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계약서 한 줄 때문에 입찰가를 2천만 원 낮췄던 현장 후기

법원 기록보다 먼저 보는 종이 한 장
얼마 전 초보 투자자 한 분이 낙찰받기 직전 물건을 들고 와서 같이 봐달라고 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다. 감정가 3억 2천만 원, 최저가 2억 2천만 원대, 주변 실거래는 3억 전후. 그런데 임대차계약서 사본을 보는 순간 입찰가를 확 낮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매에서 임대차계약서는 그냥 세입자와 집주인이 월세, 전세 적어둔 종이가 아니다. 초보는 보증금 숫자만 보는데, 현장에서는 계약일, 전입일, 확정일자, 점유자 이름, 특약 문구, 임대인 표시까지 같이 본다. 이 중 하나만 어긋나도 낙찰자가 떠안는 돈이 생길 수 있다.
권리분석을 하다 보면 등기부등본은 비교적 차갑고 명확하다. 근저당권 설정일, 압류일, 가압류일이 줄 서 있다. 그런데 임대차계약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가족 명의로 계약했는데 실제 점유자는 다른 사람인 경우도 있고, 보증금은 1억이라고 적혀 있는데 배당요구서에는 8천만 원으로 들어온 경우도 있다. 이런 물건은 현장 확인 없이 숫자만 믿으면 위험하다.
제가 임대차계약서에서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들
입찰 전에 임대차계약서를 볼 수 있는 경우라면 저는 순서를 정해놓고 본다. 대단한 비법은 아니다. 다만 급하게 보면 놓치기 쉬운 것들이다.
- 계약서상 임차인 이름과 전입세대 열람상 이름이 같은지
- 계약일과 전입일, 확정일자가 말소기준권리보다 빠른지
- 보증금과 월세가 매각물건명세서 내용과 맞는지
- 계약한 호수와 실제 점유 호수가 일치하는지
- 특약에 대항력, 전세권, 선순위 권리 관련 문구가 있는지
예를 들어 말소기준권리가 2021년 5월 10일 근저당권이라고 해보자. 임차인이 2021년 4월 30일 전입했고 실제 점유도 하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배당으로 보증금을 다 못 받는 선순위 대항력 임차인일 가능성이 생긴다. 낙찰자는 그 부족분을 인수할 수 있다. 이건 수익률 계산이 아니라 손실 방어 문제다.
반대로 계약서는 2021년 4월로 되어 있는데 전입이 2021년 7월이면, 계약일만 보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대항력은 계약서 작성일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주택 인도와 주민등록이 핵심이다. 그래서 저는 계약서만 보지 않고 전입세대 열람, 주민센터 확인 가능 자료,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까지 같이 맞춰본다.
특약 한 줄이 생각보다 무섭다
초보 때는 임대차계약서 특약란을 대충 넘기기 쉽다. 저도 처음 몇 년은 보증금과 날짜만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현장에서 여러 번 당할 뻔하고 나니 특약란을 가장 천천히 읽게 됐다.
특약에 이런 식의 문구가 적혀 있는 경우가 있다. 기존 대출은 임대인이 책임진다, 임차인은 선순위 권리를 확인했다, 전세권 설정에 협조한다, 보증금 일부는 시설비로 대체한다. 문구 자체가 바로 낙찰자 책임을 만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분쟁 가능성을 알려주는 신호가 된다.
특히 다가구주택이나 상가주택은 더 조심해야 한다. 임대차계약서에 301호라고 적혀 있는데 건축물대장이나 현장 표기는 3층 좌측, 우측으로만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물건은 호수 착오가 생기기 쉽고, 소액임차인 최우선변제나 배당 순위 판단도 복잡해진다. 현장에 가서 우편함, 계량기, 출입문 표기까지 봐야 한다.
제가 예전에 본 빌라 물건은 계약서상 보증금이 7천만 원이었다. 그런데 현황조사서에는 임차인이 보증금 1억이라고 진술했다. 배당요구서에는 또 9천만 원이 적혀 있었다. 이런 경우 숫자 하나 찍어서 수익률 계산하면 안 된다. 최소한 가장 불리한 금액을 기준으로 보고, 그래도 입찰가가 맞는지 계산해야 한다.
입찰가 계산은 보증금 인수 가능성부터 빼고 본다
초보가 많이 하는 실수가 있다. 시세 3억, 최저가 2억 1천만 원이니 2억 4천만 원에 받으면 6천만 원 남는다고 계산한다. 그런데 선순위 임차인의 보증금 5천만 원을 인수해야 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바뀐다. 취득세, 법무비, 명도비, 수리비, 대출이자까지 넣으면 남는 게 없거나 손해가 된다.
저는 임대차계약서가 애매하면 입찰가 계산을 이렇게 한다. 예상 시세에서 보수적인 매도 비용을 빼고, 인수 가능성이 있는 보증금을 먼저 뺀다. 그다음 명도 비용과 수리비를 넉넉히 잡는다. 세금과 대출이자를 넣는다. 이렇게 계산했는데도 안전마진이 남을 때만 입찰한다.
실제 현장에서는 임차인이 계약서를 안 보여주기도 한다. 그럴 땐 법원 기록에 있는 자료만 보고 판단해야 한다. 이때는 더 보수적으로 가야 한다. 임차인이 배당요구를 했는지, 점유관계가 어떻게 조사됐는지, 전입일이 언제인지, 말소기준권리와 비교했을 때 인수 여지가 있는지 따져야 한다.
계약서가 깔끔해도 사람 문제는 남는다
임대차계약서상 후순위 임차인이고 배당으로 보증금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여도 명도가 쉬운 건 아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집을 비우는 일이 생활 문제다. 이사 날짜, 보증금 배당 시점, 이사비 요구, 새 집 계약까지 얽힌다. 서류상으로는 낙찰자가 이기는 구조여도 현장에서는 말이 꼬이면 시간이 길어진다.
그래서 저는 입찰 전부터 명도 비용을 0원으로 잡지 않는다. 최소 몇 백만 원은 비용으로 본다. 낙찰 후 통화할 때도 처음부터 세게 나가지 않는다. 계약서와 법적 지위는 차분히 확인하되, 상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들어야 일이 빨리 풀린다. 소송으로 가면 이겨도 시간이 비용이 된다.
임대차계약서는 경매 물건의 체온 같은 자료다. 등기부가 권리의 뼈대라면, 계약서는 실제 누가 살고 있고 돈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보여준다. 특히 초보라면 계약서 한 장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 모르는 문구가 나오거나 날짜가 헷갈리면 입찰가를 올릴 게 아니라 멈춰서 다시 봐야 한다. 경매는 좋은 물건을 잡는 게임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는 피해야 할 물건을 걸러내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