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매매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발 뺀 이야기, 숫자는 멀쩡한데 현장은 아니었습니다

현장에서 먼저 걸린 건 수익률이 아니라 냄새였습니다
얼마 전 후배가 건물매매 물건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역에서 걸어서 9분, 대지 58평, 연면적 162평짜리 4층 근린생활시설이었죠. 매도가는 18억 7천만 원. 자료상 임대료는 월 1,020만 원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단순 계산하면 연 임대수익 1억 2,240만 원, 표면 수익률은 약 6.5%입니다. 요즘 같은 시장에서 숫자만 보면 나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근데 저는 건물매매에서 제일 먼저 보는 게 엑셀 숫자가 아닙니다. 건물 앞에 서 봤을 때 사람 흐름이 있는지, 1층 점포가 살아 있는지, 계단에 물 냄새가 나는지, 공용부 전등이 제대로 켜지는지부터 봅니다. 이 물건은 첫인상이 묘했습니다. 1층 카페는 영업 중이었지만 점심시간에도 손님이 거의 없었고, 지하 계단 쪽에서 습한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옥상 방수도 오래된 흔적이 보였고요.
중개사무소 자료에는 ‘관리 양호’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현장에서는 그런 말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관리가 양호한 건물은 보통 계단 모서리, 배전함, 옥상 배수구, 화장실 환풍구에서 티가 납니다. 반대로 문제가 있는 건물은 임대차 계약서보다 벽지 얼룩이 먼저 말을 합니다.
건물매매는 매매가보다 임대차가 더 무섭습니다
건물매매 초보가 많이 놓치는 부분이 임대차입니다. 아파트 매매는 등기부와 대출, 실거래가 중심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지만, 수익형 건물은 임차인이 곧 가격입니다. 누가 얼마에 들어와 있는지, 계약기간이 언제 끝나는지, 보증금 반환 부담이 얼마나 되는지가 매수자의 현금흐름을 바로 흔듭니다.
이 건물은 1층 카페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380만 원, 2층 학원 보증금 5천만 원에 월세 260만 원, 3층 사무실 보증금 3천만 원에 월세 180만 원, 4층은 공실인데 자료에는 ‘예상 임대료 200만 원’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여기서 이미 숫자가 달라집니다. 실제 월세는 820만 원이고, 4층 예상 임대료까지 넣어야 1,020만 원입니다. 공실 예상치까지 수익률에 넣으면 건물이 갑자기 좋아 보입니다.
저는 임대차 확인할 때 최소한 아래 항목은 따로 적어둡니다.
- 실제 받고 있는 월세와 미납 여부
- 부가세 별도인지 포함인지
- 관리비를 누가 부담하는지
- 보증금 반환 시점과 총액
- 임차인의 업종 변경 가능성
- 계약갱신 요구권 행사 여부
특히 상가건물은 임차인의 권리관계가 생각보다 끈질깁니다. 임대인이 바뀌어도 기존 임대차를 그대로 떠안는 일이 많고, 명도나 조건 변경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매수 후에 ‘월세 좀 올리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가 임차인과 1년 넘게 줄다리기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건물매매는 낙관으로 사면 안 됩니다.
등기부는 깨끗했지만, 돈 들어갈 곳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 물건의 등기부는 겉으로는 깔끔했습니다. 근저당 하나 있고, 매매 잔금 때 말소 조건. 가압류나 가처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권리분석이 등기부에서 끝나는 건 아닙니다. 건물대장, 토지이용계획, 위반건축물 여부, 주차장 설치 현황, 승강기 검사, 소방시설 점검까지 봐야 합니다.
확인해보니 지하 일부가 창고로 표시돼 있는데 실제로는 임차인이 작업실처럼 쓰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환기와 전기 배선이었습니다. 오래된 멀티탭과 임시 배선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고, 누전 차단기도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기 공사는 작은 돈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4층 공실은 천장 누수 흔적이 있었고, 옥상 방수는 최소 1,500만 원 이상 잡아야 할 상태였습니다.
제가 대략 잡은 초기 보수비는 이랬습니다.
- 옥상 방수 및 배수 보완: 1,500만 원에서 2,500만 원
- 공용부 도장과 조명 교체: 700만 원 전후
- 전기 안전 보수: 800만 원 이상
- 4층 임대 맞춤 공사: 최소 2,000만 원
- 예비비: 1,000만 원
매도가는 18억 7천만 원이지만, 취득세와 중개보수, 법무비, 대출비용, 보수비까지 넣으면 실제 투입 기준은 20억에 가까워집니다. 여기서 월세 820만 원으로 다시 계산하면 표면 수익률은 크게 내려갑니다. 공실이 6개월만 길어져도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대출이 나온다고 좋은 물건은 아닙니다
건물매매 상담하다 보면 “대출이 얼마나 나오나요?”를 제일 먼저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연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대출 가능액이 투자 판단의 중심이 되면 위험합니다. 은행이 돈을 빌려준다는 것과 내가 버틸 수 있다는 건 다른 얘기입니다.
이 물건은 감정과 임대수익 기준으로 대출이 11억 원 안팎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금리를 연 5%로만 잡아도 1년 이자가 5,500만 원입니다. 월로 나누면 약 458만 원이죠. 실제 월세 820만 원에서 이자를 빼면 362만 원이 남습니다. 여기서 건물 관리비, 공실 리스크, 수선비 적립, 세금, 회계 비용을 빼면 손에 남는 돈은 생각보다 얇습니다.
문제는 금리가 조금만 오르거나 임차인 하나가 빠졌을 때입니다. 2층 학원이 빠지면 월세 260만 원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이자 내고 남는 돈이 거의 없어집니다. 이 상태에서 옥상 누수 민원이 터지면 매수자는 임대인이 아니라 수리비 결제 담당자가 됩니다. 제가 초보에게 건물매매를 권할 때 늘 말하는 게 있습니다. 대출 승인보다 공실 1년을 버틸 현금이 있는지가 먼저입니다.
제가 결국 안 산 이유
이 물건을 포기한 이유는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표면 수익률은 괜찮아 보였지만 실제 임대료와 예상 임대료가 섞여 있었고, 4층 공실을 채우려면 추가 공사가 필요했습니다. 옥상과 전기 상태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무엇보다 주변 상권의 힘이 약했습니다. 근처에 새로 들어온 대형 상가가 있었고, 기존 골목 상권은 점점 조용해지는 분위기였습니다.
건물매매는 싸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중에 팔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내가 살 때 애매했던 물건은 팔 때도 애매합니다. 임대료가 조금 높다고 무리해서 들어갔다가 3년 뒤 매도하려는데 매수자가 똑같은 문제를 지적하면 그때는 협상력이 없습니다.
제가 후배에게 말한 건 단순했습니다. 이 물건은 고수익 물건이 아니라 손이 많이 가는 운영형 물건이라고요. 직접 임차인 관리하고, 보수 공사 챙기고, 공실 기간 버틸 자신이 있으면 검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 다니면서 월세만 받겠다는 생각이면 맞지 않습니다.
건물은 서류 위에서는 조용합니다. 현장에 가면 갑자기 말이 많아집니다. 벽의 얼룩, 비어 있는 우편함, 낡은 차단기, 낮에도 어두운 계단, 임차인의 표정 같은 것들이 전부 가격에 들어갑니다. 저는 아직도 건물매매를 볼 때 설레는 마음보다 의심이 먼저 올라옵니다. 그 의심 덕분에 안 잃은 돈이, 번 돈만큼 많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