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임대차보호법 믿고 입찰했다가 멈춘 날

입찰표를 쓰다가 펜을 내려놓은 적이 있습니다. 감정가보다 꽤 싸 보이는 빌라였는데, 매각물건명세서에 적힌 임차인의 전입일이 첫 근저당권 설정일보다 빨랐습니다. 옆자리에서는 “배당받으면 나가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배당으로 보증금을 전부 돌려받을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경매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읽는 이유는 임차인의 권리를 외우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낙찰받은 사람이 떠안을 돈이 있는지 계산하기 위해서입니다.
전입일만 보고 선순위라 부르면 위험하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이 주택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을 마치면 그 다음 날부터 제삼자에게 임대차를 주장할 수 있는 대항력이 생깁니다. 계약서에 적힌 입주 예정일과 실제 집을 넘겨받은 날이 다를 수 있고, 전입신고를 했다고 실제 점유까지 확인된 것도 아닙니다. 저는 서류에 나온 날짜 옆에 ‘인도 확인 필요’라고 따로 적습니다.
예를 들어 3월 4일 집을 인도받고 같은 날 전입신고를 마쳤다면 대항력은 원칙적으로 3월 5일부터 생깁니다. 3월 4일 설정된 근저당권과 비교할 때 전입신고 날짜만 같다고 임차인을 앞세우면 안 됩니다. 반대로 임차인의 대항력이 근저당권보다 먼저 생겼다면, 그 근저당권이 실행된 경매에서 낙찰자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할 가능성을 따져야 합니다. 등기사항증명서의 권리 설정일, 임차인의 인도일과 전입일을 한 줄에 놓고 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주소도 걸립니다. 다가구주택인지 구분등기된 다세대주택인지, 임차인이 실제 점유한 공간은 어디인지에 따라 확인할 내용이 달라집니다. 현황조사보고서에 사람이 없었다는 기재 하나로 빈집이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방문 때 만나지 못한 것과 점유하지 않는 것은 다른 이야기니까요.
확정일자는 보증금을 받는 순서와 연결된다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주택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을 마친 임차인이 계약서에 확정일자까지 갖추면, 경매나 공매의 매각대금에서 후순위 권리자보다 우선해 보증금을 변제받을 수 있습니다. 확정일자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앞선 근저당권보다 배당순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날짜를 각각 비교해야 합니다.
입찰자가 더 조심할 장면은 선순위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 배당요구를 한 경우입니다. 배당요구를 했으니 보증금 부담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 배당액이 보증금에 못 미치면 남은 금액에 관해 낙찰자가 부담을 질 수 있습니다. 배당요구종기 안에 요구했는지, 임차인의 보증금과 예상 배당액이 얼마인지 함께 봐야 합니다. 배당표가 나오기 전의 예상액은 어디까지나 추정치입니다.
숫자로 보면 체감이 빠릅니다. 낙찰가를 1억 8천만 원으로 잡고, 선순위 대항력 있는 임차인의 보증금이 8천만 원이라고 가정해보죠. 그 임차인이 3천만 원만 배당받는다면 남는 보증금은 5천만 원입니다. 낙찰자가 그 잔액을 부담하는 상황이라면 취득에 드는 돈은 벌써 2억 3천만 원입니다. 취득세, 잔금대출 이자, 수리비와 명도에 드는 비용은 아직 더하지도 않았습니다. 1억 8천만 원짜리 물건이라고 계산했다면 시작부터 5천만 원이 빗나간 셈입니다.
소액임차인이라는 말에도 조건이 붙는다
소액임차인의 최우선변제는 보증금 전액을 무조건 먼저 돌려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일정 요건을 갖춘 임차인에게 보증금 중 일정액을 다른 담보물권자보다 먼저 변제받을 권리를 줍니다. 임차인은 경매신청의 등기 전에 주택 인도와 주민등록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보호받는 임차인의 보증금 범위와 최우선변제액은 지역 등에 따라 달라지고, 주택가액의 절반이라는 한도도 적용됩니다.
여기서 현재 표에 적힌 금액만 보고 계산하면 위험합니다. 앞선 담보권이 설정된 시기에 따라 적용할 기준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근저당권이 있는 물건이라면 그 권리의 설정일과 당시 적용되는 시행령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보증금이 작으니 전액 배당되겠지’라는 기대는 입찰가를 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또 소액임차인의 배당 가능성과 낙찰자에 대한 대항력은 따로 판단해야 합니다. 임차인이 최우선변제 대상인지, 배당을 얼마나 받을지, 배당 후 남는 보증금을 낙찰자에게 주장할 수 있는지는 서로 다른 질문입니다. 임차인 한 명을 두고도 답이 셋으로 갈릴 수 있습니다.
입찰 전에는 종이 세 장을 겹쳐 본다
저는 등기사항증명서, 현황조사보고서, 매각물건명세서를 나란히 놓습니다. 등기사항증명서에서 근저당권과 압류 등 권리의 날짜를 잡고, 현황조사보고서에서 점유자 진술과 전입 내용을 확인합니다. 매각물건명세서에서는 임차인의 보증금, 확정일자, 배당요구 여부와 매각으로 없어지지 않는 권리에 관한 기재를 읽습니다. 어느 한 장도 다른 두 장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서류끼리 날짜나 보증금이 다르면 그 차이를 지운 뒤 입찰하지 않습니다. 임차인이 계약서를 새로 썼는지, 보증금이 증액됐는지, 전출과 재전입이 있었는지에 따라 권리관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점유와 주민등록이 중간에 끊긴 흔적, 임차권등기 시점은 놓치기 쉽습니다. 대법원은 대항력을 잃은 뒤 임차권등기가 마쳐져도 이전 대항력이 소급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등기부에 임차권등기가 보인다는 사실만으로 처음 전입한 날의 순위가 유지된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서류만으로 금액이나 점유관계가 풀리지 않으면 현장을 다시 가거나 사건기록을 더 확인합니다. 그래도 잔여 보증금의 부담을 계산할 수 없다면 저는 입찰가를 낮추는 정도로 해결하지 않습니다. 빈칸이 큰 물건은 그냥 보냅니다. 경매장에서는 한 번 놓친 물건보다, 모르고 떠안은 보증금을 되돌리는 일이 훨씬 어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