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매매 장부를 들여다봤더니 가격이 달라졌다

얼마 전 헬스장매매 물건을 보러 갔는데, 대표가 가장 먼저 보여준 건 새 러닝머신 사진이었다. 제가 먼저 달라고 한 건 임대차계약서와 회원권 장부였다. 경매 물건도 겉모습에 끌려 권리관계를 뒤로 미루면 비싸게 배운다. 헬스장도 비슷하다. 기구가 번쩍이고 회원이 많아 보여도, 인수한 다음 달부터 감당할 돈을 모르면 매매가격은 판단할 수 없다.
권리금 이야기 전에 임대인부터 만났다
현장에서 들은 조건은 보증금 5천만 원, 권리금 7천만 원이었다. 그런데 기존 월세 500만 원이 새 임차인에게도 적용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임대인이 새 계약에 월세 650만 원을 요구하면 차이는 매달 150만 원, 1년이면 1,800만 원이다. 권리금 7천만 원을 깎는 협상보다 임대차 조건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기존 임차인의 계약기간이 남았다고 해서 양수인이 그 조건을 그대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임대인과 새 임대차계약의 보증금, 월세, 기간, 원상회복 범위를 직접 확인한다. 간판을 유지할 수 있는지, 샤워실과 배수 설비에 임대인의 승낙이 있었는지도 묻는다. 헬스장은 철거비가 크게 나올 수 있어 원상회복 문구 한 줄이 나중에 수천만 원의 차이를 만든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호하는 규정이 있어도, 그 규정이 새 임차인과 임대인의 계약 체결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저는 임대차 조건이 확인되기 전에는 권리금 계약금을 서둘러 보내지 않는다. 매도인과 합의한 금액이 아무리 좋아도 그 자리에서 영업할 수 없다면 거래 자체가 흔들린다.
월매출 3천만 원이라는 말의 속뜻
매도인이 월매출 3천만 원이라고 하면 먼저 그 돈이 언제 들어왔는지 본다. 헬스장은 6개월권과 1년권을 한꺼번에 팔기 쉽다. 이번 달 카드 매출에 잡힌 돈 중 상당 부분이 앞으로 제공해야 할 이용 기간의 대가일 수 있다. 통장 입금액만 보고 매달 3천만 원씩 새로 벌린다고 계산하면 첫 달부터 자금이 꼬인다.
예를 들어 현재 회원 300명의 남은 이용 기간이 평균 4개월이고, 월 이용료를 6만 원 수준으로 환산하면 앞으로 제공할 서비스가 7,200만 원어치다. 이것을 곧바로 매매대금에서 전액 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인수 뒤 회원이 운동하는 동안 전기료, 임차료, 인건비는 새 주인이 낸다. 미사용 기간과 환불 가능 금액을 회원별로 확인하고, 매매가격과 운영자금에 반영해야 한다.
저라면 최근 12개월의 카드 매출, 계좌 입금, 현금영수증 자료를 월별로 맞춰 본다. 회원관리 프로그램에서는 활성 회원 수뿐 아니라 만료일, 휴회, 환불 요청, 개인운동 수업의 미사용 횟수를 확인한다. 개인정보가 들어 있으니 매도인과 적법한 열람 범위를 정해 필요한 수치부터 검증한다. 장부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회원은 충분하다’고만 말하면 그 매물은 일단 멈춘다.
기구는 구매가가 아니라 지금의 상태로 봤다
러닝머신을 대당 1천만 원에 샀다는 말은 현재 가치와 다르다. 연식, 사용 시간, 고장 이력, 부품 수급, 이전 설치비를 확인해야 한다. 특히 리스나 할부로 들인 장비는 매도인이 돈을 모두 냈는지부터 확인한다. 소유하지 않은 기구까지 권리금에 넣어 계산하면 인수 후에도 대금을 계속 내야 할 수 있다.
저는 기구 목록에 제조사와 모델, 제조 연도, 일련번호, 소유 형태를 적고 현장에서 하나씩 대조한다. 에어컨, 환기, 온수기, 배수도 같이 본다. 러닝머신 한 대 수리비보다 샤워실 누수와 공조 공사가 더 아픈 경우가 있다. 매도인이 제시한 시설비는 영수증으로 확인하되, 가격 협상에서는 지금 정상 작동하는 장비를 중고로 다시 마련할 때의 비용을 기준으로 삼는다.
경매에서 건물을 낙찰받는 일과 그 안의 헬스장 영업을 넘겨받는 일도 구분해야 한다.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은 영업 양도나 일정한 경매 절차에서 체육시설업의 권리·의무 승계를 규정한다. 어떤 시설을 실제로 인수하는지, 회원 약정과 신고 사항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물건마다 다르다. 건물 등기만 보고 회원 부담이 없다고 단정할 일이 아니다.
잔금 날짜보다 인수 조건을 촘촘히 적었다
가격이 맞아도 계약서가 느슨하면 뒤탈이 난다. 저는 임대인과의 새 계약 체결, 체력단련장업 신고 사항 확인, 장비 소유와 작동 상태, 회원권·개인운동 수업 잔여분을 인수 조건에 적는다. 미납 임금, 관리비, 리스료, 환불 청구가 발견되면 누가 부담할지도 금액과 확인 기준을 붙인다. 관할 시군구에는 신고 변경에 필요한 절차와 현재 영업장의 행정처분 이력도 확인한다. 체육시설법에는 일정한 행정제재 처분 효과의 승계 규정이 있어 이 부분을 넘길 수 없다.
숫자를 다시 적어 보면 판단이 빨라진다. 월매출이 3천만 원이어도 월세 650만 원, 인건비 900만 원, 관리비·전기료 250만 원, 광고·수수료·소모품 300만 원, 수리 적립금 100만 원이면 800만 원이 남는다. 여기에 사장 본인의 노동 대가와 세금, 환불 변동은 아직 들어가지 않았다. 매출이 두 달만 흔들려도 권리금 회수 기간은 길어진다.
헬스장매매는 기구를 사는 거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임대차 조건과 앞으로 지켜야 할 회원 약속을 함께 떠안는 거래에 가깝다. 제가 현장에서 가격을 늦게 묻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좋은 물건은 설명이 화려한 물건이 아니라, 장부를 펼쳤을 때 남는 돈과 책임의 범위가 또렷한 물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