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전세주택 공고를 읽다가 입찰가를 지웠다

얼마 전 경매 입찰가를 적어 놓고도 봉투를 접어 넣은 적이 있다. 살 집을 찾던 지인이 그 아파트를 낙찰받으면 어떻겠냐고 물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에게 당장 필요한 건 소유권보다 오래 살 수 있는 집이었다. 그래서 입찰가 계산을 멈추고 장기전세주택 공고부터 같이 읽었다. 경매를 오래 했어도 이런 때는 집을 사는 게 늘 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20년이라는 숫자보다 먼저 봐야 할 것
장기전세주택은 공공이 전세계약 방식으로 공급하는 임대주택이다. 마이홈 안내에는 임대기간이 20년 범위, 계약은 2년 단위로 나와 있다. 여기서 ‘20년 거주 보장’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계약을 갱신할 때 적용되는 자격과 조건은 해당 모집공고와 계약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보증금도 계약 기간 내내 같은 금액으로 고정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전세라는 이름 때문에 일반 집주인과 계약하는 민간 전세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신청 자격, 입주자 선정, 갱신 절차가 붙어 있다. 기본적으로 모집공고일 현재 무주택세대구성원인지 확인하고, 소득과 자산 기준도 따져야 한다. 공급 유형과 면적, 지역에 따라 세부 기준이나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 공고를 보면서 다른 지역 공고의 숫자를 그대로 가져오면 첫 단추부터 어긋난다.
나는 공고를 받으면 맨 앞의 신청 일정만 보지 않는다. 모집공고일, 세대구성원 범위, 주택 소유 판정, 소득·자산 기준, 같은 순위 안에서의 선정 기준을 차례로 표시한다. 특히 ‘나는 무주택인데 배우자 명의는 괜찮겠지’ 같은 추측이 위험하다. 서류를 내는 날이 아니라 어느 날짜를 기준으로 판단하는지도 공고에 적힌 문구대로 봐야 한다.
시세보다 싸다는 말에도 계산이 빠진다
마이홈은 장기전세주택의 보증금을 주변 시세의 80% 수준으로 안내한다. 다만 내가 살고 싶은 동, 층, 향, 상태까지 같은 민간 전세 한 채와 단순 비교해 ‘무조건 20% 이득’이라고 계산하면 틀릴 수 있다. 비교 대상 주택의 조건과 실제 공고 보증금을 놓고 봐야 한다.
가령 비슷한 생활권의 민간 전세를 5억 원, 관심 있는 장기전세주택의 공고 보증금을 4억 원으로 가정해 보자. 차액은 1억 원이다. 그런데 손에 쥔 현금이 2억 원이라면 보증금 4억 원을 채우는 방법부터 따져야 한다. 대출이 가능하다고 가정해도 금리와 한도는 개인 신용, 주택, 금융기관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2억 원을 연 4%로 빌린다는 단순 가정만으로도 이자는 연 800만 원, 월평균 약 67만 원이다. 관리비와 이사비, 갱신 때 추가로 필요할 수 있는 돈도 별도로 잡아야 한다.
경매도 똑같다. 낙찰가만 적어 놓으면 싸 보이지만 취득세, 수리비, 대출이자, 명도 비용을 넣으면 표정이 달라진다. 장기전세주택 역시 ‘시세 대비 몇 퍼센트’보다 내가 실제로 묶어 둘 현금과 매달 감당할 비용이 더 중요했다. 그 지인은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이 넉넉하지 않았다. 입찰장에서 가격을 높여 써내는 선택이 그에게는 꽤 무거운 부담이었다.
신청 전에 현장에 가면 보이는 것들
공고가 마음에 들면 나는 가능한 범위에서 단지 주변을 걸어 본다. 출근 시간 대중교통, 아이가 있다면 통학 동선, 밤길 조명, 장보기 거리까지 본다. 예전에 서류상 면적과 보증금만 보고 괜찮다고 생각했던 집이 있었는데, 실제로 가 보니 매일 건너야 할 큰 도로가 생활 동선을 갈랐다. 몇 년 살 집이라면 지도에서 가까운 거리와 몸으로 걷는 거리가 다르다.
공급 호수도 눈여겨본다. 마음에 드는 평형이 한두 가구라면 자격을 갖췄다는 사실과 당첨 가능성은 별개다. 경쟁이 예상된다고 무리해서 기존 전세계약을 먼저 끝내거나, 아직 선정되지 않았는데 이사 일정을 확정하는 건 피해야 한다. 신청, 당첨자 발표, 서류 심사, 계약과 입주 예정일을 현재 집 계약 만료일 옆에 써 놓으면 비는 기간이 보인다.
- 모집공고일을 기준으로 세대원 모두의 주택 소유 여부를 확인한다.
- 소득·자산 기준과 우선공급·일반공급의 신청 조건을 해당 공고에서 읽는다.
- 보증금 마련 계획에는 대출 가능 여부, 이자, 이사비와 비상자금을 함께 넣는다.
- 갱신 조건을 확인하고, 생활 동선은 현장에서 직접 걸어 본다.
경매 물건과 나란히 놓고 보니
집을 사면 자산이 남는다는 말은 맞다. 반대로 장기전세주택에서는 임대기간이 끝나도 집의 소유권이 내 것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경매 낙찰에도 가격 하락과 예상 밖 수리, 잔금 마련이라는 위험이 따라온다. 두 선택지를 같은 선에 놓으려면 ‘몇 년 뒤 집값이 오를까’보다 먼저 지금의 현금흐름과 거주 계획을 적어 봐야 한다.
그 지인에게는 경매 물건의 예상 낙찰가와 추가 비용, 장기전세주택의 보증금과 예상 차입액을 한 장에 적어 줬다. 장기전세주택에 당첨될지는 알 수 없으니 현재 살 곳을 유지할 계획도 함께 세웠다. 결국 그날 입찰하지 않은 이유는 장기전세주택이 언제나 더 유리해서가 아니었다. 권리분석을 끝낸 물건이라도 살 사람의 자금 사정과 맞지 않으면 좋은 낙찰이 아니다. 집을 오래 편하게 쓰는 일이 우선인 시기라면, 공고 한 장을 찬찬히 읽는 시간이 입찰장에 가는 시간보다 값질 수 있다.
