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매매 물건 직접 따라가봤더니, 숫자보다 먼저 봐야 할 게 있더군요

법원 경매장보다 빌딩매매 현장이 더 조용히 무섭습니다
얼마 전 후배가 38억짜리 꼬마빌딩을 보고 왔다며 제게 임대차표를 들고 왔습니다. 위치는 나쁘지 않았고, 역에서 걸어서 7분. 중개사 말로는 월세가 1,850만 원이라 수익률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일 먼저 본 건 수익률이 아니라 엘리베이터 점검표와 임차인 계약 만기였습니다.
경매는 권리관계가 서류에 꽤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말소기준권리, 배당요구, 점유자, 대항력. 물론 어렵지만, 적어도 어디를 찔러봐야 하는지 보입니다. 반면 일반 빌딩매매는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물건일수록 조용히 숨어 있는 비용이 많습니다. 매도자는 좋은 숫자만 보여주고 싶고, 중개사는 거래가 돼야 수수료가 나옵니다. 매수자만 차분해야 합니다.
빌딩매매에서 초보가 가장 많이 빠지는 착각은 “월세가 많이 나오니 안전하다”는 생각입니다. 월세 1,850만 원이 실제로 매달 통장에 꽂히는 돈인지, 관리비에 어떤 항목이 섞였는지, 렌트프리 기간이 끝난 뒤에도 같은 금액이 유지되는지 따져야 합니다. 숫자는 예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현장은 예쁘게 숨기기 어렵습니다.
수익률 표만 믿으면 잔금 치른 뒤부터 돈이 샙니다
후배가 가져온 자료에는 연 임대수입 2억2,200만 원, 매매가 38억 원, 단순 수익률 5.84%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보기에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빼야 할 게 많았습니다. 공실 1개 층, 승강기 부품 교체 예상비, 옥상 방수,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가능성, 대출이자, 중개보수, 취득세까지 넣으니 체감 수익률은 3%대 중반으로 내려갔습니다.
빌딩매매에서는 매매가보다 보유비용을 먼저 잡아야 합니다. 특히 20억에서 50억 사이 꼬마빌딩은 겉으로는 투자자에게 만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번 크게 고장 나면 몇천만 원이 바로 나갑니다. 주택처럼 보일러 하나 갈고 끝나는 구조가 아닙니다. 전기 증설, 소방 보완, 외벽 누수, 주차장 민원, 간판 정비까지 건물 전체가 비용 덩어리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꼭 따지는 숫자
- 현재 월세와 실제 입금액이 일치하는지
- 보증금이 과하게 높아 매매가를 떠받치는 구조는 아닌지
- 최근 2년간 공실 기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 대출금리 1% 상승 시 월 현금흐름이 버티는지
- 준공연도 대비 수선비가 어느 정도 필요한지
예를 들어 매매가 40억, 대출 24억, 금리 5%라면 연 이자만 1억2,000만 원입니다. 월로 나누면 1,000만 원입니다. 월세가 1,700만 원 들어와도 세금과 수선비, 관리 공백까지 빼면 손에 남는 돈은 생각보다 작습니다. 여기서 한 층이 6개월 비면 심리적으로도 꽤 흔들립니다.
임차인 좋은 건물인지, 임차인이 버티는 건물인지 봐야 합니다
빌딩매매 현장에서 임차인 구성을 볼 때 저는 업종을 먼저 봅니다. 병원, 약국, 학원, 사무실, 음식점, 무인점포. 업종마다 민원과 시설 부담이 다릅니다. 음식점이 들어온 건물은 월세가 높아 보일 수 있지만 배기, 냄새, 기름때, 원상복구 문제가 따라옵니다. 학원은 안정적일 수 있지만 주변 학령인구가 줄면 공실 리스크가 커집니다.
계약서도 대충 보면 안 됩니다. 계약갱신요구권, 특약, 원상복구 범위, 관리비 항목, 부가세 별도 여부, 렌트프리 약속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제가 예전에 본 물건 중에는 매도인이 “월세 900만 원짜리 우량 임차인”이라고 강조한 곳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약서를 보니 6개월 뒤 만기였고, 임차인은 이미 이전할 사무실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 월세는 매수자에게 남는 수익이 아니라 매도자가 가격을 높이기 위해 보여준 과거 숫자에 가까웠습니다.
건물주는 임차인을 뽑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초보 매수자는 이미 들어온 임차인을 영원한 자산처럼 봅니다. 사실 임차인은 언제든 나갈 수 있고, 나간 뒤 그 공간을 다시 채우는 능력이 진짜 실력입니다. 주변 임대 시세, 유사 면적 공실, 권리금 분위기, 유동인구 흐름을 발로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등기부보다 건축물대장이 더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경매를 오래 하다 보니 등기부 보는 습관은 몸에 배었습니다. 그런데 일반 빌딩매매에서는 등기부만 깨끗하다고 안심하면 안 됩니다. 위반건축물 표시, 용도 불일치, 불법 증축, 주차장 훼손, 근린생활시설을 사실상 주거로 쓰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이런 건 잔금 치른 뒤 구청 민원으로 터지면 매수자가 떠안습니다.
특히 지하층, 옥탑, 후면 증축 부분은 직접 봐야 합니다. 도면과 현장이 다른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건축물대장상 용도는 사무소인데 실제로는 숙박처럼 쓰고 있다든지, 주차장으로 잡힌 공간에 창고를 만들어 임대 중인 경우도 있습니다. 월세 몇십만 원 더 받으려다가 향후 이행강제금이나 원상복구 비용으로 크게 물릴 수 있습니다.
저는 현장에 가면 건물 안만 보지 않습니다. 바로 옆 건물의 업종, 골목 폭, 쓰레기 배출 위치, 배달 오토바이 동선, 저녁 시간대 조도까지 봅니다. 낮에는 멀쩡한 상권처럼 보였는데 밤에 가면 사람이 뚝 끊기는 길도 있습니다. 빌딩은 입지가 전부라는 말이 맞긴 한데, 그 입지는 지도 앱 캡처 한 장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빌딩매매 계약 전에 제가 잡는 안전선
제가 초보에게 권하는 방식은 욕심나는 물건일수록 가격을 깎기보다 조건을 촘촘히 넣는 겁니다. 매도인이 제공한 임대차 내역이 사실과 다르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조항, 위반건축물이나 미고지 하자가 발견될 때 책임 범위, 잔금 전 임차인 변동 통지 의무 같은 내용입니다. 말로 들은 내용은 거래가 꼬이면 힘이 약합니다. 계약서에 들어간 문장만 오래 버팁니다.
대출도 미리 보수적으로 잡아야 합니다. 경락잔금대출과 일반 빌딩 담보대출은 심사 포인트가 다릅니다. 임대수익, 감정가, 차주 소득, 기존 부채, 지역과 건물 상태에 따라 한도가 달라집니다. 중개사가 “대출 70%는 나올 겁니다”라고 말해도 은행 지점 두세 곳에서 실제 조건을 받아봐야 합니다. 잔금일 직전에 한도가 줄면 계약금이 위험해집니다.
- 임대차계약서 원본 또는 사본 전체 확인
- 건축물대장, 토지이용계획, 등기부를 서로 대조
- 전기, 소방, 승강기, 누수 관련 최근 점검자료 확인
- 공실 발생 시 6개월 버틸 현금 확보
- 세무사에게 취득세와 보유세 시뮬레이션 요청
빌딩매매는 돈이 큰 만큼 실수도 크게 납니다. 수익률 0.5% 더 먹겠다고 애매한 물건을 잡는 순간, 몇 년 동안 건물에 끌려다닐 수 있습니다. 저는 좋은 건물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건물을 먼저 봅니다. 10년 넘게 현장을 다녀보니, 오래 살아남는 투자자는 대박 물건을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큰 사고를 피하는 사람에 더 가깝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