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반환 소송 셀프 해보니 날짜가 먼저였다

경매 현장에서 보증금을 못 받은 임차인을 만나면 저는 소장부터 묻지 않습니다. 계약이 언제 끝났는지, 집주인에게 그 사실을 언제 알렸는지부터 묻습니다. 보증금 반환 소송 셀프를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류를 잘 써도 반환받을 날이 아직 오지 않았거나 그 날짜를 입증하지 못하면 처음부터 일이 꼬입니다.
가령 보증금 2억 원짜리 전셋집에서 계약 만료일이 6월 30일이라고 해봅시다. 임차인은 6월 초에 “나갈게요”라고 말했고, 집주인은 “새 세입자가 구해지면 줄게요”라고 답했습니다. 이때 계약이 예정대로 끝나는지, 이미 묵시적으로 갱신된 상태인지, 그 대화가 상대방에게 언제 도달했는지에 따라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시점이 달라집니다. 새 세입자를 구해야만 보증금을 준다는 말에 끌려가기 전에 날짜부터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계약이 끝났다는 증거부터 만든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이 계약 만료 2개월 전까지 갱신하지 않겠다는 뜻을 통지하지 않으면 묵시적 갱신이 문제 될 수 있습니다. 묵시적으로 갱신된 뒤에는 임차인이 언제든 해지를 통지할 수 있지만, 그 효력은 임대인이 통지를 받은 날부터 3개월이 지나야 생깁니다. 계약서에 적힌 만료일만 보고 곧바로 소장을 내기 전에 이 부분을 먼저 따져야 합니다.
저라면 계약서, 보증금 송금 내역, 갱신이나 해지에 관한 문자와 대화 기록을 날짜순으로 놓습니다. 통화만 했다면 뒤이어 문자로 “방금 통화한 대로 계약을 종료하고 보증금 반환을 요청합니다”라고 남겨두는 편이 낫습니다. 내용증명도 쓸 수 있지만, 보냈다는 사실과 상대방에게 도달했다는 사실을 구분해야 합니다. 반송됐다면 주소와 송달 경위를 다시 확인해야 하고요.
중간에 집주인이 바뀌었다면 등기사항증명서도 새로 떼어봅니다. 계약서에 적힌 사람과 현재 소유자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상대로 청구할지는 소유권 이전 시점과 임차인의 대항력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대목이 복잡하면 소장 제출 전에 법률 상담을 받는 비용이 오히려 싸게 먹힐 수 있습니다.
이사 날짜가 잡혔다면 임차권등기를 먼저 확인한다
제가 경매 물건을 볼 때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보증금이 급해 먼저 이사하고 전입까지 옮긴 임차인입니다. 주택의 점유와 주민등록은 대항력과 연결됩니다. 기존에 갖고 있던 권리를 지키려면 이사 순서를 가볍게 잡아서는 안 됩니다.
임대차가 끝났는데 보증금을 받지 못했다면 주택 소재지 관할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청했다’와 ‘등기됐다’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기존에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을 갖춘 임차인이 그 권리를 유지한 채 옮기려면, 등기사항증명서에서 임차권등기가 실제로 마쳐진 것을 확인하고 이사와 전출 일정을 잡는 게 안전합니다. 등기 전에 점유를 잃으면 나중에 등기가 되더라도 잃었던 순위가 소급해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임차권등기명령은 보증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아닙니다. 이사와 소송 사이에서 권리를 보전하는 절차에 가깝습니다. 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했다면 보증기관의 청구 요건과 필요한 서류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소송이 항상 첫 수단인 것은 아닙니다.
소장은 금액보다 경위를 분명하게 쓴다
소장을 셀프로 낸다면 청구할 돈만 적지 말고 흐름을 짧고 정확하게 써야 합니다. 언제 누구와 어떤 집을 얼마에 계약했는지, 보증금을 어떻게 지급했는지, 계약이 왜 언제 끝났는지, 반환을 요구했는데 얼마를 받지 못했는지가 뼈대입니다. 일부를 돌려받았다면 원래 보증금과 미반환 잔액을 구분합니다. 대법원 전자소송에서 소장을 제출할 때 계약서와 송금 내역, 해지 통지 자료, 등기사항증명서 등을 증거로 붙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2억 원 중 3천만 원을 받았다면 남은 청구액은 1억 7천만 원입니다. 여기에 이사비, 대출이자, 위자료를 화가 난 김에 모두 더하면 입증할 항목만 늘어납니다. 추가 손해나 지연손해금을 청구하려면 각각의 근거와 발생 시점을 따로 따져야 합니다. 집을 아직 점유하고 있다면 보증금 반환과 주택 인도의 동시이행 문제도 있습니다. 지연손해금이 계약 만료 다음 날부터 무조건 붙는다고 계산하면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집주인이 채무와 금액을 인정하고 송달받을 주소도 확실하다면 지급명령을 검토할 만합니다. 다만 상대방이 송달받은 뒤 2주 안에 이의하면 통상의 소송절차로 넘어갑니다. 이미 보증금 액수나 계약 종료를 다투고 있다면 지급명령 한 번으로 끝날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전자소송 화면에서 사건 종류를 고르기 전에 상대방의 태도와 주소부터 살피는 이유입니다.
판결 뒤에 받을 수 있는 돈도 계산한다
셀프 소송의 비용은 인지대와 송달료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서류를 보완하라는 명령에 대응할 시간, 판결 뒤에도 지급하지 않을 때 필요한 집행 비용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판결을 받았다고 계좌에 돈이 자동으로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임대인의 예금이나 부동산 등 집행할 재산이 있는지, 해당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선순위 권리와 예상 배당액이 얼마인지도 봐야 합니다.
경매 투자자로서 등기부를 열면 저는 시세보다 선순위 권리와 실제 회수 가능액을 먼저 봅니다. 임차인 입장에서도 같습니다. 2억 원을 이길 수 있는지와 2억 원을 받을 수 있는지는 다른 계산입니다. 이미 압류가 쌓였거나 집값보다 담보채무가 크다면 소송 서식만 붙들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권리 순위, 보증 여부, 상대방 재산을 함께 확인하면서 움직여야 합니다.
보증금 반환 소송 셀프는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절차입니다. 다만 제가 현장에서 본 손실은 어려운 법률 문장보다 통지 날짜 하나, 등기 전에 잡은 이사 날짜 하루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장을 쓰기 전 달력과 등기사항증명서를 펼쳐놓는 습관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