니다. 상대 말과 서류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실처럼 보여도 우편물, 계량기 사용 흔적, 출입 상태를 보고 한 번 더 확인합니다. 점유를 잘못 짚으면 수리 일정도, 임대 일정도 밀립니다.
- 공고문에 적힌 점유 관계와 현장 모습이 같은가
- 임차인의 전입·점유·확정일자와 배분요구 자료가 맞물리는가
- 관리비 체납, 수리 범위, 인도 지연을 감당할 현금이 있는가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답이 흐리면 저는 입찰가를 낮추는 것만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얼마짜리인지 알 수 없을 때는 싸게 사는 가격도 정할 수 없으니까요.
낙찰가 대신 남는 돈을 계산합니다
초보가 가장 많이 하는 계산은 시세에서 낙찰가를 빼는 것입니다. 제 계산표에는 취득 관련 세금과 등기 비용, 대출 이자, 수리비, 보유 기간의 관리비, 매도 비용이 먼저 들어갑니다. 매도 후 세금은 보유 기간과 개인 상황에 따라 달라 별도로 확인합니다. 경락잔금대출도 가능 금액과 실행 시점을 미리 확인하지 않으면 잔금일에 현금이 모자랄 수 있습니다. 대출은 낙찰받은 다음에 알아보는 자금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2억 5천만 원에 사서 2억 9천만 원에 판다고 가정하면 차액은 4천만 원입니다. 취득·등기 비용 1천만 원, 수리비 8백만 원, 이자와 보유비 3백만 원, 매도 비용 3백만 원을 빼면 1천6백만 원이 남습니다. 여기에는 매도 후 세금과 예상 밖의 명도 비용이 빠져 있습니다. 2억 9천만 원이 실거래 가능한 가격이 아니라 매물 호가라면 계산의 출발점부터 흔들립니다. 그래서 저는 비슷한 집의 최근 거래와 현재 매물을 따로 적고, 낮은 매도가격에서도 버틸 수 있는지 봅니다.
그날 현관 앞에서 돌아선 아파트도 숫자만 보면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보증금과 점유 문제를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공매에서는 입찰하지 않은 물건보다, 모르는 비용을 안고 낙찰받은 물건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