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임대차보호법 확인하고 입찰가를 다시 쓴 날

몇 년 전 상가 경매 물건을 보다가 입찰가를 한 번 지운 적이 있습니다. 현장에는 음식점이 영업 중이었고, 매각물건명세서에는 임차인 보증금 1억 5천만 원이 적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낙찰가에서 배당될 돈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사업자등록 신청일을 근저당권 설정일과 나란히 놓고 보니 계산이 달라졌습니다. 배당으로 보증금이 다 갚히지 않으면 낙찰자가 남은 금액을 부담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을 보호하는 법이지만, 경매 입찰자에게는 매입 비용을 바꾸는 법이기도 합니다. 특히 영업 중인 점포는 서류 한 장과 현장 모습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사업자등록일 한 줄이 입찰가를 바꾼다
상가 임차인이 건물을 인도받고 사업자등록을 신청하면 그 다음 날부터 제3자에게 임대차를 주장할 수 있는 대항력이 생깁니다. 둘 중 하나만 갖춰서는 부족합니다. 사업자등록증에 찍힌 개업일만 보고 판단하면 위험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경매에서는 실제 점유 시점과 사업자등록 신청일, 등록 내용이 해당 점포를 제대로 가리키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제가 보는 순서는 단순합니다. 등기부에서 말소기준이 되는 권리의 날짜를 찾고, 상가건물임대차현황서의 사업자등록 신청일을 확인합니다. 그다음 현황조사서와 매각물건명세서를 읽고 현장에서 누가 어느 호실을 쓰는지 대조합니다. 점포 간판은 하나인데 계약서와 사업자등록은 서로 다른 호수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불일치가 있으면 서류상 날짜가 빨라도 대항력 판단을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법원행정처도 상가건물임대차현황서에서 사업자등록 신청일과 정정신고일을 구분하도록 개선했습니다. 정정신고일을 최초 신청일로 잘못 읽으면 권리의 선후가 뒤집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입찰 전에는 날짜의 이름까지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확정일자가 있어도 보증금이 전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은 역할이 다릅니다. 대항력은 새 소유자에게 임대차를 주장할 수 있는 힘이고, 우선변제권은 경매·공매 대금에서 후순위 권리자보다 먼저 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입니다. 후자는 대항요건을 갖춘 데다 관할 세무서에서 계약서에 확정일자까지 받아야 생깁니다. 확정일자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배당액이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본 점포의 숫자를 단순화해 보겠습니다. 임차보증금이 1억 5천만 원이고, 그 임차인이 선순위 대항력을 갖췄다고 가정하죠. 경매 배당에서 9천만 원만 받는다면 6천만 원이 남습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대항력 있는 임차권이 보증금 전액을 변제받지 못한 경우 매각만으로 소멸하지 않는다고 정합니다. 낙찰자라면 그 잔액을 인수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합니다. 낙찰가 4억 원에 잔액 6천만 원이 얹힌다면, 물건을 4억 원에 샀다고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임차인의 대항력이 말소기준 권리보다 늦다면 같은 계산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배당요구 여부와 우선변제 순위, 실제 배당 가능액도 따져야 합니다. 배당요구가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증금 전액이 배당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흔한 실수입니다. 저는 예상 배당표를 만들 때 배당 가능한 돈과 선순위 채권을 먼저 적고, 모르는 금액은 낙관적으로 채우지 않습니다.
환산보증금과 작은 보증금은 따로 계산한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적용 범위를 볼 때는 보증금만 읽지 않습니다. 월세가 있으면 보증금에 월세의 100배를 더한 환산보증금을 계산합니다. 예를 들어 보증금 5천만 원, 월세 300만 원이면 환산보증금은 3억 5천만 원입니다. 서울 상가의 일반적인 적용 기준인 9억 원 안에 들어갑니다. 지역별 기준은 달라서 계약 당시 소재지와 적용 법령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여기서 초보 입찰자가 자주 묻습니다. 환산보증금이 지역 기준을 넘으면 임차인은 아무 보호도 못 받는지 말이죠. 그렇지 않습니다. 대항력과 계약갱신요구권,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처럼 기준을 초과하는 임대차에도 적용되는 조항이 있습니다. 다만 보증금 우선변제까지 똑같이 적용된다고 넘겨짚어서는 안 됩니다.
소액임차인의 최우선변제도 별도 문제입니다. 지역마다 대상이 되는 환산보증금 기준과 먼저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다르고, 경매신청 등기 전에 점유와 사업자등록 신청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시행령의 수치를 현재 물건에 적용하기 전에, 임대차가 시작된 시점과 담보권 설정 시점에 따른 경과 규정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저는 경계선에 걸린 물건이면 숫자만 보고 입찰하지 않습니다.
영업 중인 점포에는 보증금 밖의 비용도 있다
임차인이 있다고 해서 모두 명도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계약 기간과 갱신 경위를 무시하면 일정이 틀어집니다. 임차인은 원칙적으로 계약 만료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 갱신을 요구할 수 있고, 최초 임대차기간을 포함해 전체 10년 범위에서 행사할 수 있습니다. 3기 차임액에 이를 정도로 연체한 사실 등 법에 정한 거절 사유가 있는지도 계약서와 입금 내역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권리금은 보증금과 성격이 또 다릅니다. 법은 일정한 기간에 임대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기회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렇다고 낙찰자가 영업권리금을 무조건 지급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임차인이 어떤 권리를 갖는지, 계약이 언제 끝나는지, 새 임차인을 구하려는 상황인지에 따라 협의 비용과 시간이 달라집니다. 입찰가에는 취득세와 잔금대출 이자뿐 아니라 공실 기간, 수리비, 명도 지연 가능성도 넣어야 합니다.
그날 저는 입찰가를 낮춰 다시 계산했고 결국 응찰하지 않았습니다. 낙찰받지 않은 물건은 수익 사례로 남지 않죠. 그래도 현장에서 배운 것은 또렷합니다. 상가 경매에서 싸 보이는 가격은 출발점일 뿐입니다. 임차인의 날짜와 보증금이 맞물리는 순간, 실제 매입가는 전혀 다른 숫자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